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set543.jpg|width=100%]]}}}|| || 사고 3개월 전 [[이타미 공항]]에서 찍힌 사진. || |||| {{{#fff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발생일''' ||[[1995년]] [[6월 21일]] || || '''유형''' ||[[하이재킹]] || || '''발생 위치''' ||[[일본]] [[야마가타현]] || || '''기종''' ||[[보잉 747-100#747SR (747-100SR) (B74R)|Boeing 747SR-81]] || || '''운영사''' ||[[전일본공수]] || || '''기체 등록번호''' ||JA8146 || || '''출발지'''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공항]] || || '''도착지''' ||[[하코다테 공항]] || ||<|2> '''{{{#black 탑승인원}}}''' ||승객: 350명 || ||승무원: 15명 || || '''생존자''' ||'''탑승객 365명 전원 생존'''|| [목차] [clearfix] == 개요 == 全日空857便ハイジャック事件 (函館ハイジャック事件)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fKoNAJQODcU)]}}}|| || 전일본공수 857편 납치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 || [[1995년]] 도쿄에서 하코다테로 가던 [[전일본공수]]의 [[보잉 747]]이 납치된 사건. == 사고 진행 == 하네다 공항을 이륙한 857편은 오전 11시 45분 납치범이 점령했다. 승무원과 승객 365명을 인질으로 잡은 납치범은 [[옴진리교]]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라고 알렸고 자신이 [[사린]]과 [[IED|플라스틱 폭탄]]을 소지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객실 승무원]]에게 이를 살포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것이 알려지자 일본에서는 옴진리교의 계획이 정말 성공하는 것이 아닌지[* 당시는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후 12시 45분 857편은 [[하코다테 공항]]에 착륙했다. 납치범은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의 석방을 요구하며 이 비행기는 급유한 뒤 다시 도쿄로 돌아갈 것이라고 승무원에게만 전했다. === 결말 === 다시 857편이 도쿄로 향하는 사이 이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태스크 포스가 설치되었고 납치범이 다른 협력자 없이 혼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아냈으며 다음 날 오전 3시 42분 당시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의 지시대로 납치범이 체포되면서 사망자 없이 사건이 종결되었다. == 사고 이후 == 납치범은 '''쿠츠미 후미오'''(九津見文雄)라는 사람이었는데 사고 당시에는 '''코바야시 사부로'''(小林三郎)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도쿄 신탁 은행[* 현재는 합병을 거쳐 [[미쓰비시UFJ은행|미쓰비시 UFJ 신탁 은행]]이 되었다.]의 50대 은행원이었으나 정신질환으로 인해 퇴사했으며 가지고 있던 플라스틱 폭탄이라고 주장하던 것은 사실 점토로 만든 것이었고 사린 가스라고 주장하던 것은 그냥 물이었다고 한다. 사고 이후 [[징역]] 8년을 선고받았으며 [[전일본공수]]는 5,300만 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9년부터 857편은 [[나리타 국제공항|나리타]] - [[노이바이 국제공항|하노이]] 구간으로 운행되고 있다. 사고기는 2003년에 퇴역한 뒤 텔아비브에서 해체되었고 [[B777]]으로 교체되었다. == 기타 == * [[전일본공수]]는 국내선 중심의 운영을 하여 경쟁자 [[일본항공]]에 비해 사고가 적은 편이었으나 1999년에 [[전일본공수 61편 납치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렇지만은 않게 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옴진리교)] [[분류:전일본공수/사건 사고]][[분류:하이재킹]][[분류:1995년 항공사고]][[분류:헤이세이 시대/항공사고]][[분류:야마가타현의 사건사고]][[분류:옴진리교/사건 사고]][[분류:보잉 747/사건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