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회원수정2)] ||<-2>
{{{#ffffff '''{{{+1 존 노럼}}}[br]{{{-1 John Norum}}}'''}}}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ohnnorum80main.jpg|width=100%]]}}} || || '''본명''' ||욘 테리 노럼 [br]John Terry Norum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노르웨이)]|| ||<|2> '''출생''' ||[[1964년]] [[2월 23일]] ([age(1964-02-23)]세) || ||[[노르웨이]] 바르되 || || '''신체''' ||188cm|| || '''악기''' ||<-2>[[기타]],[[보컬]] || || '''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 || '''소속''' ||[[Europe(밴드)|유럽]] ^^(1979~85, 1999, 2003~현재)^^ [br][[UFO(밴드)|UFO]] ^^(1996년)^^ [br][[도켄]] ^^(2001년 ~ 2002년)^^|| [목차] [clearfix] == 개요 == [[스웨덴]] 밴드 [[Europe(밴드)|유럽]]의 창단멤버, 기타리스트이자 [[The Final Countdown]]의 솔로를 연주한 장본인. == 유년 시절 == 존 노럼은 [[노르웨이]]에서 태어났으나 가족이 [[스웨덴]]의 [[스톡홀름]] 주 우플란스 베스뷔로 이주한 이후 쭉 스웨덴에서 자랐다.[* 그러나 국적은 계속 노르웨이였으며 86년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노르웨이인인것이 자랑스러우며 국적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사진을 찍을 때 종종 자신의 노르웨이 여권을 꺼내두는 모습을 보면 이후에도 국적을 바꿀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첫 번째 아이돌은 엘비스 프레슬리와 클리프 리처드였고, 10살 때부터 기타를 배워 하루에 10시간씩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록스타의 꿈을 키운 건 [[딥 퍼플]]의 Strange kind of woman을 듣고 나서부터이다. 12살때쯤 어머니의 재혼으로 새아버지가 생겼는데 이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비트, CBS에서 일하던 스웨덴의 프로듀서이자 드러머였다. 토마스는 존의 재능을 확인하고는 크게 놀라 자신의 밴드 동료였던 로커빌리 아티스트 에디 메두자와 계약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렇게 존 노럼은 펑크의 길로 잠시 향하게 된다. 자신의 펑크 밴드인 도그 웨이스트를 결성하고 활동명을 조니 퍽패스터(...)라고 정한 뒤 머리를 세우고 무대에 서기도 했었다. == 음악 활동 == 펑크 밴드에서 활동하던 존은 곧 다시 예전의 우상이였던 씬 리지와 게리 무어와 같은 블루스와 하드 록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고 미케 클링, 얀 에릭 백스트롬, 토니 리노와 함께 WC(Water Closet)를 결성한다. 이 밴드는 TV출연 요청을 받기도 했지만 밴드명을 바꾸라는 요청에 거절하며 TV 출연은 무산된다. 1979년 존 노럼은 보컬리스트의 필요를 느끼고 당시 록샌에서 활동하던 조이 템페스트를 떠올렸다. "조이가 베이스를 연주하고 커버 곡을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훌륭했고 무대 위에서도 멋진 개성을 가지고 있었죠." [[분류:노르웨이의 기타리스트]][[분류:스웨덴의 기타리스트]][[분류:1964년 출생]][[분류:메탈 기타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