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丞祖 (? ~ 192) [목차]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 [[공융]]을 섬겨 치중을 지내면서 공융이 동래의 도적들을 공격할 때 성을 파괴하고자 했으며, 좌승조는 도적들과 싸웠다. [[유의손]]과 함께 청렴하고 뛰어난 선비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자라 공융이 잃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가 겉으로 칭찬해 자리를 갖췄을 뿐 중용되지 못했다. 하북에는 [[원소(삼국지)|원소]], [[공손찬]], 연주에는 [[조조]] 등 강력한 세력이 있어 공융에게 강한 세력에 붙기를 권고했지만 공융은 이를 듣지 않고 죽였으며, 결국 그는 뛰어난 인재들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좌승조가 죽은 뒤인 193년에 황건적의 잔당인 [[관해#s-2]]의 공격을 받아 도창현으로 쫓겨갔다가 [[유비]]와 [[태사자]] 등의 도움으로 위기에 벗어났지만 [[원담]]과의 싸움에서 여러 차례 패하면서 결국 영지를 빼앗겨 세력이 멸망하게 되었다. [[삼국지집해]]에 나오는 노필의 주석에 따르면 좌승이 관직명으로 이름이 황조라는 설이 있다. == 창작물에서 ==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39, 무용 30, 지모 43, 정무 50, 인사 54, 외교 58의 능력치로 168년생으로 나온다. [[분류:후한의 인물]][[분류:192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