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후한의 인물, rd1=장포(후한), other2=동오의 인물, rd2=장포(손오))] [include(틀:촉서)] [목차] == 개요 == 張苞 (? ~ 221년 이전) [[장비]]의 장남이자 [[장준#s-1]]의 아버지로 남동생은 [[장소(촉한)|장소]][* 묘하게도 오에도 동명이인이 둘 다 있다. 다만 한자가 다르다. [[장소(삼국지)|오의 장소]]는 張昭다.](張紹), 두 여동생([[경애황후 장씨|경애황후]]와 [[황후 장씨|장황후]])은 유선의 아내다. == 정사 == 장비보다 먼저 요절했다고 하며, 장비가 죽었을 때 '''장포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장소가 후사를 이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연의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재창조한 [[관흥]]은 죽으니까 그 재능을 아까워해 [[제갈량]]이 슬퍼했다는 기록이라도 있지만 장포는 그런 기록조차 없으며, 심지어 자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것 외에 알려져 있는 내용은 아들 [[장준#s-1.1]]이 263년 [[등애]]가 이끄는 위군이 촉을 멸망시킬 때 면죽관에서 [[제갈첨]]과 함께 싸우다 죽었다는 구절이 있다. == 연의 == 「[[삼국지연의]]」에서는 83회에서 흰 전포를 입은 채로 [[이릉대전]]에 참전했는데, [[관흥]]을 보자마자 서로 선봉이 되겠답시고 다투어 100보 밖에 깃발을 세워 붉은 칠을 한 부분을 맞혔으며, 관흥도 뛰어난 활 솜씨를 보이자 끝내는 창으로까지 다투려고 했지만, [[유비]]가 이런 이들을 보고 아버지들 얘기를 하면서 꾸짖은 채 두 사람의 화살을 꺾어 서로 구해주도록 하는 맹세를 하게 하면서 관흥과 함께 각기 병사 3천 명을 거느려 임금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또한 유비는 이들에게 [[의형제]]를 맺게 한다.[* 장포가 관흥보다 1살이 많아 장포가 형, 관흥이 동생이 되었다. 아버지들은 반대로 관우가 형이고 장비가 동생이지만, 관우가 장가를 좀 늦게 가서 관흥이 장포보다 늦게 태어난 것일 수 있다. 정사에 따르면 장포는 장비의 장남이고 관흥은 관우의 차남이니 관우가 장비보다 장가를 더 이른 나이에 갔다 해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의형제를 맺으면서 이들은 상호간의 우애도 다지게 된다. 자귀에서 [[손환#s-1]]을 공격하러 갔다가 사정과 싸워 30여 합 만에 도망치게 만들거나 [[이이(삼국지)|이이]]와 20여합을 싸우다가 승부가 나지 않아 [[담웅]]이 화살로 말을 맞혀 죽을 뻔하지만 다행히 관흥이 이이를 죽이면서 구했으며, 다음날에는 오군의 영채를 공격해서 [[사정(삼국지)#s-1|사정]]도 죽였다. 또한 관흥과 함께 각기 5천 명을 거느리고 산골짜기에 매복했다가 [[주연(삼국지)|주연]]의 수군이 손환을 구하러 오는 틈을 타 관흥과 함께 협공했다가 [[최우]]를 사로잡았다. 이 과정에서 유비가 관흥과 장포를 칭찬하면서 예전에 따르던 장수들은 늙고 쓸모없다는 얘기를 해 [[황충]]이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동오의 영채를 공격하러 가자 관흥과 함께 황충을 말렸으나, 황충은 이를 듣지 않고 출진하였다가 오군에게 포위되어 어깨에 [[마충(손오)|마충]]의 [[화살]]을 맞고 부상을 당하자 관흥과 함께 구출한다. 하지만 황충은 얼마 못 가 그 [[후유증]]으로 숨지고 말았다. 이후 [[오(삼국시대)|오나라]]에서는 [[유비]]의 공격을 무마시키기 위해 [[범강]], [[장달]]을 보내자 이들을 직접 참수해 장비의 영위를 차렸다. [[제갈량]]의 북벌 때 봉명산 전투에서 [[설칙]]을 죽이는 등의 활약을 했다. 99회에선 229년에 무도, 음평을 공략하면서 이 두 군을 방어하기 위해 온 [[곽회]]와 [[손례]]를 추격하다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에 떨어져 머리가 깨지면서 급히 성도로 후송되었으나, 결국에는 사망했다. 여담으로, "목소리가 우레 같다"거나, 고함소리로 적장들을 겁주는 묘사가 있는데, [[장비|이것도 유전인 것 같다]]. == 미디어 믹스 == * [[장포/기타 창작물]] 항목 참조. [[분류:몰년 미상]][[분류:촉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