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고조선 군주)]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660202, #820000 20%, #820000 80%, #660202); color: #ffd400" '''고조선 3대 국왕[br]{{{+1 조선왕 | 朝鮮王}}}'''}}} || ||<|2> '''출생''' ||연대 미상 || ||[[고조선]] 추정 || ||<|2> '''사망''' ||연대 미상 || ||[[고조선]] 추정 || ||<|2> '''재위''' ||'''{{{#ffd400 제3대 국왕}}}''' || ||[[기원전 4세기]] ~ [[기원전 3세기]]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성''' ||--한(韓) / 기(箕)-- || || '''휘''' ||불명 || || '''부왕''' ||[[조선왕 2세]] || || '''모후''' ||불명 || || '''시호''' ||불명 || || '''왕호''' ||조선왕(朝鮮王) ||}}}}}}}}} || [목차] [clearfix] == 개요 == 기원전 4 ~ 3세기에 재위했던 [[고조선]]의 단군으로 [[조선왕 1세]]가 사용한 왕(王)의 칭호를 계승한 국왕이기도 하다. == 생애 == 선대 군주인 조선왕 1세 당시 [[대부례]]의 중재로 연과 고조선은 평화 상태를 유지했으나 당시의 사료를 토대로 유추하면 두 세력 사이에 불협화음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고, 연은 이것을 조선왕 1세의 자손들이 교만하고 포악해졌다고 표현하였다. 결국 연나라는 장수 [[진개]]를 보내 고조선의 서방을 공격하였고[* 대체적으로 [[기원전 281년]] 이전에 전쟁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 땅 2,000리를 빼앗아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경계를 조정했다고 한다.([[고조선-연 전쟁]]) 이후 고조선 군주의 계보는 일시적으로 기록에서 등장하지 않다가 [[부왕(고조선)|부왕]] 대에 이르러 다시 언급되기 시작하였다. == 기록의 모호함 == >後子孫稍驕虐 燕乃遣將秦開 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그 '''자손(子孫)'''이 점점 교만하고 포악해지자, [[연(춘추전국시대)|연나라]]는 이에 장수 [[진개]]를 보내어 그(고조선의) 서방을 공격하여 땅 2,000여 리를 취하고, 만번한에 이르러 이를 경계로 삼았다. 이에 조선이 약해졌다. >---- >《[[위략]]》 조선왕 2세와 3세의 존재는 '자손(子孫)'에서 유추한 것이다. 다만 子孫이 아들(子)과 손자(孫)를 아울러 '아들과 손자'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들과 손자를 포함한 '후손(descendant)'을 뜻하는지 것인지 불분명하기에 논란이 있다. 이러한 사례와 비슷한 경우는 [[부여]]의 [[시왕(부여)|시왕]]이 있다. == 기타 == * [[기자조선]]의 족보에 따르면 조선왕 3세는 현문왕(顯文王) 석(釋)과 대응되며 재위기간은 기원전 290년 ~ 기원전 251년이라 하나 현재는 학계에서 기자조선 자체가 부정되며, 족보는 조작이라는 것이 정설이므로 21세기 기준 이 기록은 인정되지 않는다. == 둘러보기 == [include(틀:고조선의 왕자)] [[분류:고조선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