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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왕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현대 유니콘스 역대 주장)] ---- ||<-5>
'''{{{#fff [[삼성 라이온즈|{{{#ffffff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번}}}''' || || 팀 창단 || {{{+1 →}}} || '''{{{#007fff 정구왕[br](1982)}}}''' || {{{+1 →}}} || [[손상대]][br](1983) || ||<-5> '''{{{#ffffff [[삼미 슈퍼스타즈|'''{{{#ffffff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ffffff 청보 핀토스}}}''']] 등번호 17번}}}''' || || 이찬선[br](1982) || {{{+1 →}}} || '''{{{#ffffff 정구왕[br](1983~1985)}}}''' || {{{+1 →}}} || [[김신부]][br](1986~1989) || ||<-5> '''{{{#ffffff [[청보 핀토스|'''{{{#ffffff 청보 핀토스}}}''']] 등번호 9번}}}''' || || [[이영구]][br](1983~1985) || {{{+1 →}}} || '''{{{#ffffff 정구왕[br](1986)}}}''' || {{{+1 →}}} || 이연수[br](1987) || }}} || ||<-2> [[파일:정구왕.png|width=100%]] || ||<-2> '''{{{+2 정구왕}}}[br]鄭丘旺 | Jeong Koo-wang''' || ||<|2> '''출생''' ||[[1954년]] [[3월 26일]] ([age(1954-03-26)]세) || ||[[경상북도]] [[성주군]]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학력''' ||[[경상중학교|경상중]]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중앙대학교 야구부|중앙대]] || || '''포지션''' ||[[외야수]] || || '''투타''' ||[[우투우타]] || ||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 || '''소속팀''' ||[[한국화장품 야구단]] (1977~1978, 1981)[br][[삼성 라이온즈]] (1982)[br][[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 (1983~1986) || || '''병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육군 경리단]] (1979~1980)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 삼성 라이온즈,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에서 활동한 야구 선수. 실업야구에서 이름 좀 날리던 테이블세터 형 타자였고 프로 입단 이후 노쇠화로 전성기를 누리지 못했으나 나름 삼미-청보에서 제몫은 했던 선수였다. == 선수 경력 == 1971년 경북고 입학 후 70년대 경북고 황금세대를 이끌던 [[정현발]], [[배대웅]], [[천보성]] 등과 함께 경북고 타선을 구성하던 타자였다. 중앙대 입학 이후에는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았던 중앙대에서 별 활약을 보이지 못했지만 실업 야구 한국화장품 야구단에 입단 후 2시즌 간 전성기를 보였다. 특히 78시즌에는 '''2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달성한 적이 있었다.[* 이 연속 안타 기록은 바로 다음 시즌인 79년 시즌에 [[상업은행 야구단]]의 [[이원녕]]이 31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우며 경신되었다. 프로야구에서는 1999년 [[박정태]]의 31경기 연속 안타, 2003-2004년 [[박종호(1973)|박종호]]의 3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이 있다. 다만 박종호의 기록은 두 시즌에 걸쳐 세운 기록이다.] [[파일:정구왕3.png|width=15%]] 삼성 라이온즈 시절. 실업야구에서의 활약을 보고 삼성 라이온즈가 정구왕을 창단 멤버로 데려왔으나, 문제는 삼성에는 외야 자원이 차고 넘친다는 점이었다. 삼성은 창단 당시 바로 우승 전력으로 평가받을만큼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차고 넘쳤는데, [[오대석]]을 주전 유격수로 낙점하여 [[장태수(1957)|장태수]]가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는데, 장태수가 타율 .336으로 외야 한 자리를 꿰찬 것이다. 81시즌 실업야구 타격왕이었던 [[허규옥]]도 확고한 외야 주전이었고, 앞서 언급한 [[정현발]]도 정구왕과 비슷한 사정이었지만 이후 삼성에서 5시즌을 더 뛰며 정구왕보다는 더 경쟁력이 있던 선수였다. 또한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참가로 입단을 1년 미룬 [[장효조]]의 입단이 확실한 상황에서 정구왕은 82시즌 46게임 41안타 타율 .283 16도루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으나 외야 자원의 교통정리가 필요했던 삼성은 정구왕을 삼미 슈퍼스타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시킨다. 삼미는 확실한 외야 자원이 [[양승관]] 밖에 없었을 정도로 선수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김호인]], [[김경남(야구선수)|김경남]]은 부상에 신음하며 확고한 주전으로 낙점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원년 시즌 도중 합류한 [[박준영(1953)|박준영]]은 말이 외야수지 사실상 지명타자였기에, 정구왕은 삼미의 주전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83시즌 정구왕은 56게임 출장으로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은 경기에 출장하고도 29안타 타율 .186으로 매우 부진하였고, 주전 외야수는 갓 입단한 [[김대진(야구)|김대진]]이 가져가게 되었다. [[파일:정구왕2.png|width=15%]] 청보 핀토스 시절. 노쇠화로 인해 경기에 많이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84시즌 이후 폭망 급 성적에서 벗어나서 외야 자원의 백업을 할 수 있는 선수로 자리를 잡았고, 85시즌 동안 삼미-청보의 주장을 맡으며 팀이 매각되는 과정에서도 팀을 받쳐주었다. 86시즌 후 팀에서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 연도별 성적 == ||<-17>
{{{#ffffff 역대 기록}}}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볼넷}}} || {{{#ffffff 사구}}} || {{{#ffffff 삼진}}} || {{{#ffffff 출루율}}} || {{{#ffffff 장루율}}} || {{{#ffffff OPS}}} || || 1982 || [[삼성 라이온즈|삼성]] || 46 || .283 || 41 || 1 || 2 || 0 || 17 || 14 || 16 || 6 || 3 || 19 || .325 || .317 || .642 || || {{{#b21528 연도}}} || {{{#b21528 소속팀}}} || {{{#b21528 경기수}}} || {{{#b21528 타율}}} || {{{#b21528 안타}}} || {{{#b21528 2루타}}} || {{{#b21528 3루타}}} || {{{#b21528 홈런}}} || {{{#b21528 타점}}} || {{{#b21528 득점}}} || {{{#b21528 도루}}} || {{{#b21528 볼넷}}} || {{{#b21528 사구}}} || {{{#b21528 삼진}}} || {{{#b21528 출루율}}} || {{{#b21528 장타율}}} || {{{#b21528 OPS}}} || || 1983 ||<|2> [[삼미 슈퍼스타즈|삼미]] || 56 || .186 || 29 || 0 || 0 || 1 || 11 || 8 || 3 || 5 || 1 || 15 || .216 || .205 || .421 || || 1984 || 45 || .231 || 27 || 3 || 1 || 0 || 6 || 10 || 4 || 10 || 0 || 17 || .289 || .274 || .563 || || {{{#ffffff 연도}}} || {{{#ffffff 소속팀}}} || {{{#ffffff 경기수}}} || {{{#ffffff 타율}}} || {{{#ffffff 안타}}} || {{{#ffffff 2루타}}} || {{{#ffffff 3루타}}} || {{{#ffffff 홈런}}} || {{{#ffffff 타점}}} || {{{#ffffff 득점}}} || {{{#ffffff 도루}}} || {{{#ffffff 볼넷}}} || {{{#ffffff 사구}}} || {{{#ffffff 삼진}}} || {{{#ffffff 출루율}}} || {{{#ffffff 장타율}}} || {{{#ffffff OPS}}} || || 1985 || [[삼미 슈퍼스타즈|삼미]] / [[청보 핀토스|청보]] || 49 || .259 || 37 || 4 || 0 || 1 || 4 || 19 || 4 || 9 || 2 || 19 || .312 || .308 || .619 || || 1986 || [[청보 핀토스|청보]] || 92 || .212 || 32 || 3 || 1 || 2 || 11 || 18 || 7 || 11 || 4 || 16 || .281 || .285 || .566 || ||<-2> '''[[KBO 리그|KBO]] 통산''' [br] (5시즌) || 288 || .233 || 166 || 11 || 4 || 4 || 49 || 69 || 34 || 41 || 10 || 86 || .284 || .277 || .560 || == 기타 == 이름 때문에 [[테니스]]를 했더라면 더 대성했을 것이라는 썰렁한 농담에 시달리기도 했다. [[금광옥]]의 회고에 따르면 85년 삼미의 18연패 당시 주장으로서 선수단에 삭발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장명부]]가 "성적과 머리가 무슨 상관인가" 하고 거절해서 없던 일이 된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삼미 선수단이 얼마나 장명부 중심으로 돌아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이만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은퇴 후 인천에 정착하여 정치 쪽 일을 했다고 하나 근황은 알 수 없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E&nNewsNumb=202111100032|참조]]] == 관련 문서 == * [[야구 관련 인물(KBO)]] * [[삼성 라이온즈/선수단]] * [[현대 유니콘스/선수단]] [[분류:1954년 출생]][[분류:성주군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출신]][[분류:중앙대학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분류:우투우타]][[분류:외야수]][[분류:1982년 데뷔]][[분류:1986년 은퇴]][[분류:한국화장품 야구단/은퇴, 이적]][[분류:상무 피닉스 야구단/전역]][[분류:삼성 라이온즈/은퇴, 이적]][[분류: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은퇴,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