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5대 국회의원/경상남도)] [[파일:external/rokps.or.kr/737.jpg|width=150]] 鄭南奎 [[1917년]] [[2월 14일]] ~ [[1994년]] [[6월 19일]]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이다. 1917년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나니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이던 청년 시절에는 [[일본 제국|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하였다. [[8.15 광복]] 이후에는 부산일보 특파원, 대동일보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1952년 지방선거]]에서 초대 [[마산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었다. 1955년 [[민주당(1955년)|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고, 민주당에서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56년 지방선거]]에서 [[경상남도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경상남도의원 재임 기간이던 1960년 3월 [[3.15 부정선거]] 부정 신고 현장을 적발하여 폭로하였다. 이 때, 정남규의 부인 안맹선은 민주당 측 참관인으로 있다가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투표함을 뒤엎었다. 이어서 민주당원과 시민들을 동원하여 불종거리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러다가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승만]] 정권은 그가 [[남조선로동당]] 사람이라고 누명을 씌웠다. 자세한 것은 [[4.19 혁명]] 문서 참조.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다가 민주당 구파 출신으로 출마하여 낙선한 강선규로부터 선거 무효 소송을 당하였으나 강선규가 다시 해당 소송을 취하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1963년)|국민의당]] 후보로 경상남도 마산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정당]] [[강선규(정치인)|강선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1967년)|신민당]]에 경상남도 마산시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김영순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남성 기자]][[분류:기자 출신 정치인]][[분류:경상남도의회의원]][[분류:제5대 민의원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광역의회의원]][[분류:민주당(1955년) 국회의원]][[분류:함안군 출신 인물]][[분류:1917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