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정의 역임 직책 및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GS칼텍스 서울 KIXX 역대 감독)] ---- [include(틀:FIVB 여자 배구 월드컵 MVP)] ---- [include(틀:FIVB 여자 배구 월드컵 기록상)] }}} ||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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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대한민국]] 구기종목 사상 최초였다. 이외에도 [[1972 뮌헨 올림픽]]에 참가했고, [[1970 방콕 아시안 게임]], [[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https://news.joins.com/article/23583840|은메달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국내 무대에서는 국세청과 대농(미도파)를 거치며 현역 생활을 하다가 무릎 부상으로 1977년에 국내 무대를 은퇴하고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현대건설]]에서 잠시 코치를 지냈으며, 1979년, [[박기원]] 전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IG손해보험]],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 감독의 부름을 받아 [[이탈리아 여자 배구 리그|이탈리아 무대]]로 건너가 2년 간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다 1981년에 선수 생활을 완전히 마감하였다. == 은퇴 이후 == [[1981년]] 현역 생활 마감 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감독 대행을 지낸 [[조창수]]와 결혼했다. 결혼 당시 스포츠 커플로도 큰 화제로 올랐는데, 슬하에 두고 있는 두 딸 조윤희/조윤지 자매도 부모처럼 스포츠계로 진출했는데, 현재 프로골프 선수다. 그 후 송원여자고등학교 배구부 코치와 비치발리볼연맹 사무국장을 역임하였으며, 골프를 하는 두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때 [[대구광역시]]에서 [[냉면]]집을 열기도 하였다. [[2008년]]부터 KOVO 경기운영위원으로 [[배구]] 일선에 복귀하며 경기감독관 등으로 지내다가, [[2010년]] [[4월]], [[이성희(배구)|이성희]] 감독의 후임으로 [[GS칼텍스 서울 KIXX]]의 감독직에 오르게 되어 프로배구는 물론 국내 4대 프로스포츠 통틀어 '''사상 최초의 여성 사령탑'''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하지만 프로 감독직으로서는 처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그녀도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속설을 보여주고 말았는데,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서 활기차고 즐거운 팀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와는 달리 이렇다 할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감독 선임 과정에서부터 논란이 있었고, 그가 감독으로 있던 2010-2011 시즌에도 1라운드까지만 해도 2승 2패로 나름 나쁘지 않은 성적을 냈으나, 2라운드 이후로 외인 제시카 산토스 실바의 부진과 서브 리시브 불안 등으로 팀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한때 '''12연패'''까지 당하는 등 최하위까지 속절없이 추락하게 된 것. 어떻게든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시즌 중반 외인도 산야 포포비치로 교체하고 당시 '''팀의 [[코치(스포츠)|코치]]로 있던 [[장윤희(배구)|장윤희]]를 현역으로 복귀시키는''' 초강수까지 두었지만, 그래도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자 시즌 후반기엔 신인급 선수들을 대거 기용하면서 [[세대교체#s-1|세대교체]]와 [[리빌딩]]에 중점을 두었다. 결국 '''4승 20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성적 부진으로 사퇴한 뒤 [[이선구]]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0&aid=0000000907|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사임 후에는 병원 신세까지 졌다고 한다.]] == 대회 기록 == * 1970 방콕 아시안게임 (2위) * 1972 뮌헨 올림픽 (4위) * 1973 FIVB 월드컵 (3위) * 1974 테헤란 아시안게임 (2위)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 개인 수상 === * 1973 FIVB 우루과이 월드컵 MVP [[https://news.joins.com/article/1365179|#]][* 세계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MVP를 받은 건 1973 월드컵의 조혜정과 [[2012 런던 올림픽]]의 [[김연경]] 뿐이다.] * 1977 FIVB 월드컵 수비상 == 논란 및 사건 사고 == === [[이재영]]·[[이다영]] 두둔 === 2021년 8월 16일, [[이재영-이다영 학교폭력 논란|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였던 이재영·다영(25) 쌍둥이 자매를 두둔하는 인터뷰를 진행해서 논란이 되었다. 이날 [[연합뉴스TV]]에 출연하여 "제 희망이 있다면 이재영·다영 선수가 좀 더 많이 반성하고 성장하고, 성숙해져서 합류해 [[김연경]], [[김수지(배구선수)|김수지]]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채워주면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발언한 것. 조혜정의 이 같은 뜬금없는 발언이 [[2020 도쿄 올림픽]] 선전으로 높아진 여자배구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4592346?sid=10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4692762?sid=10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48/0000336835?sid=102|#]] 한편으로 도쿄 올림픽에서 김연경 다음으로 좋은 활약을 보인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와 [[염혜선]]을 마치 두 가해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선수들로 취급하는 또 다른 문제성 발언을 하며 이 또한 논란이 되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ivb&no=165471&exception_mode=recommend&s_type=search_subject_memo&s_keyword=%ED%98%9C%EC%A0%95&page=1|#]] == 여담 == * ''''나는 작은 새''''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키가 무척 작았던 조혜정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활약하자 외국의 기자가 붙인 'Flying little bird'을 번역한 말이다.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당시 쿠바와의 경기에서 무릎을 심하게 다쳐 출전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됐는데, "동생이 여섯 명인데 학비를 제가 대야 한다"는 후배 백명선의 말에 의사의 반대를 만류하고 일본과의 [[https://steemit.com/kr/@sanha88/125xc6|준결승 경기에 출전하였다고 한다.]] * 한 기사의 표현에 따르면 조혜정은 70년대 당시 [[소녀시대]]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명했다는데, 당시 사법고시를 3등으로 통과한 한 고시생이 "조혜정이 결혼해준다면 다시 시험을 치러 1등으로 합격하겠다"고 협박에 가까운 구애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한국에선 [[http://weekly.hankooki.com/lpage/coverstory/201111/wk20111104183620121180.htm|조혜정을 모르면 간첩이란 말도 돌았다고 한다.]] * 여자농구 감독을 지냈던 이옥자 전 감독과 숭의여자고등학교 동창이다. * 2005년 당시 기사에 따르면 몬트리올 멤버 12명 중 6명 정도가 가끔씩 모였다고 한다.[* 유정혜, 변경자는 해외에 살고 이순복은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에서 살던 윤영내는 2004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504051809551|#]] * [[2012 런던 올림픽]]에서 36년만에 4강 신화를 쓴 [[대한민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몬트리올에서 함께 뛰었던 이순복, 유경화와 함께 2일 런던을 직접 방문해 후배들을 응원했다. 한 인터뷰에서 "8강전을 앞두고는 ‘이탈리아만 이겨다오’라고 생각했는데 욕심이 생기더라. 지금의 전력, 자신감이라면 미국도 꺾을 수 있다"고 [[https://news.joins.com/article/9002046|말했다.]] *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팀이 8강에서 탈락하자 "평소 여자 배구 경기장에 나와 응원했던 팬이라면 비난할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리그 경기엔 관심도 없다가 국제대회에서 성적 내지 못했다고 손가락질하는 건 비겁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380&aid=0000000907|#]] * 2021년 도쿄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한 김연경에게 자랑스럽고 존경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08051200007?input=1195m|#]] * 2023년 7월에 '최동철의 스포츠 X파일' 전화 인터뷰에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296393|응했다]]: 충격의 1승 29패! 여자배구는 파리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까? == 관련 문서 == * [[배구 관련 인물]] * [[배구 해외파 선수들]] [[분류:1953년 출생]][[분류:부산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창녕 조씨]][[분류:숭의여자고등학교 출신]][[분류:수원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구 선수]][[분류:아웃사이드 히터]][[분류:1971년 데뷔]][[분류:1981년 은퇴]][[분류:미도파 배구단/은퇴, 이적]][[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배구 메달리스트]][[분류:1972 뮌헨 올림픽 배구 참가 선수]][[분류:1976 몬트리올 올림픽 배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70 방콕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74 테헤란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