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정 군주)] |||||| '''{{{#ece5b6 정(鄭)나라 12대 국군[br]{{{+1 영공}}}[br] 靈公}}}''' || |||| '''[[성씨|{{{#ece5b6 성}}}]]''' |||| 희(姬) || |||| '''[[본관|{{{#ece5b6 씨}}}]]''' |||| 정(鄭) || |||| '''[[휘|{{{#ece5b6 휘}}}]]''' |||| 이(夷) || |||| '''{{{#ece5b6 아버지}}}''' |||| [[정목공]](鄭穆公) 희란(姬蘭) || || '''{{{#ece5b6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605년 || || '''{{{#ece5b6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05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춘추시대]] [[정나라|정(鄭)나라]]의 제12대 [[군주]]. [[정목공]]의 아들. [[정양공]]의 형. 자라탕 가지고 장난치다가 공자 송(宋)에게 살해당하는, [[식지동]]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다. == 최후 == 정 영공(기원전 605년) 봄, [[초(춘추전국시대)|초(楚)나라]]에서 정영공에게 자라를 보내자 공자 송이 공자 귀생과 함께 정 영공을 알현했다. 공자 송이 자신의 검지[* 원문에서는 식지. [[식지동]] 참조.]가 떨리자 이는 진미를 먹을 징조라 했는데, 그때 마침 [[자라]]를 먹게 되었다. 그러나 정 영공은 공자를 곯려주려고 자라탕을 일부러 한 그릇 모자라게 끓이도록 명령했다. 그래서 자라탕은 공자 송의 차례에 딱 바닥이 나고 말았다. 공자 송은 그 굴욕을 참지 못하고 크게 노해 공자 귀생과 함께 정 영공을 죽이려고 음모를 짰고, 그 음모대로 정 영공은 살해당했다. 현대에서 보면 별 시답잖은 이유로 죽인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조금만 모욕을 받아도 죽이는 상황이 다수였다. [[송민공(17대)]]이 장수 남궁장만에게 살해당한 것도 그렇다. 게다가 예로부터 고기는 그를 나누는 일을 제사장이 주관할 정도로 귀하고 신성한 음식으로 여겼는데, 그걸 가지고 장난을 쳤으니 그 모욕의 정도는 매우 심했다. 좋지 않은 시호로 손꼽히는 한자 중 하나인 영(靈)이 붙었으니 최악의 [[암군]]이라고 불릴 만 하다. 그래서 그 동생인 공자 견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정 양공이다. [각주] [[분류:정나라의 군주]][[분류:기원전 605년 사망]][[분류: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