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손오의 인물, rd1=정봉(손오), other2=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rd2=정봉(삼국지연의), other3=대월 후 레 왕조 찐 주의 군주, rd3=찐봉)] [include(틀:오의 군권 1인자)] ---- [include(틀:오서)] ---- [include(틀:강동십이호신)]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B0000 0%, #8B0000 20%, #8B0000 80%, #8B0000)" '''{{{#fecd21 {{{+1 [[강동십이호신|{{{#fecd21 강동십이호신(江東十二虎臣)}}}]]}}}[br]丁奉[br]정봉}}}'''}}}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ingFeng.jpg|width=100%]]}}} || ||<:> '''[[직위|{{{#FEDC21 최종직위}}}]]''' ||<(> 우대사마^^(右大司馬)^^ || ||<:> '''[[성씨|{{{#FEDC21 성씨}}}]]'''||<(> 정^^(丁)^^ || ||<:> '''[[휘|{{{#FEDC21 휘}}}]]'''||<(> 봉^^(奉)^^ || ||<:> '''[[자(이름)|{{{#FEDC21 자}}}]]'''||<(> 승연^^(承淵)^^ || ||<:> {{{#FEDC21 '''생몰기간'''}}} ||<(> (? ~ 271) || ||<:> '''{{{#FEDC21 고향}}}''' ||<(> 양주 여강군 안풍현[* 現 [[하남성]] [[신양시]] 구스(고시:固始)현] || [목차] [clearfix] == 개요 ==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삼국시대)|손오]]의 [[용장]]으로 [[양주(중국)|양주]] 여강군 안풍현 사람. 사실 정사에서는 '''[[제갈량]] 사후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중후기에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정사에서 정봉이 215년/219년에 사망한 [[감녕]] 소속 장수였음을 생각하면 어리게 잡아도 200년 이전 생이며, 정봉의 커리어가 252년 [[동흥제 전투|동흥 전투]]부터 몰년인 271년까지에 집중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50대에 처음 두각을 나타내고 70대까지 활약한 [[대기만성]]형 [[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사의《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에서 마지막에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그가 후시대 인물이라는데 증거를 보탠다. == [[삼국지(정사)|정사]] == > 어려서 용맹하여 소장(小將)이 돼, [[감녕]](甘寧), [[육손]](陸遜), [[반장(삼국지)|반장]](潘璋) 등에게 속했다.[* 감녕의 군사들은 감녕이 사망한 후 [[이릉대전]] 당시 [[세병제|육손에게 급하게 사용되다 이후 반장에게 귀속된다.]]] 자주 정벌에 따라가, 전투하면 항상 군에서 앞장섰다. 매번 장수를 참살하고 깃발(旗)을 뽑아 내며,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 점점 승진해 편장군(偏將軍)이 됐다. [[손량]](孫亮)이 즉위하고, 관군장군(冠軍將軍)이 됐고,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졌다. 젊었을 때부터 용맹을 떨쳐 '''싸움터에서 선봉으로 매번 적장을 베고 깃발을 탈취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도 상처를 입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타고난 맹장이었을 듯. [[손권]]을 따라나서 어려서부터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서 명성을 쌓아나갔고 252년 12월에 손권이 사망한 후 [[제갈탄]], [[호준]] 등이 지휘한 [[위(삼국시대)|조위]]의 공격에서도 [[제갈각]]의 휘하에서 위군 진영을 공격해서 적장 [[한종]][* 손가 3대를 섬긴 그 [[한당]]의 매국노 [[호부견자|아들]]이다.]을 베는 전과를 세웠다. 이 때 그는 병사들에게 갑옷을 풀고 단병기만 지니도록 했으며, 위군은 정봉군이 오는 걸 보고서도 그 수가 적고 가벼운 옷차림인 것을 보고 제대로 방비를 하지 않아[* 일반적인 기습과는 좀 다른 상황으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적군이 보는 앞에서 그냥 돌격하여 무쌍을 찍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공격 과정에 대한 기술은 정사와 연의가 일치한다.] 크게 패했다. 그 공으로 멸구장군, 나아가 도향후로 승격한다. 255년 [[문흠]]이 위군에 패하고 [[오나라]]로 도망왔을때에도 추격해온 위군을 격파하여서 문흠을 맞아들였다. 이때 그야말로 초인적인 용력을 보였는데 이는 오서 정봉전에 기록되어 있다. || 奉跨馬持矛,突入其陣中,斬首數百,獲其軍器. 정봉이 말을 타고 [[모(무기)|모]]를 들고, 적의 진중으로 돌입하여, 수백 명의 머리를 베고, 군기를 노획했다. || '''단기로 적병 수백을 베고 [[군기]]를 빼앗아 왔다'''고 하는데, 군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대의 상징 겸 지휘 통신체계로서 [[지휘관]]의 생명과 더불어 정예병으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군기를 탈취당했다는 건 부대가 아예 [[개발살]]이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보다 조금 앞서 [[문앙]]이 보인 용맹에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위력이다. '''말 그대로 일기당천 무쌍난무.''' 257년 [[제갈탄]]의 [[반란]]([[제갈탄의 난]])때에도 그를 돕기 위해서 참전하였다. 이후 [[손휴]]가 제위에 오른 후 [[손침]]을 제거할 계획을 세울 때 [[장포(손오)|장포]]가 그를 추천했고 이에 가담하여서 258년에 손침을 죽이고 이 공로로 [[대장군]]으로 승진한다. 263년 [[위나라]]의 [[등애]]가 [[촉한|촉]]을 공격할 때([[촉한멸망전]]) 구원을 위해 동생 [[정봉(손오)|정봉]](丁封)을 [[촉나라|촉]]으로 보내고 ~~정봉 형 정봉~~ 본인은 위군의 군사력 분산을 위해 [[수춘]]으로 출진했으나 [[유선(삼국지)|유선]]이 이미 [[항복]]하였기에 회군한다. 손휴가 사망한 후에는 [[손호]]를 차기 [[황제]]로 추대하고 [[사마(관직)|우대사마]] 좌[[군사]]로 승진한다. 268년 11월 제갈탄의 아들 [[제갈정]]과 함께 [[합비]]를 공격하지만 여음왕 [[사마준]]에게 패배했다. 269년 곡양성을 공격했지만 여기서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우장군사마를 지냈고 270년에도 군을 보내 [[진(사마씨)|진나라]]([[서진]])의 와구(渦口)를 공격했지만 공이 없음을 추궁받아 271년 12월, 분노한 손호에 의해서 정봉의 도군(導軍)이 처형되었다. 271년 [[만욱]]이 정봉과 [[유평]]에게 손호를 단념하도록 발언했는데, 이 발언이 손호의 귀에 들어가서 272년 신년연회에서 만욱과 유평에게 독주를 보내는 등 [[사사]]시켜 죽게 만들었지만 이 시점에서 정봉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 아들 [[정온]]이 [[연좌제|대신 처형당했다고 한다]]. 정봉은 승진하면서 점점 교만한 태도를 보였으며, 그가 죽은 다음 해인 272년에는 손호에게 정봉을 참언한 자가 있어서 생전의 군사행동에서의 실패를 이유로 정봉의 유족은 임천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건강실록]]에 따르면, 정봉이 손호에게 처형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삼국지집해]]를 비롯한 다른 여러 기록에는 정봉의 아들이 처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걸 보아 건강실록의 기록이 틀린 것일 가능성도 있다.] 말년 정봉의 태도 및 처신 그리고 손오 희대의 [[폭군]] 손호의 행적을 생각하면 [[영 좋지 못한]] 최후를 맞았을테니 그 전에 죽은 것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 [[삼국지연의|연의]] == '''[[미친 존재감]]'''으로 장수한 인물로 나와 [[황충]], [[요화]] 등과 함께 노장의 이미지가 남은 케이스다. 물론 연의에서는 본인보다 한 세대 위인 서성과 세트로 나와 손권 초기 전투부터 등장하니 [[오나라의 요절징크스]]에서 그야말로 독보적인 미친 존재감 급의 노장이 된 것이다. 연의에서 너무 일찍부터 장수로 등장했기 때문에 [[문흠]], [[문앙]], [[제갈탄]]보다도 익숙하다. 이는 시대 고증 오류에 따른 [[삼국지연의/수혜자|삼국지연의의 대표적 수혜자]]. 연의에서는 [[서성]]과 세트로 나오는데, 실제 정사에서 정봉이 장군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한 기록은 손권 사후부터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미스매치.[* 정봉은 190~200년대 출생일 확률이 높은데, 서성은 170년대생으로 추정되니 실제로는 나이차, 계급차가 많이 나는 편이다.] 손권 초창기 전투에서 대부분 등장한다. 콤비로서도 덕을 보아, 천막과 지푸라기로 가짜 성벽을 만들어서 위성계로 [[조비]]에게 엿을 먹인 서성과 콤비가 되어 맹활약을 한다든지 하는 활약이 추가되는 등 '''[[오(삼국시대)|손오]]의 장군들 중 거의 유일한 [[삼국지연의/수혜자]]다.''' '''[[삼국지연의/피해자|다만 정사에서 보여준 그의 용맹이 그다지 부각되지는 못한다.]]''' [[정비석 삼국지]] 등에 의하면 서성과 힘을 합치고도 [[손부인]]에게 쫓겨나서 손권이 [[주태]]를 출동시키게 만들었다. 오나라로 가길 거부하는 손부인을 정봉이 서성과 같이 끌고가려다가 손부인에게 어디서 감히 헛소리냐고 하자 [[데꿀멍]](...)[* 그런데 이건 딱히 뭐라하기도 뭐한게 정봉과 서성은 후에 나오는 주태처럼 손부인을 완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을 받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주군]]의 [[여동생]]에게 함부로 손을 댄다는건 부하로써 목숨까지 좌우되는 일이기에[* 당장 손권이 아니라 [[오국태]]한테 목이 날아갈 것이다.] 굴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태가 와서 손부인도 유비와 함께 베어오라고 했으나 이미 그때는 유비가 다 도망을 가고 제갈량의 함대가 출현한 뒤였다. 특히 224년 조비의 [[조비의 남정|오나라 침공 때에는]] 87회에서 ~~영혼의 콤비~~ [[서성]]과 같이 참전하여 '''[[장료]]를 사살하는 대공을 세운다.'''[* 정사에서 장료는 222년에 이미 병사한다.] 113회에서는 손침을 주살할 때 활약하며, 118회에선 동생과 함께 촉으로 갈 구원군 대장이 됐으나 도착하기 전에 촉한이 [[멸망]]한다. == 미디어 믹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정봉/기타 창작물)] [각주] [[분류:손오의 인물]][[분류:271년 사망]][[분류:신양시 출신 인물]] [include(틀:포크됨2, title=정봉, d=2023-01-18 07: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