[목차] == 主君[* [[드라마]], [[애니메이션]] [[주군의 태양]]에 이 한자가 들어간다.] == 나라의 우두머리를 호칭할 때 사용되었던 말로 사극에서 주로 사용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보통 사극 등의 매체에서 쓰일 적엔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 있는 군웅에게 수하들이 쓰는 경우가 더 많다. 건국을 마치고 즉위한 군주에게는 폐하, 전하, 황상, 주상 등의 공식적인 호칭을 더 쓰곤 한다. 물론 해당 군주와 가까운 가신, 측근, 중신들은 (당연히 어전회의 같은 완전히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약간 사석인 곳에서는 여전히 주군으로 지칭하거나 심지어는 군주에게 직접 부르기도 했다. 현대 한국에서는 별로 안 쓰일 것 같지만, 정계에서 간간이 쓰인다. 거물 정치가[* 보통은 대통령급] 혹은 재계 거물의 가신이나 측근들이 자신이 모셔온 해당 정치가나 회장을 가리켜 '주군'이라고 하는 식이다.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 든가 "주군을 뵐 낯이 없다"는 식으로 사극의 용법과 똑같다. 그래도 너무 제왕적인 표현이라 본인이 직접 사용하기 보다는 언론에서 상황을 묘사하는데 사용한다. == 主軍 == 주력이 되는 부대를 뜻한다. == [[고대]] [[중국]]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한]]의 인물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주군(삼국지))] == 백제의 왕족 == 酒君(사케노키미) [[백제]]의 왕족. 한국 측 기록이 없고 일본 측 기록에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름 또한 본명이 아니라 당시 왜국에서 불렀던 칭호로 보인다.《[[일본서기]]》에 따르면 353년 일본으로 도왜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파견이 아니라 일본 사신한테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쇠사슬에 묶인채 일본으로 끌려갔다고 한다...고 하는데 이건 《일본서기》 특성상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전지왕]], [[순타태자]], [[아좌태자]] 등이 일본에 체류했던 점을 생각하면 태자 또는 그에 버금가는 지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착한 후에 탈출해 '이시카와노니시고리노오비토 코로시(石川錦織首 許呂斯)'라는 왜인집에 숨어있다가 천황의 사면을 받고 왜국에 체류했다. 이후 355년 기록에서 매사냥을 전파했다는 것으로 나온 후 행적은 불명이다. 《일본서기》 초기 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점, 기년이 이주갑인상 혹은 그와 맞지 않는 후대 일로 보이는 점 때문에 주군이 정확히 언제 활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주갑인상(+120년)을 적용해 353년→473년에 도왜했으며 [[개로왕]] 대의 인물로 보는 설이 있다. 다만 문제는 이주갑인상을 해도 시기상 온전히 들이맞지 않는데다가 개로왕 대의 인물로 보는 가설은 주군보다는 백제의 지방행정 정비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동시대에 존재한 [[카츠라기노 소츠히코]]의 활동 시점을 근거로[* 419년 또는 425년 사망한 [[박제상]]과 대면했다.] 1갑자만 인하한 413년경 도왜한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일본 매사냥 협회에서는 주군을 일본 매 사냥의 원조로 추앙하고 있다고 한다. 《신찬성씨록》에서 몇몇 백제계 성씨의 시조로 기록된 주왕(酒王)과 동일인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은 것이, 《신찬성씨록》에 등장하는 인물 중 실제 왕이 아니었던 사람에게도 왕(王)의 호칭이 붙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자는 다르지만 둘 다 훈독으로는 사케노키미로 읽을 수 있다. 어쨌든 이 가문은 [[문주왕]]과 주왕(酒王)을 동시에 모셨기 때문에, 주군이 [[문주왕]]의 조상 중 한 명이 아니었나 추정된다. [[분류:동음이의어]][[분류:동명이인]][[분류:백제의 왕족]][[분류:백제계 도래인]][[분류: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