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from=J.P. 모건, other1=이 문서의 인물이 설립한 금융 기업, rd1=JP모건 체이스)] [include(틀:스미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2> '''{{{+1 J. P. 모건}}}[br]J. P. Morgan''' || ||<-2>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tmp369122883990978562.jpg|width=100%]]}}} || || '''본명''' ||존 피어폰트 모건[br]John Pierpont Morgan||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2> '''출생''' ||[[1837년]] [[4월 17일]]||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2> '''사망''' ||[[1913년]] [[3월 31일]] (향년 75세)|| ||[include(틀:국기, 국명=이탈리아 왕국)] [[로마]]|| || '''직업''' ||[[기업인]], 금융인|| || '''모교''' ||[[괴팅겐 대학교]]|| || '''종교''' ||[[성공회]]|| || '''배우자''' ||어멜리아 스터지스^^(1861년 결혼–1862년 사별)^^[br]프랜시스 루이스 트레이시^^(1865년 결혼)^^|| || '''자녀''' ||장녀 루이자 피어폰트 모건^^(1866–1946)^^[br]장남 J. P. 모건 주니어^^(1867–1943)^^[br]차녀 줄리엣 피어폰트 모건^^(1870–1952)^^[br]차녀 앤 트레이시 모건^^(1873–1952)^^|| || '''서명''' ||[[파일:JPM-Signature-85.png|width=180]]|| [목차] [clearfix] == 개요 == 이른바 '''금융왕'''으로 알려진 [[미국]]의 기업인으로, 세계적 금융회사인 [[JP모건 체이스]]의 설립자이다. 금융회사 외에도 [[철도회사]][* 노던 시큐리티스.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고 [[록펠러]]가 설립한 정유사 [[엑슨모빌|스탠더드 오일]]과 함께 해체되었다.]와 철강회사[* [[앤드루 카네기]]가 창업했던 카네기 스틸을 포함해 수십 개의 철강 회사들을 매입 후 합병하여 US스틸이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였다. 합병 당시 시가총액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업이어서 월가에서는 '그 회사'라고 불렀다.]도 소유하였다. 그 외에 [[제너럴 일렉트릭]]과 [[AT&T]]의 설립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기도 하다. == 행적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전쟁)에서 진정한 수혜자는 [[미국]]의 J. P. 모건이었는데, 당시 대부분의 런던 금융가들은 [[프랑스]]의 경제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프랑스 국채를 15–20% 수준으로 마구 팔아버렸던 것을 미국의 J. P. 모건이 모두 사들였다. 프랑스가 국채에 대해 [[모라토리움]]을 선언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시의 프랑스 경제상황에서는 그게 맞았지만 J. P. 모건은 프랑스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유럽을 먹여 살리고 있는 프랑스의 거대한 '식량생산력'을 알고 있었고 모라토리움은 커녕 보불전쟁 배상금 50억 프랑 정도는 1년도 안 돼서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지만 프랑스는 모라토리움을 선언하지 않고 배상금을 다 갚았다.[* 심지어 당사자(승자)인 독일제국의 비스마르크조차도 "몇 년은 더 걸릴 줄 알았다"고 했을 정도였다.] 특히 보불전쟁 당시는 지금과 같은 세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유럽의 식량 수요는 온전히 유럽 안에서 해결해야만 했다. J. P. 모건은 이를 떠받칠 수 있는 나라가 프랑스 뿐이라는 사실을 간파해 떼돈을 벌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영국]]을 포함한 [[유럽연합|EU]]에서 소비되는 식품의 40%를 프랑스가 생산하고 있으며 심지어 치즈나 와인 같은 고가 가공품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같은 저가 육류마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나라에까지 수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 [[호주]] 등 낙농업이 발달한 국가조차 경제적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나라는 모두 프랑스로부터 식품을 수입하고 있다. 프랑스의 식품 산업이 품질, 생산력 등에서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수준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된 J.P 모건의 유럽 체류 당시 일화가 있다. 그가 [[영국]], [[그리스 왕국]], [[러시아 제국]]에 이어 심지어 아프리카 [[모로코]][* 아프리카에 있긴 하지만 러시아나 그리스보다도 프랑스 본토에 가깝긴 하다.]에 있을 때도 호텔 웨이터가 계속 "식재료는 프랑스산입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유럽에서 프랑스 말고는 농사를 짓는 나라가 없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웨이터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 조금 하긴 하지요."라고 답해주자 그는 프랑스의 식량생산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스페인은 넓은 국토(50.5만 ㎢)에 비해 인구가 의외로 적은데, 이는 영토 중심부의 상당한 면적이 산지 및 고원 지형이라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농사를 지을만한 땅이 많지 않아서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해안지대에 흩어져 산다. 이탈리아도 알프스와 아펜니노 산맥 지형이 상당히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농산물을 수출할 여력이 적다.] 보불전쟁 덕분에 J. P. 모건은 조지 피바디의 명성 아래에 있던 평범한 은행가에서 미국은 물론이고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의 [[유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제적 금융가로 성장하게 된다. 어느 정도냐면 미국 국회 청문회에서 "하느님이 발행한 채권도 내가 신용하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다"고 일갈할 정도였다. 그 말대로 [[1907년 은행 패닉]]에서 그가 미국의 금융사들을 한 자리에 모아 강제적으로 채무조정을 한 결과 금융위기는 수습됐고, [[연방준비제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미국 남북전쟁에도 관여하여 떼돈을 벌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홀 소총 사건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JP 모건이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고, [[되팔렘|미국 정부에게서 5000정의 소총을 한 정당 $3.5에 산 다음, 다시 미국 군부에 한 정당 $22에 되판 사건이다.]] 사실 복잡한 내막이 있는 사건이지만 표면적으로는 정부가 소총을 한 정당 $3.5에 팔았다가 다시 한 정당 $22에 산 사건이므로 굉장한 논란이 되었다. 1895년 유럽으로의 금 유출 때문에 미국이 [[채무불이행]]의 위기에 놓였을 때도 모건이 자금을 빌려준 덕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후에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도 따랐지만 [[뉴욕 타임스]]는 "모건 같은 파수꾼이 없었다면 그 어떤 투자자도 [[미국 국채]]를 사기 위해 줄을 서지 않았을 것"라며 그를 [[https://news.v.daum.net/v/20170727200606529|옹호하기도 했다.]] JP 모건의 사업들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것은 소위 '모건화'(Morganization)으로 유럽자본을 끌여들어서 적당한 기업을 인수하고 구조조정등을 통해 비용을 낮춰 수익을 낸 다음, 그 기업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적대적 흡수합병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려 독과점 기업을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굉장히 성공적이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기업들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US Steel.[* 카네기 철강과 합병했다. 그 앤드류 카네기의 카네기 스틸이 맞다.] 그렇다, 아직도 최대 미국 철강회사인 그 US Steel이 맞다. JP 모건과 앤드류 카네기가 최초로 시도한 것들 중 하나가 [[수직적 통합|수직계열화]]. 모건은 [[독과점]]이 경제와 소비자에게 이롭다고 진심으로 믿었지만,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아 위기를 맞았다. == 그 외 == 전설적인 금융인답게 투자 관련 일화가 많이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투자를 끊어 테슬라의 일생의 목표 중 하나인 '''무선 송전탑 공사'''가 중도에 중단되게 만든 사건이 있다. [[트러스트]]의 화신 같은 인물이며 록펠러와 함께 당대에도 적이 굉장히 많았다. 특히 자신이 모든 판을 주도하고 끌어가지 않으면 성에 안 차는 통제만능주의자같은 면모를 보였고 먹잇감이 된 상대는 피도 눈물도 없이 물어뜯었다. 이 때문에 J.P.모건도 나중에 반독점법을 얻어맞게 되자 그의 가족 친지 정도 외에는 다들 환호를 질렀다고 한다. 정작 [[월가]]는 1907년 금융위기 당시 모건이 없었으면 망해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가들이야 모두 웃는 낯으로 상대 등에 칼을 꽂는 사람들이니 거기서 거기긴 하다. 반독점법 관련 에피소드에서 알 수 잇듯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비롯한 공화당의 급진주의자[* 현재와 달리 링컨 이래로 FDR, 아이젠하워까지 근 100여 년간 민주당이 남부 보수, 공화당이 북부 진보 포지션이었다. 민주당 출신이며 진보적 독트린을 내세운 우드로 윌슨이 특이 케이스였는데 사실 윌슨도 알고 보면 흑백분리 화장실을 만드는 등 충분히 딕시스러운 짓을 많이 했다.]들과는 앙숙이었다. [[모건스탠리]]는 이 사람의 막내손자[* 아들인 J.P.모건 주니어의 넷째 아들.]가 해롤드 스탠리와 세운 회사이다. 즉 미국 4대 은행 중 절반이 사실상 모건 가의 것이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금융업을 유대인들이 쥐고 있다 착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미국 금융업은 엄연히 [[WASP(미국)|WASP]]의 몫이다. 미국 4대 시중은행 중 이탈리아계인 지아니니가 세운 [[뱅크 오브 아메리카]][* 원래는 뱅크 오브 이탈리아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했는데, 1은행 1점포 원칙이 없어지게 되면서 BOI를 확장하며 LA에 있던 뱅크 오브 아메리카란 동네 은행(...)을 인수한 후 전체 은행망 이름을 그걸로 갈아치웠다.]를 제외하고는 전부 앵글로색슨 계열이다. 오히려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리먼 브라더스]]가 특이한 것. 뉴욕과 런던이 세계금융 시장의 중심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병이 있어서 코 비대증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정적들은 흔히 "그 코쟁이 녀석"이라고 힐난하고는 했다고. [[알쓸별잡]] 3화에서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라파엘로]]의 그림 '콜론나 제단화'를 1901년에 2백만 프랑으로 구입해서 미국으로 가져왔다. 당시 그림 거래의 최고가였으며 현재 미국에 있는 유일한 라파엘로 제단화이다. 모건 사후 그림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분류:미국의 금융인]][[분류:미국의 기업인]][[분류:1837년 출생]][[분류:1913년 사망]][[분류:하트퍼드 출신 인물]][[분류:괴팅겐 대학교 출신]][[분류:웨일스계 미국인]][[분류:잉글랜드계 미국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