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목록]] [include(틀:제3대 국회의원/전라북도)] [include(틀:제4대 국회의원/전라북도)] [[파일:external/rokps.or.kr/511.jpg|width=150]] 鄭世煥 1915년 12월 16일 ~ 1986년 10월 12일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1915년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연동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니혼대학]] 정치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고창중학교 재단[[이사장]], 대산금융조합장, 중산수리조합장, 재단법인 정치학원 [[이사(직위)|이사]], [[국민회(1945년)|국민회]] 전라북도 지부장을 지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북도]] [[고창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자유당 진의종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진의종에게 자유당 [[공천]]에서 밀렸다. 이에 자유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다시 자유당 진의종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당선 후 [[이재현(1917)|이재현]], [[박상길(1925)|박상길]], [[최석림]], [[유기수(1908)|유기수]], [[현오봉]], [[신영주]] 등과 자유당에 복당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는 [[민주당(1955년)|민주당]] [[류진(정치인)|류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1년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공화당]]에 전라북도 고창군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성정기에 밀리자 민주공화당을 탈당하여 민정당에 입당하였고 [[민정당]] [[김상흠]] 후보를 지원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신용남]]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고창군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1986년 사망]][[분류:제3대 국회의원]][[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니혼대학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