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610년 출생]][[분류:1705년 사망]][[분류:조선의 무관]][[분류:진안군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 이름 || 전동흘(全東屹) || || 본관 || [[천안 전씨|천안]] || || 자 || 사탁(士卓) || || 호 || 가재(嘉齋) || ||<|2> 출생 || 1610년 8월 20일 || || [[전라도]] [[진안군|진안현]] || || 사망 || 1705년 8월 1일 (향년 94세) || [목차] == 개요 == 조선 후기의 무관으로 [[포도대장]], [[철산군|철산부사]], 제59대 [[삼도수군통제사]](1679년 7월 ~ 1680년 10월)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 생애 == 전동흘은 1610년에 태어났으며, 조선 초 호조판서를 지낸 대호군 전극례(全克禮)의 6대손이다. 1636년에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고 [[삼전도]] 굴욕 후 [[소현세자|동궁]]과 [[효종(조선)|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자 배종무관으로 동행, 청나라의 각종 정보를 파악해 조선의 군사전략 수립에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귀국해서는 조정에서 내린 벼슬을 사양하고 낙향했다가 [[효종(조선)|효종]]대인 1651년, 40대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우암 [[송시열]]의 추천으로 선전관 내삼청과 흥덕현감이 되었고 강원·충청·황해병사를 거쳐 1673년에는 [[함경도]] 남병사에 임명되었다. 이때 군량미 환곡의 부족분인 7,706석을 탕감해주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이후 포도대장과 훈련대장 오위도총관을 거쳐 [[평안도]] [[철산]]부사를 역임하였다. 철산부사 시절, 훗날 소설로도 엮어진 [[장화홍련전]] 사건을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내 명성을 얻었다. 이 사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랫 문단 참조. 1705년(숙종 31년)에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숙종(조선)|숙종]]이 관리를 파견해 조문하고 지사(地師)를 보내 묘택을 잡아 장사를 지낼 정도로 애석해 했다고 한다. == 여담 == 과거에 합격하기 전, 이웃 마을에서 [[이상진(조선)|이상진]]이라는 가난한 선비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크게 환대해주고 그가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까지 해주었다. 후에 이상진은 [[우의정]]까지 올랐으며, 이후로도 계속 전동흘과 친분을 나눴다고 한다. [[장화홍련전]]의 실제 사건을 조사하여 현명하게 처리했다. 이 때문에 이 내용이 소설화되어 작가가 등장인물 정동우를 만들때 [[실제 인물이 모티브가 된 캐릭터/역사인물 형|영감]]이 되었다. 이 부분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2022년#s-40|2022년 10월 23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졌다. 자세한 내용은 [[장화홍련전 #s-4|해당 문서]] 참고. [[분류:천안 전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