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행정구역]] [Include(틀:조선의 행정구역)] ||<-4> '''[[파일:조선 어기.svg|height=15]] [[조선|{{{#000000,#dddddd 조선}}}]]의 [[부(행정구역)|{{{#000000,#dddddd 부}}}]]'''[br]{{{#!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wiki style="margin: -6px" '''{{{+1 전주부}}}'''[br]全州府[br]{{{-1 Jeonju-bu}}}}}} ||}}} || ||<-4>[[파일:대동여지도 전주부.jpg|width=100%]] || ||<-2> '''관아 소재지''' ||<-2>전라도 전주부 전주읍|| ||<-2> '''하위 행정구역''' ||<-2>5군 11현|| ||<-2> '''장관직''' ||전주 부윤[* 조선 후기 전라도 [[관찰사]] 겸임.]|| ||<-2> '''설치''' ||[[1392년]] {{{-2 (완산부)}}}|| ||<-2> '''폐지''' ||[[1895년]]|| ||<-2> '''전신''' ||전주목|| ||<-2> '''후신''' ||[[23부제|전주부]] [[전주군]]|| ||<-2> '''현재''' ||[[전주시]]|| [목차] [clearfix] == 개요 == 전주부는 [[전라도]]의 중심으로 현 [[전주시]]에 있었던 행정 구역이다. == 상세 == [include(틀:조선의 계국백)] * 1392년: 완산유수부 설치 * 1403년: 전주부로 개칭 * 1895년: 23부제 실시로 전주부 [[전주군]]으로 개편 * 1896년: 13도제 실시로 새로 설치된 [[전라북도]]의 도청을 전주에 둠 [[조선시대]]에는 [[태조 이성계]], 곧 [[전주 이씨]]의 [[본관]]이므로 [[고려시대]]의 전주목을 '완산부'로 승격시켰다가 1403년(태종 3) 다시 '전주부'로 개칭했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장수시절에도 스스로 자신은 고려인이자 전주사람이라고 자처했다. 물론 이는 이성계가 태어난 고향인 [[함길도]]가 그 당시 반쯤 오랑캐의 땅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행정구역)|부]]는 조선의 지방행정기관 중에서는 [[관찰사]]와 동급인 종2품 부윤이 통치하도록 되어 있는 최상급 지방 기초행정구역으로, 대표적으로는 고려의 [[서경(고려)|서경]]이었던 [[평양부]], [[동경(고려)|동경]]이었던 [[경주부]] 같은 전통적인 [[수도(도시)|수도]] 지역과, 조선 왕실의 뿌리인 [[함흥부]],[* 영안도(永安道) 시절에는 [[영흥군|영흥부]].] 전주부에 있었다.[* 조선의 수도이자 고려의 [[남경(고려)|남경]]이었던 [[한성부]], 고려의 옛 수도 [[개경]]이었던 [[개성시/역사|개성부]]는 형식상 중앙 직할로, 초기에는 부윤이 있었다가 [[경국대전]] 성립 과정에서 사라지고 한성부에는 판윤, 개성부에는 유수가 두어졌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왜란 당시의 최종 피난 거점 [[의주행궁]]이 있었던 [[평안도]] 의주목, 고려의 [[강도(고려)|강도]]였던 [[경기]] 강화도호부, 주요 피난 거점인 [[남한산성]]과 [[남한산성 행궁]]이 있었던 경기 광주목이 각각 [[의주부]], [[강화도|강화부]], [[광주시/역사#조선|광주부]]로 승격되어 부윤이 두어졌고, 이중 강화부는 [[정묘호란]]을 계기로 [[강화행궁]]이 조성되고 다시 강도로 불리면서 [[인조]] 때, 광주부는 [[숙종(조선)|숙종]] 때 잠깐 유수로 바뀌었다가 [[정조(조선)|정조]] 때 최종적으로 바뀌어 중앙 직할이 되었다. 수원도호부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건설로 도호부사가 부윤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유수로 바뀌어 [[수원시/역사#조선시대|수원부]]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23부제]] 실시 전까지 춘천도호부가 유수를 둔 [[춘천시/역사|춘천부]]로 승격되고 [[춘천이궁]]이 조성되기도 했다. 그 외 나머지 부로 불리는 지방은 대도호부나 [[도호부#조선]]를 약칭한 것으로 부윤이 아니라 부사가 파견됐으며, 그것도 대도호부사나 도호부사의 약칭이다.] 원래 평안도나 함경도 외에는 관찰사가 꼭 [[수령#s-2]]을 겸하도록 정해진 것은 아니었으나 [[전라도]]의 [[감영]]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보니 전라도 관찰사가 전주 부윤을 종종 겸하기도 했는데, 양란([[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관찰사가 감영에 상주하게 되면서 전라도 관찰사도 전주 부윤을 겸하는 것이 상례화되었고, 결국 이것이 법제화되어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에 반영되었다.[* 조선 후기에 부윤급 [[부(행정구역)|부]]가 설치된 [[팔도]] 중 [[관찰사]]가 부윤을 겸하지 않은 곳은 [[경기]]와 [[경상도]]로, 경기는 [[감영]]이 [[한성부]] 근처인 [[돈의문]] 밖에 있어서 특별히 어느 고을의 수령을 겸할 필요 없이 대신 형식적으로 정원이 2명씩이던 경관직인 [[개성시/역사#조선시대|개성부]]와 [[강화도|강화부]] 유수를 한 자리씩 겸해 실질적으로 중앙관 대우를 받은데다, 나중에는 경기 내 부윤급 부가 모두 유수급 부로 승격해서 경기 관할을 벗어났다. 경상도의 감영은 부나 [[목(행정구역)|목]]이 아닌 [[대구광역시/역사#s-3|대구]] [[도호부#조선]]에 있어서 관찰사가 대구도호부사를 겸했다.] [[태종(조선)|태종]] 시기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해 고려 시기에 관할하던 속현과 향, 소, 부곡들이 전주에 모조리 통합됐는데, 이 때문에 조선시대 내내 대규모의 비입지, 즉 [[월경지]]를 관할하고 있었다. 1906년 행정구역 정리가 있기 전까지 전주가 비입지로써 관할하고 있던 지역은 다음과 같다. * 옛 양량소: 현재 [[논산시]] [[논산시/행정#양촌면|양촌면]] 인천리, 채광리, 오산리, 신기리, 양촌리 및 도평리, 임화리의 일부 * 옛 옥야현: 현재 [[익산시]] 동 지역 중 팔봉동을 제외한 전 지역 및 [[익산시/행정#오산면|오산면]] * 옛 이성현(利城縣)[* 본래 발음은 리성현이나 [[두음 법칙]]에 의해서 이성현이 되었다.] 및 관하의 몇몇 향, 소: 현재 [[김제시]] [[김제시/행정#공덕면|공덕면]], [[김제시/행정#청하면|청하면]] 일대 다음은 비입지가 아니었던 옛 속현들이다. * 옛 이성현(伊城縣)[* 위의 이성현과는 다르게 본래 발음이 이성현이다.]: 현재의 [[완주군]] [[이서면(완주)|이서면]] 및 [[전주시]] [[여의동(전주)|여의동]], [[조촌동(전주)|조촌동]], [[효자동(완산구)|효자4동]]의 이서면과의 접경지 부분 * 옛 우주현: 현재의 [[완주군]] [[삼례읍]], [[봉동읍]], [[익산시]] [[익산시/행정#왕궁면|왕궁면]]의 각 일부분. 이 중 왕궁면 부분인 우북면 지역은 조선시대 [[익산시/역사#조선시대|익산군]]과 [[고산군(전라도)|고산군]]의 경계에 끼어들어가 두입지[* [[땅거스러미|견아상입지]]라고도 하는, 타 군현과의 경계에서 비정상적으로 깊게 돌출된 부분.]를 형성하고 있었다. 비입지와 두입지였던 우북면은 1906년에 모두 정리되어 타 군으로 넘겨지면서 현재의 전주시와 봉동-소양을 경계로 하는 완주군 남부 지역 정도로 관할구역이 줄어들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전주시/역사, version=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