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모로코의 정당, rd1=정의개발당(모로코))] [include(틀:튀르키예 대국민의회의 원내 구성)] ||<-2> [[파일:정의개발당 로고.svg|width=200]] || ||<-2> {{{#fff '''Adalet ve Kalkınma Partisi'''}}}[* 발음은 "아달렛 베 칼큰마 파르티시"] || || {{{#fff '''약칭'''}}} ||AK Parti, AKP|| || {{{#fff '''영문명칭'''}}} ||Justice and Development Party|| || {{{#fff '''한글명칭'''}}} ||정의개발당|| || {{{#fff '''창당일'''}}} ||[[2001년]] [[8월 14일]]|| || {{{#fff '''이념'''}}} ||[[이슬람 민주주의]] ,,(비공식),,[* 의외로 이 당은 공식적으로는 특정 종교를 대변하지 않고 있다.][br]미국식 [[세속주의]] ,,(공식),,[br][[고보수주의]][br]에르도안주의[br][[국민보수주의]][br][[사회보수주의]][br][[우익대중주의]][br]연성 [[유럽회의주의]] ---- '''역사적 :''' [[자유보수주의]][br][[보수주의]][br][[친유럽주의]]|| || {{{#fff '''정치적 스펙트럼'''}}} ||[[우익]] ~ [[극우]] ---- '''역사적 :''' [[중도우파]][* 이전에는 중도에서 중도우파에 해당되는 의원들도 있었으나 우경화로 인해 [[좋은 당]]등으로 이적했다.]|| || {{{#fff '''중앙당사'''}}} ||[[튀르키예]] [[앙카라]] 발랏 202번지|| || {{{#fff '''대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 {{{#fff '''대국민의회 의석수'''}}} ||286석 / 600석|| || {{{#fff '''웹사이트'''}}} ||[[https://www.akparti.org.tr/|[[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width=24px]]]] [[https://www.facebook.com/akparti|[[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width=24px]]]] [[https://twitter.com/akparti|[[파일:트위터 아이콘.svg|width=24px]]]] [[https://www.instagram.com/akparti/|[[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width=24px]]]] [[https://www.youtube.com/akparti|[[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24px]]]]|| [목차] [clearfix] == 개요 == [[튀르키예]]의 [[이슬람주의]] 정당. 약칭은 AKP와 악 파르티. [[종교적 우파]] 성향 정당으로, 현재 튀르키예의 집권 여당이다. == 역사 == 정의개발당의 뿌리는 [[1997년]] 튀르키예 정계를 뒤흔들어 놓은 복지당(Refah Partisi) 해산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네흐메틴 에르바칸(Necmettin Erbakan) 전 총리가 창당한 복지당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로 철저한 [[세속주의]] 아래 금기시되어 오던 [[이슬람주의]] 노선을 대놓고 표방하는, 경제개혁과 [[복지]] 확대를 외치며 집권한 [[포퓰리즘]] 정당이었다. 복지당의 당수였던 에르바칸은 [[아타튀르크]] 이래 튀르키예 역사상 최초의 [[이슬람주의]] 총리였다. 허나 [[튀르키예/정치]] 항목에서도 보이듯 강한 [[세속주의]]적 성향을 지닌 군부는 에르바칸 총리에게 사퇴하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킬 거라 위협했다. 결국 무혈 쿠데타로 총리는 사퇴, 복지당은 쿠데타 이듬해인 [[1998년]] [[1월 16일]] 해산된다.[* 이게 튀르키예 역사상 마지막으로 성공한 [[쿠데타]]로, 20여년 후 일어난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유사한 사건]]은 그 동안 정치적 감각과 인기를 쌓은 이슬람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난다.][* 여담으로 이 정당 해산 직후 그동안 [[국고보조금]]으로 지급된 '''1조 [[튀르키예 리라]]'''를 반환받으려고 보니 '''당 관계자들이 횡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후폭풍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일명 [[https://tr.wikipedia.org/wiki/Kay%C4%B1p_Trilyon_Davas%C4%B1|1조 실종 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복지당이 해산되기 직전에 당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은 [[1997년]] [[12월 17일]] 미덕당(Fazilet Partisi)을 창당하여 세를 불리나 이 정당 역시 대놓고 이슬람주의를 떠들어대는 바람에 [[2001년]] [[6월 22일]] 강제 해산당했다. [[1997년]] 당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은 [[이스탄불]]의 민선 시장을 지내며 에르바칸 전 총리의 후계자로 꼽히고 있었다. 그는 복지당이 해산되었지만 정계 활동을 이어가며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와 개혁적 공약으로 인기를 높여 가다가, [[2001년]] 복지당 시절의 동료들과 때마침 해산당한 미덕당 잔당들[* 이때 미덕당 내 강경파들은 [[행복당]]을 창당한다.]을 모아 절치부심하여 정의개발당을 창당한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군을 장악한 세속주의자들의 권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져야 했었지만 그 4년 동안 여론은 뒤바뀌어 에르도안에게 점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의개발당은 창당 다음 해인 [[2002년]] 총선에서 총 550석 중 무려 363석을 차지, 압도적인 제 1당이 되어 단독내각을 수립하는 기염을 토한다.[* 사실 세속주의자들 스스로가 놓은 덫에 걸려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슬람 [[포퓰리즘]] 정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 비례대표 [[봉쇄조항]]을 10%까지 올려 놓았는데, 본인들이 여기에 걸려 [[공화인민당]]만 제외하고 직전 집권당이던 민주좌파당을 비롯한 기타 정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한 것.] 초기의 정의개발당은 말 그대로 [[빅텐트]] 정당으로, 이슬람 성직자부터 기업인들, 심지어 개혁 성향의 세속주의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구성된 정당이었다. [[공화인민당]]과 민주좌파당(DSP)[* Demokratik Sol Partisi. 정의개발당 바로 이전의 집권당으로, 뷜렌트 에제비트(Bulent Ecevit) 전 총리가 [[1980년]] 쿠데타 이후 창당한 정당. 현재는 [[공화인민당]]에 거의 흡수되고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다.] 등 전통적인 세속주의 정당의 실정에 질린 튀르키예인들은 부패 청산과 복지 확대, 경제 성장을 부르짖는 정의개발당에 표를 던졌다. 이때만 해도 이념적으론 오히려 [[중도우파]]적 성향에 가까웠다. 당시 외신에서는 [[유럽]]의 기독교민주당과 비교했을 수준이었으니.. 집권 초기 AKP와 에르도안 내각은 민주적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매우 부각시키며 정치를 했다. 외교적으로도 친서방적인 정책 기조를 보이며 [[유럽 연합|EU]] 가입을 위해 애썼고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쳤다. 화폐개혁을 통해 십수 년 동안 만성적으로 지속되던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자세한 것은 [[튀르키예 리라]] 항목 참조)을 일소시키고 경제성장률 역시 괄목할 만한 지표를 찍으면서 [[2007년]], [[2011년]]의 선거에서도 압도적인 득표율로 순항을 거듭했다.[* 다만 [[2014년]]부턴 다시 튀르키예 경제가 후퇴하고 외환위기 경고에 물가도 폭등해 정의개발당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https://news.mt.co.kr/mtview.php?no=2020070907574169507|#]]] 또한 국내 정치적 문제에서도 세속주의 정권 아래에서 [[민간인 학살]]의 책임을 회피해 오던 전직 대통령이자 [[독재자]]인 [[케난 에브렌]]을 90대의 나이에도 법의 심판에 회부하여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등 과거사 청산에 대한 의지를 보였고 이는 좌우를 막론하고 대다수의 [[튀르키예인]]들에게 칭찬을 받았다. === [[에르도안]] 집권기 === 정의개발당이 첫 집권한 [[2002년]]부터 지금까지 튀르키예의 사회는 점점 더 종교적/문화적 보수성이 완연해지고 있다. 정의개발당 소속 의원이 공개적으로 튀르키예는 세속주의 헌법을 포기하고 이슬람적 가치관이 담긴 헌법을 채택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예전 같았으면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법한 일들도 이젠 진짜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 수준까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꼭 [[이슬람주의]]를 걸고 넘어지지 않더라도 현재의 정의개발당은 에르도안이라는 개인의 카리스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당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정의개발당 집권 초~중반기까지 [[의원내각제]] 시스템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시기에는 '총리=당수'라는 공식이 당연하게 성립되었지만[*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의회에서 다수당이 내각을 결성하고 그 당의 대표가 총리직을 갖게 된다. 그런 이유로 [[2013년]] 총리직에서 퇴임한 에르도안은 정의개발당의 당대표직을 가질 수 없었다.]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을 전후로 하여 에르도안의 권력은 한층 강화되었고, 결국 [[2017년]] [[대통령 중심제]]로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0985101|개헌]]을 이루어냄과 동시에 대통령[* 역시 [[의원내각제]] 국가의 보편적인 특징으로 명목상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당적을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존재한다. 이 쪽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이 당대표직을 겸직할 수 있도록 당규를 개정하여 AKP의 모든 당권을 장악하였다. 정의개발당 집권의 중반기부터 이어지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의 지속적 박탈,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폭압적 진압과 감금[* 대표적으로 [[2013 터키 시위]]]으로 인해 [[프리덤 하우스]]나 [[이코노미스트]]에서 조사하는 [[민주주의 지수]]들에서 튀르키예는 이미 '부분적 자유(Partly Free)[* 원래도 완전한 자유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세속주의 군부의 힘이 강하던 반 군정 체제일 때에도 부분적 자유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에서 '부자유(Not Free)' 급으로 격하된 지 오래이다. 또한 근래는 [[언론]] [[탄압]]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면모를 보여 주는데, 정부 비판적 논조를 띠는 휘리예트(Hurriyet) 신문의 기자들을 단체로 감금하고 십수 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구형한 것을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17년]] 본래 AKP와 연대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보다도 더 극우적인 [[민족주의운동당]](MHP) 출신인 여성 정치인 메랄 악셰네르가 탈당하여 신당 [[좋은 당]](iYi Parti)을 창당하였는데, 정의개발당의 지지율에 대한 악재가 되고 있다. [[튀르크]] [[민족주의]]에 [[이슬람주의]]를 더하면 정의개발당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데, 역시 튀르크 민족주의를 주장하지만 반대로 강력하게 세속주의를 외치는 [[좋은 당]]과 악셰네르는 AKP의 지지자 중 과격한 이슬람주의에 거부감을 느끼는 다수의 표를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에르도안이 2016년 쿠데타 미수 사건 이후 계엄령 하에서 밀어붙여 통과시킨[* 당시부터 [[부정선거]] 관련 논란이 존재했다. 애초에 이 쿠데타 자체가 개헌을 획책하기 위한 에르도안의 자작극이었다는 [[음모론]]까지 돌았을 정도.] [[대통령 중심제]] 헌법 하에서, [[2019년]]에 처음 실시될 예정이었던 대선 및 총선이 [[2018년]] 6월로 앞당겨졌는데 이를 위해 민족주의행동당과 다시 선거연대를 하기로 공식 발표했다. 한편 야권에서는 [[인민민주당]]을 제외한 [[공화인민당]], [[좋은 당]], 민주당(DP), 행복당(SP) 등이 야권연합을 결성하고 결선투표에 오른 야권 후보를 밀어 주기로 결정했다. 5월의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과 악셰네르가 결선에 오를 시 0.2%포인트의 지지율 차이로 초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드러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허나 [[2018년]] 튀르키예 대선 및 총선은 정의개발당과 [[민족주의행동당]]의 인민 연합이 압승하며 끝났다. 이전 여론조사와 꽤나 차이나는 결과에 [[부정선거]] 논란이 제기되고 [[공화인민당]]은 다음 달 [[결선투표]]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관권을 장악한 AKP와 에르도안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인다. 대선은 약 52%의 득표율을 가져가며 1차 투표에서 끝날 전망이며 총선에서도 표면적 득표율 자체는 떨어지고 의석수가 300석 미만으로 줄어들었지만 선거 동맹을 체결한 MHP와 합하면 의회 과반을 안정적으로 차지하게 된다. 전반적으로 [[에르도안]]과 AKP의 초장기집권을 뒷받침할 승리라는 평. [[2019년]] [[3월 31일]]에 열린 [[지방선거]]에선 정의개발당이 의외의 일격을 당했는데, 3대 대도시 [[앙카라]], [[이스탄불]], [[이즈미르]] 모두에서 광역단체장 자리를 잃었다. 전통적인 [[공화인민당]] 강세지역인 이즈미르는 차치하더라도 수도인 앙카라에서 무려 26년만에 야당이 승리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에르도안은 민족주의행동당이랑 연대해서 52%는 지켜냈다고 정신승리 중이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꽤나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황. 특히 현직에서 물러나지도 않은 채 이스탄불 민선도지사로 출마한 비날리 이을드름 총리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버렸다. 비날리 이을드름은 공화인민당 후보인 에크렘 이맘오울루와 엎치락 뒷치락 하던 와중 당선 축하 현수막까지 이스탄불 곳곳에 붙이는 등 [[설레발]]을 치다가 0.6%로 패배하자 "중앙선관위에서 무효처리한 표 중에 정의개발당으로 돌아간 표가 있는데 야당의 음모로 싸그리 무효처리시켜버렸다"며 이의제기를 했다. 이스탄불을 놓칠 수 없었는지 이래저래 군불을 떼우다 이스탄불 재선거가 기어코 결정나면서 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허나 결국 [[6월 23일]]에 있었던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에서도 8% 차이로 오히려 깔끔하게 패배했다. 이스탄불 선거 패배 이후 당 내분이 격하되면서 [[압둘라 귈]] 전 총리·대통령, 바바잔 전 부총리가 신당에 참여하기로 했으며, 전 총리였던 아흐메트 다우트오을루, 전 총리 네즈멧틴 에르바칸의 아들도 보수성향의 신당을 창당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의개발당 입장에서는 표가 분열되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과적으로 알리 바바잔이 총수가 되어 [[민주진보당(튀르키예)|Demokrasi ve Atilim Partisi]](민주진보당)을 결성해 떨어져나갔다. 민주진보당은 정의개발당 창당맴버인 알리 바바잔이 주역이 된 당으로 다원성, [[인권]], [[민주주의]] 수호를 당강령에 딱 박아놓고 초창기 정의개발당과 비슷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기존 정의개발당 지지자들의 표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중이다. 또한 아흐메트 다우트오을루 전 총리 또한 미래당([[https://gelecekpartisi.org.tr/|Gelecek Partisi]])이라는 원외정당을 세워 다가올 선거를 준비하는 중이다. [[2020년]] [[7월 29일]]부로 [[소셜 미디어]] 내 내용을 규제 및 [[검열]]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표현의 자유]] 침해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다.[[https://m.yna.co.kr/amp/view/AKR20200729160400108|#]] [[2021년]] 5월 [[튀르키예 마피아]]의 유명한 보스인 세다트 페케르가 정의개발당의 고위급 정치인들과 [[에르도안]]의 측근들의 각종 부정부패, 범죄를 폭로해서 또 한번 큰 스캔들에 직면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1&aid=0002472320|#]] == 지지 기반 == 정의개발당의 주된 지지 기반은 [[아나톨리아]] 중~동부 지역이다. 튀르키예 정치에서도 세계사적으로 제법 흔한 [[우촌좌도]] 구도가 존재한다. 특히 아나톨리아 서부와 국토의 3%뿐인 유럽 지역에 대부분의 산업 기반과 사회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는 튀르키예의 특성상 매 선거 때마다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이즈미르]] 같은 서부 대도시들에서는 [[공화인민당]] 같은 세속주의 정당의 세가 강한 모습을 보이나[* 그러나 이들 대도시에서도 농촌에서 새로 이주해온 주민이 많은 외곽 지역은 정의개발당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발전이 더디나 인구는 무시할 수 없이 많은 또한 다소 강경 보수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을 띠는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에서는 정의개발당의 힘이 강한 편이다. [[쿠르드족]]이 밀집되어 있는 동부에서도 쿠르드 [[민족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HDP)에 밀리기는 하지만 이슬람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기반으로 꽤나 표심을 가져가고 있다. 이렇게 도시 지역에서의 확장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채찍과 당근을 병행하는 정책으로 지지율을 높이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인프라 구축이나 신도시 건설 등으로 도시 지역 표를 가져오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여당에 반대하는 자치단체장들에게 교묘한 탄압을 가하는 것.[* 대도시 지역에서도 구와 동마다의 발전 정도 혹은 소득 수준에 따라 표심이 갈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8년 초 공화인민당 소속인 이스탄불의 베식타시 구청장을 대통령 권한으로 해임한 것이 그 대표적 예시이다. 게다가 꼭 야당이 아니더라도, 여당 내부에서도 에르도안의 권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숙청]]당하는데 총선 패배의 책임과 함께 에르도안의 노선에 영합하지 않아 사퇴를 권고받다가 결국 그만둔 이스탄불 시장의 사례도 존재한다. == 기타 == [[튀르키예]]가 [[키프로스]] 섬 북부에 세운 [[미승인국]] [[북키프로스]]의 정당들은 이념과 성향이 유사한 튀르키예 본토 정당들의 지역당에 가까운데, 정의개발당의 경우는 이 중 튀르크 민족주의 보수 정당으로 튀르키예의 북키프로스 병합을 주장하는 [[국민통일당]](UBP)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상징색 역시 황색으로 유사하다. [[인도]]의 [[인도 인민당]]과 포지션이 여러모로 유사하다. 두 정당들 모두 현 [[여당]]이며 성향은 반세속주의고 각각 [[힌두교]]와 [[이슬람교]] [[근본주의]] 성향을 띤다. 또한 두 정당 모두 기존 과거 여당(공화인민당, 인도 국민 회의)의 때론 강압적인 장기집권에 반대하여 창당되었으나 현재 행보로는 본인들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몰아낸 [[인도 국민 회의]]와 [[공화인민당]]은 국부(네루, 아타튀르크)에 의해 창당되었다는 데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당의 상징이 [[전구]]이기 때문에 극성 정의개발당 지지자들은 --[[정게할배|정개할배]]-- Ampülcü (암풀쥐, 전구쟁이)라고 불리며 까인다. 한국으로 치면 '[[대깨문|대깨전]]' 정도의 뉘앙스. == 선거 결과 == ||<-8> 총선 || || 연월일 || 득표수 || 득표율 || 득표율증감 || 의석수 || 의석수증감 || 비고 || || [[2002년]] [[11월 3일]] || 10,808,229표 || 34.28% || 신설 || 363/550 || 신설 || 첫 집권 || || [[2007년]] [[7월 22일]] || 16,327,291표 || 46.58% || +12.30%p || 341/550 || -22 || || [[2011년]] [[6월 12일]] || 21,399,082표 || 49.83% || +3.25%p || 327/550 || -14 || || [[2015년]] [[6월 7일]] || 18,867,411표 || 40.87% || -8.96%p || 258/550 || -69 || 과반의석 상실[br]연정 무산으로 재선거 || || [[2015년]] [[11월 1일]] || 23,681,926표 || 49.50% || +8.63%p || 317/550 || +59 || || [[2018년]] [[6월 24일]] || 21,335,579표 || 42.56% || -7.24%p || 295/600 || -22 || 두번째 과반의석 상실 [br] MHP와 연정 || ||<-8> 대선 || || 연월일 || 후보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선여부 || 비고 || || [[2014년]] [[8월 10일]]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 21,000,143표 || '''51.79%''' || '''1위''' || '''당선''' || 첫 직선 대통령 || || [[2018년]] [[6월 24일]] ||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 26,325,188표 || '''52.59%''' || '''1위''' || '''당선''' || 첫 [[대통령 중심제]] 하의 대통령 || ||<-8> 지방선거 || || 연월일 || 광역자치단체장[br](전국 득표율) || 기초자치단체장[br](전국 득표율) || 광역의원[br](전국 득표율) || 기초의원[br](전국 득표율) || 비고 || || [[2004년]] [[3월 28일]] || 12/16[br]46.07% || 1,750/3,193[br]40.19% || 2,276/3,208[br]41.67% || 16,637/34,477[br]40.33% || || [[2009년]] [[3월 29일]] || 10/16[br]42.19% || 1,442/2,903[br]38.64% || 1,889/3,281[br]38.39% || 14,732/32,393[br]38.16% || || [[2014년]] [[3월 30일]] || 18/30[br]45.54% || 800/1,351[br]43.13% || 779/1,251[br]45.43% || 10,530/20,500[br]42.87% || || [[2019년]] [[3월 31일]] || 15/30[br]50.00% || 762/1,351[br]56.40% || /1,251[br]% || /56.40[br]% || [[분류:독재정당]][[분류:이슬람 민주주의 정당]][[분류:보수주의 정당]][[분류:튀르키예의 정당]][[분류:2001년 정당]][[분류:우익대중주의 정당]][[분류:사회보수주의 정당]][[분류:국민보수주의 정당]][[분류:나무위키 정당 프로젝트]] [include(틀:포크됨2, title=정의개발당, d=2023-02-07 07:4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