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나주 정씨(丁)]][[분류:1862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건국훈장 애족장]]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정계록}}}'''[br]'''丁繼祿'''}}}}}} || ||<-2> [[파일:빈 가로 이미지.svg|width=100%]] || || 이명 ||정계록(丁繼錄, 丁繼綠) || || 본관 ||[[나주 정씨(丁)|나주 정씨]] (羅州 丁氏)[* 덕천파(德川派) 27세 '''계(繼)○''' 항렬.] || || 생몰 ||[[1862년]] ~ ? || || [[출생지]] ||미상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그는 1862년 아버지 정득필(丁得弼)과 어머니 [[순흥 안씨]] 안신민(安信珉)의 딸 사이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는데, 출생지는 알 수 없고 다만 [[평안남도]] [[덕천군]] 성양면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 그는 1920년 여름경 만주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덕천지단(德川支團) 설치에 참여한 후 그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다 1921년 6월 14일경 덕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2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2년 2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정계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