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 || {{{#ffffff '''역임한 직위'''}}}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역대 법무연수원장)] ---- [include(틀:역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include(틀:역대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 [include(틀:역대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 全在琪 1939년 ~ [목차] == 개요 == 전재기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였으며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을 수료하고 육군 법무관으로 복무하였다. == 활동 내역 == 이후 1968년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1969년에는 법무부 법무과 검사로 영전하였다. 그리고 1971년에는 다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났다. 참고로 초임 검사 시절에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에 관련해서 허위보도를 한 의혹이 있는 중앙일보 이원달 기자를 구속했다. 유신정권인 제4공화국 때인 1974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인천지청 검사가 되었으며 1976년에는 다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가 되었고 1978년에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영전하였다.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1980년에는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파견되었고 검찰에 돌아온 뒤 법무부 검찰2과장이 되었다. 제5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1981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형사5부장으로 발령났고 이 때 당시에 노년복지회 관련 사건을 조사하면서 5명을 기소하였다. 1982년에는 [[대전지방검찰청]] 차장검사가 되면서 차장검사로 승진하였다. 1983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차장검사가 되었으며 1985년에는 [[광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영전했다가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가 되면서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1986년에는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이 되었으며 1987년에는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하였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이후 1988년에는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하였으며 3년 동안 그 자리에 있다가 1991년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하였다. 그러나 서울지검장으로 있으면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정원식]] 국무총리 폭행사건에 대한 수사를 지휘하였다. 이후 1992년에는 고검장으로 승진하여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이 되었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는 법무연수원장으로 발령났다가 1994년에 사의를 표했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사단법인 울산,양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 가족 관계 == 부인 황경원과 그 사이에 2남 1녀의 가족들이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1939년 출생]][[분류:전두환 정부/인사]][[분류:노태우 정부/인사]][[분류:문민정부/인사]][[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