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1967년 창설된 전투경찰, rd1=전투경찰순경)] [[분류:1950년 설립]][[분류:6.25 전쟁/부대]][[분류:준군사조직]][[분류:대한민국 경찰]] [목차] == 개요 == 전투경찰이란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대한민국 국군]]과 함께 일선 [[전투]]에 참전했거나 후방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적 [[유격대]]를 포착, 섬멸하기 위해 작전했던 [[경찰관]]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표현이다. == 상세 == 전쟁 초기 빈약한 무장과 보급, [[북한군]]의 파죽지세와도 같은 남하와 같은 악조건 하에 주로 지연전을 펼쳤다. 당시에는 [[전차]]와 중화기로 무장한 북한군에게 국군도 속수무책이었으니 볼트액션식 [[99식 소총]]이 주무장이었던 당시 [[경찰]]은 말 할 것도 없었던 상황. 그런 [[상황]]에 이들은 자의나 타의로 적이 점령한 지역에 남아 함께남은 국군과 함께 [[조선인민군]]을 상대로 처절하게 [[유격전]]을 펼쳤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한민국 국군]]과 함께 후퇴한 경찰들은 전쟁 초기 최후의 보루를 지키던 전투인 [[다부동 전투]]에도 약 15000명이 참전하여 [[작전]] 성공에 뒷받침했다. 그 뒤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고립된 적들이 아측 후방지역에서 유격전을 펼치자 이들을 포착하고 섬멸할 목적으로 정식으로 창설되어 [[빨치산]] 토벌 작전을 펼쳤다. 토벌작전에 동원된 이들은 전술한 인원과는 다른 전투경찰대로 정식 창설된 인원이었다. 이들의 [[특징]]은 오로지 빨치산 토벌을 목적으로한 조직이므로 대민 업무가 목적인 일반 경찰과는 다른 [[조직]]내의 조직이었고 자체적인 [[민간인]]의 지원, 선발 과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일단 전투경찰대에 [[배속]]이 되면 [[대한민국 국군]]으로 입대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한다. [[1967년]] 창설한 [[전투경찰순경]]도 초기에는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후에 지원제 전경이라고 불리게 되는 [[전투경찰순경]]의 초기형태가 그렇다. [[전투경찰순경]]에 지원해 배속되면 일반 군복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시행 몇년 뒤 차출제로 바뀌었다. == 보급 == [[일본군]]의 [[99식 소총]]이 주력이었으며 전쟁 후기에는 [[M1 카빈]]도 사용했다. 전쟁 초기에도 그랬지만 후기 빨치산 토벌때도 [[보급]]은 형편 없어서 [[조선인민군]] 출신 빨치산에게 중화기를 노획하여 썼다. [[식사]]도 보급이 없다시피 하여 작전 인접 지역 주민들에게 조달 받았으니 사실상 모든 것이 자체 조달이었다. 얼마나 사정이 심했는지 지나가던 [[국군]]이 거지부대라고 놀렸다는 참전 전투경찰의 증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