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문경시 출신 인물]][[분류:1875년 출생]][[분류:1950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정인옥}}}'''[br]'''鄭寅玉'''}}}}}} || ||<-2> [[파일:정인옥.jpg|width=300]] || ||<|2> '''출생''' ||[[1875년]] [[12월 8일]] || ||[[경상북도]] [[문경시|문경군]] 문경면 하초리 || ||<|2> '''사망''' ||[[1950년]] [[1월 24일]] || ||[[충청남도]] [[공주시|공주군]] || ||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정인옥은 1875년 12월 8일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면 하초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한복(金漢福)·김두산(金斗山)이다. 그는 1907년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당할 때 문경에서 일어난 의병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잡혔고, 1910년에 방면되었다. 이후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인 [[이승훈(1864)|이승훈]]과 함께 독립운동에 가담, 활동하였다. 그 뒤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내무총장 [[안창호]]와 접촉하고, 군자금 모집의 특수사명을 띠고 다시 국내로 잠입하였다. 1919년 7월 [[신덕영]]으로부터 권총 두자루와 독립선언서·독립신문을 받아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그해 12월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1,500여원을 마련, 임시정부에 송금한 뒤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공주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50년 1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정인옥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6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