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삼성 라이온즈/간략(코칭스태프))] || '''{{{#ffffff 정대현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KBO 퓨처스리그 감독)] ---- [include(틀:쌍방울 레이더스 1차 지명선수)] ---- || '''{{{#ffffff 정대현의 수상 경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 [[파일:퐁황.jpg|width=60]] '''1996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s-3]] MVP''' || ---- ||<-3> [[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width=50]][[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width=50]][[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width=50]][br]'''KBO 리그 한국시리즈[br]우승반지''' || || '''[[2007년 한국시리즈|{{{#ffffff 2007}}}]]''' || '''[[2008년 한국시리즈|{{{#ffffff 2008}}}]]''' || '''[[2010년 한국시리즈|{{{#ffffff 201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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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829662201252.jpg|width=100%]]}}} || ||<-2> '''삼성 라이온즈 No.''' || ||<-2> '''{{{#074ca1 {{{+2 정대현}}}[br]鄭大炫 | Chong Tae-Hyon}}}'''[*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라서 적은 것으로, 반달점 Bréve는 빠졌지만 2000년 개정 이전 당시에 표기법을 맞게 적었다. 다만, 표기법에 맞춰 쓰는 사람이 오히려 적어서 특이하게 보이는 경우 중 하나다.][* [[세계야구소프트볼 총연맹|WBSC]] 공식 등록명] || ||<|2> '''출생''' ||[[1978년]] [[11월 10일]] ([age(1978-11-10)]세) || ||[[전라북도]] [[군산시]]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군산중앙초 - [[군산중학교|군산중]] - [[군산상일고등학교 야구부|군산상고]] - [[경희대학교 야구부|경희대]] || || '''신체''' ||185cm, 101kg || || '''포지션''' ||[[투수]][*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주로 [[마무리 투수]]로 출전했으나 [[롯데 자이언츠]] 시절에는 주로 [[중간계투]]로 출전했다.] || || '''투타''' ||[[우언우타]] ||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1997년/신인드래프트#s-2|1997년 고졸우선지명]]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권 승계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다.] || ||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1~2011)''' [br] [[롯데 자이언츠]] (2012~2017) || || '''국가대표'''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BAF 인터컨티넨탈컵]] 2회 {{{-2 (1994, 2002)}}}[br][[올림픽]] 2회 {{{-2 (2000, 2008)}}}[br][[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3회 {{{-2 (2006, 2009, 2013)}}}[br][[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1회 {{{-2 (2007)}}}[br][[아시안 게임]] 1회 {{{-2 (2010)}}}[br][[WBSC 프리미어 12]] 2회 {{{-2 (2015)}}}}}} || || '''지도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군 연수코치 (2018) [br] [[동의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9~2023)[* 정식 지도자 등록은 2020년.][br][[삼성 라이온즈/2군|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24~)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불펜코치 (2021 / 2023) || || '''병역''' ||[[전시근로역|제2국민역]][*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예술체육요원|병역특례]]를 받은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무릎 수술 경력으로 인해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았다.] || || '''가족''' ||부모님, 아내 박상민, 아들 정범준, 딸 정서진|| [목차] [clearfix]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정대국.jpg|width=100%]]}}} ||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이다 정통 [[언더핸드 스로|언더핸드]] [[마무리 투수]]로, [[손승락]], [[구대성]], [[오승환]], [[임창용]]과 함께 [[마무리 투수]]의 대표격으로 언급되던 선수이다. 1999년부터 2015년까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 9회말에 등판하여 상대팀 쿠바의 병살을 유도하고 한국의 금메달을 완성한 것으로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SK 와이번스]]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이적한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노쇠화와 부상 때문인지 기대만 못한 성적을 냈다. 그럼에도 국제대회에서는 가히 최종병기라고 불릴 만한 기량을 자랑했었다.[* [[김정준]] 해설위원 말로는 국제대회에서는 싱커보다 뜨는 커브가 기가 막히게 들어갔다고 한다.] 롯데에서는 이적 첫 해인 2012년[* 그나마도 부상으로 전반기를 거의 날리고 후반기에만 나섰다. 그 기간 워낙 언터쳐블급 포스를 보여줬기에 롯데 팬들의 기대감을 키웠지만 커리어가 종료된 후 돌아보면 이 시즌이 롯데에서의 커리어 하이였다.]을 제외하면 나머지 5년간 [[김성배]], [[홍성민]] 등 다른 언더-사이드암 투수에 비해 훨씬 안 좋은 성적을 올렸을 뿐더러 부상에 시달리며 풀타임을 뛰지 못 한 경우도 허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간동안 참여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는 SK시절 여왕벌의 위용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롯데 팬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 [[정대현(1978)/선수 경력|선수 경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2080901000947600077011.jpg|width=100%]]}}} || || '''정대현의 선수 경력''' || ||<^|1>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4> '''통합 선수 경력''': '''[[정대현(1978)/선수 경력]]''' || ||<-4>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2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e3466 26.47%, #ff0000 31.47%, 63.235%, #f58220 68.235%)" '''[[KBO 리그|[[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width=110]]]]'''}}}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2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1e3466 67.857%, #ff0000 72.857%)" [[정대현(1978)/선수 경력#s-2.1|'''{{{#white 2001~2007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2.2|'''{{{#fff 2008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2.3|'''{{{#fff 2009년}}}''']] || || [[정대현(1978)/선수 경력#s-2.4|'''{{{#fff 2010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2011년|'''{{{#ffffff 2011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2012년|'''{{{#ffffff 2012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2013년|'''{{{#ffffff 2013년}}}''']] || || [[정대현(1978)/선수 경력/2014년|'''{{{#ffffff 2014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3.4|'''{{{#fff 2015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3.5|'''{{{#fff 2016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3.6|'''{{{#fff 2017년}}}''']] || ||<-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width=50]]]] || ||<-4>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1|'''{{{#ffffff 1999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2|'''{{{#ffffff 2000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3|'''{{{#ffffff 2002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4|'''{{{#ffffff 2006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5|'''{{{#ffffff 2007년}}}''']] ||}}} || ||<-4>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6|'''{{{#ffffff 2008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7|'''{{{#ffffff 2009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8|'''{{{#ffffff 2010년}}}''']] || [[정대현(1978)/선수 경력#s-4.9|'''{{{#ffffff 2013년}}}''']] ||<-2> [[정대현(1978)/선수 경력#s-4.10|'''{{{#ffffff 2015년}}}''']] ||}}} || }}}}}}}}} || == 피칭 스타일 == >정지원: 선수 시절에 정대현 선수와 상대했을 때 어땠습니까? >[[마해영]]: 그냥 마운드에 정대현 선수가 있으면 '''대타로 바꿔줬으면 했어요.''' >----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해설을 맡은 [[정지원]]과 [[마해영]]의 대담 중[* [[마해영]]이 정대현과 제대로 맞붙은 해는 2002~2006, 2008년이므로 전성기를 지나 하락세가 오던 시기였다. 역으로 정대현은 05년까지는 여러 보직을 오가고 1군 레귤러긴 했지만 완전한 필승계투라 보기는 어려웠음에도 마해영이 까다로워했다는 것에서 정대현의 구위를 체감할 수 있다.] 정통 언더스로 투수로, [[고창성]] 등의 투수들은 언더인가 사이드암인가 논쟁이 오가기도 하지만 정대현은 논쟁의 여지없이 모두 언더핸드로 분류한다. 구속은 느려서 속구가 130km/h 초반대로 평범하지만 그걸 상쇄할 정도로 공의 무브먼트가 아주 좋다. 뜬공보다는 땅볼이 매우 많으며, 덕분에 적은 이닝을 틀어막는 데 아주 적합하다. 본래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의 공은 무브먼트가 오버핸드나 쓰리쿼터보다 심하다고 하는데, 정대현의 무브먼트는 특히 더 격렬해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때 정대현과 불펜에서 호흡을 맞춰 본 포수 [[강민호]]는 "정대현 선배가 말하길, '형은 똑바로 가는 공이 없다. 직구 사인이 나면 공이 약간 휠 거다'라고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볼 끝이 더럽다. 3루, 1루 덕아웃에서 볼 때 정대현의 공은 던지는 순간 아래로 살짝 내려 앉다가 위로 솟구친 뒤 홈플레이트 앞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대현의 공을 받아본 지 얼마 안 된 포수들은 절대로 미트질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유가 볼 끝이 몹시 더러워서 엄지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미지와는 달리 제구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구속이 느려서 그런지 제구가 좋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실제로는 구속이 느릴 뿐 엄청난 구위를 기반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쑤셔박아 K/BB를 올렸던 파워 피쳐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언더스로 투수들이 폼의 안정성 때문에 제구력이 나쁜 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언더스로 치고는 괜찮았던 편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언더스로 투수인 [[와타나베 슌스케]]도 리그에서 제구력이 좋다는 소리는 빈말로라도 못들었으며,[* 2006 WBC 한국과의 경기에서 호투로 한국 타자들이 공략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는데, 그 와중에 몸맞는공이 꽤 있었을 정도로 제구력이 왔다갔다했다.] [[박종훈]]도 커리어 내내 제구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25EC%258B%25B1%25EC%25BB%25A4.gif|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084b5d382052850f3d96187b56be02bc.gif|width=100%]]}}} || '''최고의 무기는 단연 싱커.''' 국내 최고의 싱커 투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뒷받침용 구종으로는 싱커와는 반대의 무브먼트를 가진 일반 커브, 110km/h 후반대의 업슛성 커브[* 싱커가 땅볼 유도용으로 쓰인다면 업슛성 커브는 주로 헛스윙 유도용으로 쓰이는 또 다른 필살기다. 솟아오르는 정도가 심해, 쳐도 내야 플라이에 그친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서 안쪽 코너로 절묘하게 걸치는 백도어성 슬라이더 등의 변화구를 구사한다. 덕분에 전성기 정대현은 우타자들에겐 악몽같은 존재로 군림했었다. 좌타자들에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주로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우타자에 비해서는 좀 성적이 떨어진다. 완급 조절과 수싸움 역시 뛰어나다. 프로 생활 내내 [[보크(야구)|보크]]를 단 한 번도 기록하지 않고 은퇴했다는 점도 특이한 점. 사실 언더핸드라 견제 자체가 상당히 힘들기도 하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때 [[선동열]]이 굳이 [[김인식]]과 상의해서 좀 더 견제하기 편한 좌완 투수인 [[이현승(야구선수)|이현승]]으로 바꾼 것만 봐도...] 근데 견제 자체는 시도하면 꽤 많이 잡아냈다. 단 내구성이 좀 약한 편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단점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투수진을 짜내는 운영을 하는 [[김성근]] 감독조차 혹사 시키지 않고 철저하게 관리해가며 등판시켰다.[* 이닝 수가 많아보이는 건 00년대 중반 마무리 투수들이 전체적으로 이닝을 많이 먹은 탓이 크다.] 실제로 팀 전체가 처지고 불펜 사정이 역대급으로 급하게 돌아가던 SK의 2010년 여름에도 '''정대현만큼은 등판일정, 투구수, 이닝을 철저하게 지켰었다'''. 물론 실적 하나는 확실하기 때문에 지켜준 만큼 잘 막았다. 팀 입장에서는 경기에 급하게 핵심 불펜을 쓰는 것보다 건강만 하다면 리그 톱 클래스인 투수를 부상으로 날려먹는 것이 더 큰 손해이기 때문에 별 말은 안 나온 편. 정대현 본인은 유리몸이라는 시선에 대해 스탭들의 관리 차원이지 공을 못 던질 정도의 몸은 아니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실제로 통산 등판 경기가 662경기로 역대 19위다. 다만 정대현의 프로생활 17년 중 부상없이 풀타임 출장한 시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런 부상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 과도하게 굴리지 않았을 뿐이다. [[김성근]]의 혹사를 비켜나간 사실상 유일한 투수이다. 다만 내구성이 약하다는 게 연투나 로테이션을 도는 게 문제인 거지, 한 경기에서 이닝을 오래 끄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2014년까지는 나름 가비지 이닝 정도면 2~3이닝을 먹기도 하는 등 이닝 소화력이 충분히 괜찮았다. [[우규민]]과 비슷하게 장기 연투가 어려운 거지 단일 경기에서의 이닝 소화력은 뛰어난 편이다. 본래 대학교까지는 선발이었고, 시드니 올림픽 때도 [[허구연]]이 말하듯 승리는 못 챙겼으나 많은 이닝을 좋은 투구로 책임져 동메달을 따는 데 크게 기여했었다. 프로 기준으로 애매한 제구력과 로테이션을 꾸준히 돌기 힘든 내구성을 가졌지만 너무나도 좋은 구위를 감안해 빠르게 불펜으로 전환해 대성공한 케이스이다. 또한, 위에서 말한 내구성과 이어지는 부분으로 운동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채드 브래드포드]] 스타일 투구 폼과 맞물려 주자 견제와 투수 수비가 매우 약하다. 몸이 둔하고[* 잠수함투수라 샤프하고 날쌜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정대현은 몸무게가 100kg이 넘어가는 거구였다.] 무릎 수술 경력으로 달리기가 힘들어 1루 커버도 매우 느린 편이었다. 땅볼 유도형 투수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이지만, 이런 치명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통산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이 역설적으로 그의 공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를 증명해주는 부분이다. == 지도자 경력 == 은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뒤 2019년부터 [[정보명]] [[동의대학교 야구부]] 신임 감독의 요청을 받고 동의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 [[http://naver.me/xnEqzGyp|#]] 2020년이 되어서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정식 지도자로 등록되었다. 이어 다음 해인 2020년에는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고 [[최원호]]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불펜코치로 부임하면서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다. 이후 [[류중일]] 감독으로 바뀐 후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표팀의 불펜코치 역할을 수행했다. 2023년 10월 17일, [[이종열]] 단장의 부름을 받고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미 이종열 단장과는 [[2020 도쿄 올림픽]],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같은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종열 단장이 대대적인 퓨처스 코칭스태프 개편을 선언한 만큼 그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1월 3일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별명 == 가장 대표적인 별명은 역시 '''여왕벌'''. SK 시절 [[김성근]] 감독의 운영을 벌떼야구라고 불렀는데 그 중 가장 관리 받으면서 마지막에 나온다고 해서 여왕벌이 되었다. 여기서 여왕벌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퀸비'(Queen Bee), 롯데 이적 후 생긴 '''여왕갈매기''' 등의 별명이 파생되었다. 별명이 [[http://pds22.egloos.com/pds/201105/01/91/b0039291_4dbc29e2b0a81.jpg|여왕벌]]이라는 게 일본에도 알려져 [[여체화]]되었다. [[http://www.pixiv.net/member_illust.php?mode=medium&illust_id=17010505|#]]. 이 작가는 [[이대호]], [[이대형]], [[김광현]], [[김병현]] 등을 여체화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의 활약으로 '직각갑', ''''궁'''내 '''체'''고의 '''씽'''카볼 투수'[* 올림픽 결승전 9회말 1사 만루의 위기상황에서 병살타를 유도하는 투구를 하기 직전, 전자는 [[한광섭]]이, 후자는 [[허구연]]이 한 말.] 등등의 별명이 생겼다. 이 때문에 2012년 SK로 이적한 [[임경완]]의 별명 중 '작각갑'이 생겼다. [[이대호]]의 '''카운터'''. 중요한 상황에서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면 전담 투수로 나올 때가 있었다. 통산 맞대결 전적이 '''54타석에서 49타수 5안타 6삼진 4볼넷 1사구 1희생플라이'''로 상대 타율은 '''0.102''' 이 때문에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정대현을 부르는 별명이 생겼으니 이름하여 '''[[돼지]] 도살자'''. [[이대호]]가 '''9경기 연속 홈런'''과 '''타격 7관왕'''을 기록하는 등 타격 능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2010년에도 어김없이 '''9타수 무안타'''로 막아냈으며, 6월 27일 사직경기 6회말 상황에서 [[김광현]]이 무사 1,2루 상황을 자초하고 다음 타석에 [[이대호]]가 들어서자 어김없이 구원 등판, 깔끔한 '''6-4-3 [[병살타]]'''를 유도하고 결국 그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8월 18일 경기야말로 백미. 1사 만루에 [[이대호]] 타석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이 정대현이 등판, '''[[이대호]] 한 명만을 잡아낸 후 내려갔다'''. 이쯤 되면 불쌍할 지경. [[이대호]]도 "대현이 형만 없으면 '''4할에 50홈런'''은 칠 수 있었다" 라고 한탄하기도.[* 이대호 항목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이 시즌 [[이대호]]의 대 SK전 타율은 '''0.197'''이다.] 2011년 6월 14일 경기에서는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이대호]]가 나오자 어김없이 등장. 그 결과는 초구 쳐서 투수 앞 땅볼…. 야갤에서는 시구 드립이 흘러 넘쳤다.[* 이때 정대현이 등판하자 [[이대호]] 본인도 어이없었던지 SK 덕아웃 쪽을 보며 허탈한듯 웃음을 지었다고. [[김성근]] 당시 SK 감독도 마주 웃어줬다는 후문.] 하지만 다음날 경기에서 '''3년 9개월'''만에 안타를 허용했다. 그래도 후속타자 [[강민호]]를 병살로 잡아내서 위기 탈출. 2011년 7월 8일 문학 경기에서 다시 만났다. 7회초 [[김주찬]]과 [[손아섭]]의 안타로 무사 1, 3루 상태에서 [[이대호]]가 등장하자 '''어김없이 정대현이 등판했다.''' 결과는 [[이대호]]의 희생플라이로 1점 획득. 하지만 이미 6회말에 [[진명호]]가 불을 질러 7점을 내주면서 이미 승부가 기운 상태인데다 [[이대호]] 이후 [[강민호]]와 대타 [[홍성흔]]을 각각 우익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잡아내며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KBO 플레이오프/2011년|201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이대호]]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였다. 2017년 [[이대호]]가 친정팀 롯데로 복귀해 같은 팀이 되며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kt의 동명이인 투수 [[정대현(1991)|정대현]]을 상대로 롯데 타선이 폭발하는 동안 [[이대호]]가 단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하여 오랜만에 회자되었다. == 여담 == * [[파일:external/pds18.egloos.com/f0018015_4e1a79974426e.gif]] 수싸움이 굉장이 능한 편. 1루에 대주자 [[양종민]]이 나가 있자 주자 견제를 할 거라는 싸인을 준 후 견제.[* 초구 던지기 전에 한 번, 볼카운트 1 and 1에서 한 번씩 견제를 하였다.] 1스트라이크 3볼의 볼카운트에서 양종민은 도루를 시도했고, 결국 양종민은 도루에 실패했다. * ||
[[파일:VWbZBxJ.gif]] || || '''상호야, 생각해, 생각. 생각하라고.''' || [[정상호]] 문서에도 있지만, '상호야 생각을 해 생각을' 짤방으로 유명하다. * [[오승환]]만큼이나 표정이 없다. 그래도 팬서비스는 꾸준히 해준 모양. 롯데 시절에도 특유의 무표정으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해줄 건 다 해주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시절에 [[이진영]]이 썼던 베이징 일기에 따르면, 정대현이나 오승환이나 떼놓으면 말이 없는데 붙어 있으면 뭔 말을 그렇게 조잘조잘 많이 한다고 한다. 정대현 본인도 오승환과 친한 편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고향이 비슷하고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이 겹쳤어서 그런 듯하다. * 인터뷰를 잘 안 하는 것 같다. 영상 찾기가 쉽지가 않다. * 프리미어 12 결승전 해설을 하던 역시나 국가대표 단골이었던 [[이승엽]]은 정대현이 극히 말수가 적다고 하면서, 나중에 하이라이트를 보고서야 정대현도 같이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했던 걸 알았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 경희대 재학 시절, 선배 [[홍성흔]]의 방졸이었다. 자고 있는 정대현을 깨워서 라면을 끓어오게 했는데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였다고 극찬한 바 있다. [[http://sports.hankooki.com/lpage/baseball/201207/sp2012071907034057360.htm|관련 기사]] 그런데 사실 홍성흔의 나쁜 일면을 볼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하다. 말수 적고 별다른 불평도 없는 편인 정대현이 홍성흔에게 "너무 맞았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였다. * 흔히들 [[2000 시드니 올림픽]]으로 인한 [[예술체육요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미 군대를 면제받은 상태에서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참여한 것이다. * 직각갑이라는 별명 때문에 정대현과 비슷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언더핸드 투수들에게 -각갑이라는 별명이 붙는 경우가 있다. [[신주영(야구선수)|칰각갑]], [[임경완|작각갑]],[* 작이라는 글자는 작다는 뜻이 아닌 작가라는 뜻이다.] [[이재곤|족각갑]] 등등. * 야외 구기종목인 야구 선수임을 감안하면 꽤 하얗다. 다른 선수들 사이에 있으면 혼자 둥둥 떠보일 때도 있을 정도. 피부가 꽤 좋은 듯. *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이효리]] - Any Star를 등장곡으로 썼고, [[롯데 자이언츠]] 시절에는 Where You Have You Gone Dj Myno Remix를 등장곡으로 썼다. * 현 SSG 랜더스 투수인 [[장지훈(1998)|장지훈]]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각주] [[분류:정대현(19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