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장일순}}}[br]張壹淳'''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313714123.jpg|width=100%]]}}} || ||<|2> '''출생''' ||[[1928년]] [[10월 16일]]|| ||[[강원도]] [[원주시|원주군]]|| ||<|2> '''사망''' ||[[1994년]] [[5월 22일]] (향년 65세)|| ||강원도 원주시||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학부/인문대학|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2 ([[미학]] / 중퇴)}}}|| || '''직업''' ||사상가, 시민운동가|| || '''종교''' ||[[가톨릭]]|| || '''아호''' ||호암 湖岩 {{{-2 (1950년대)}}}[br]청강 靑江 {{{-2 (1960년대)}}}[br]'''무위당''' 无爲堂 {{{-2 (1970년대)}}}[br]일속자 一粟子 {{{-2 (1980년대)}}}||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시민운동가이자 서화가, 교육가. 생전에 여러 호를 사용했으나, 현재는 주로 '무위당'이라는 호로 불린다. 강원도 지역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유명하며, 종교 다원주의와 [[생태주의]] 사상가로서 [[한살림]] 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 생애 == [[원주시|원주]]를 대표하는 사상가 중 하나. [[1928년]] 원주에서 태어나 [[1994년]] 원주에서 타계했다.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공업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서울대학교/역사#s-3|국대안 파동]]에 연루되어 제적되었고, 새롭게 출범한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다시 입학했으나 [[6.25 전쟁]]으로 중퇴하고는 강원도로 돌아왔다. 이후 [[원주대성중학교]]·[[대성고등학교(강원)|대성고등학교]]를 설립하고,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였다. [[5.16 군사정변]] 직후 평소 주장해 왔던 중립화 평화 통일론이 빌미가 되어 3년 간 수감되었는데, 그 후에도 반독재 운동 배후와 빨갱이 혐의로 계속 고생했다. 그의 집 앞에 경찰이 따로 파출소를 만들어 그를 전담했을 정도.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기념 교구로 [[원주교구]]가 설정되고, 초대 교구장 [[지학순]] 다니엘 주교의 요청으로 본격적인 [[신용협동조합|신협]] 운동과 평신도 교육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72년]] [[남한강]] 대홍수를 계기로 지학순 주교와 재해대책사업위원회를 만들었으며, 강원도 일대 농촌과 탄광촌을 중심으로 신협 운동과 소비자 협동조합 운동과 같은 민간 주도의 사회 개발 운동을 벌였다. [[1970년]] [[정인숙 사건]]이 터진 후 [[원주문화방송]] 개국과 관련해 부정부패 규탄 시위를 주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장일순은 그 당시 정치 활동 정화법에 묶여 운동의 전면에 나설 수가 없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는 "[[유신 헌법]]은 무효"라는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에 기여하였다. 이렇듯 장일순은 [[1970년대]] 원주 캠프의 정신적 지주였으나,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드러나지 않게 일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는 정치 활동에 나서지 않고 후방에서 반독재 투쟁을 지원하면서 사상적 지주 역할을 도맡았으며, 평소 난 치는 것과 잡초를 그리는 것을 즐겼고, 이를 팔아 민주화 투사들을 돕기도 했다. [[1980년대]] 원주의 '[[한살림]] 운동'을 시작하여 호를 '일속자'로 바꾸고 "하늘, 땅, 물, 공기, 사람, 벌레는 모두 한 생명"이라는 표어를 내세워 자연을 중시하는 생명 사상 운동을 펼쳤다. == 기타 ==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도, 다른 종교를 포용하는 모습으로 후대 종교 다원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의 사상과 삶은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지하]]와 [[이현주(1944)|이현주]] 목사의 스승이었으며, [[리영희]]와도 교분이 두터웠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한국 [[녹색당(대한민국)|녹색당]]의 사상적 비조이기도 하다.[* 장일순의 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이 국제적 조직인 [[글로벌 그린스]]와 결합하여 한국 녹색당을 만들었다.][* 다만 장일순의 직계 후배들은 현재 녹색당을 탈당한 상황인데, 이유인즉 [[2000년대]] 이후 녹색당이 [[래디컬 페미니즘]]에 휩쓸린데다가,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죄다 성범죄를 저질러 피해자(ex.[[신지예]] 전 서울시장 후보)가 반강제로 탈당하는 등 [[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을 앞두고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놓고 또 내홍을 겪어, 결국 장일순의 직계 후배들은 현재 정계와 연을 끊고 생명평화 시민운동에만 집중하고 있다.] [각주] [[분류:원주시 출신 인물]][[분류:1928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분류: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분류:대한민국의 환경 운동가]][[분류:서울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