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KBS 공채 탤런트)] ||<-2> '''{{{+1 장욱제}}}[br] Jang Wookjae'''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장욱제.jpg|width=100%]]}}} || || '''본명''' ||장시권(張時權)|| || '''출생''' ||[[1942년]] [[11월 11일]] ([age(1942-11-11)]세)[* [[여로(드라마)|여로]]에서 부부로 같이 연기한 [[태현실]]의 [[음력]] 생일과 같다.] || || '''데뷔''' ||1964년 KBS 4기 공채 탤런트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전직 [[배우]]이자 사업가. == 연기자 시절 == 1942년 [[서울특별시|서울]] [[을지로4가|주교동]] 태생으로 [[동성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 낙방하여 [[재수(입시)|재수]]를 하던 중 갑자기 공부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이를 보다못한 형이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원서를 사와서 "너는 [[연극]]을 한 번 해보는 게 좋겠다. 밑져야 본전인 셈 치고 시험이라도 보라"고 권유하여 응시한 장욱제는 예상을 뒤엎고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하게 되었다. 1964년 [[KBS]] 공채 4기 [[탤런트]] 시험에 응시하여 무려 2,993명 중 남자 13명, 여자 20명만 뽑는 무지막지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의 영광을 안았지만[* 동기생으로 [[이일웅]], [[김진해]], [[남일우]], [[반효정]] 등이 있었다.] 초기 수년 간은 단역이나 [[보조출연자|엑스트라]] 역할에 머무를 뿐이었다. 그래도 장욱제는 동대문시장 같은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외모나 말투, 행동거지 등을 수첩에 적으면서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스스로 연구했고 [[함경도]]에서 월남한 시장 상인과 친해져서 그에게 [[동북 방언|함경도 사투리]]를 배우기도 하는 등 열심히 연기를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지켜보며 장욱제를 기특하게 생각한 연출가 겸 극작가 '''이남섭'''[* 1934~1985.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실력파 [[프로듀서]]이자 작가였으며, [[여로(드라마)|여로]] 등의 수 많은 히트작을 집필하였다. 평소 드라마 연출은 본명인 이남섭을 내세웠지만 대본 명의는 '''이석진'''이란 가명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후 이남섭이 줄곧 연출과 각본까지 독점하는 것에 대하여 KBS의 연출자들과 연기자들이 "당신만 연출이랑 대본까지 다 해먹느냐?" 라며 배척하면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KBS에서 나온 후 [[문화방송|MBC]] 드라마 [[3840 유격대]] 등을 집필하고 [[시인(문학)|시인]]으로도 활동했지만, 말년에는 KBS 공채 1기 [[탤런트]]인 [[아내]] '''김난영'''(1941~1985)의 [[매니저#s-2|매니저]] 역할로 전락하였다. 1985년 사랑하는 아내 김난영을 [[신장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후에 자신도 [[혈액암]]으로 시름시름 앓다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난 [[순애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이 그를 중용하였고 '''일망타진 일보직전, 임자 있었네''' 등의 드라마에서 주역은 아니었지만 개성있는 [[신 스틸러]]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1969년 장욱제는 KBS 일요사극 '''녹슬은 단검'''의 조연인 '''돌쇠''' 역으로 출연했는데 주연보다 오히려 눈에 띄는 코믹 연기로 호평을 얻으면서[* 당초 녹슬은 단검의 주연은 [[신성일]]의 뒤를 잇는 미남 배우로 인기를 끌던 '''오영일''' 이었고 장욱제는 오영일의 [[방자#S-2|방자]] 역할이었지만, 오영일의 연기가 워낙 딸려서(...) 어쩔 수 없이 장욱제의 비중이 늘어났다고 한다. 참고로 1960년대 영화계의 청춘 스타로 인기를 누리던 오영일은 1971년 배우를 그만둔 후 사업가로 전직하여 성공하였고 2020년 향년 76세를 일기로 [[죽음|작고]]하였다.] PD이자 작가인 이남섭은 아예 장욱제를 후속작 격인 '''의리의 사나이 돌쇠'''의 타이틀 롤로 앞세우면서 그는 유명 연기자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남섭 작가의 다른 코믹 드라마인 '''10분 쇼'''[* 제목 그대로 10분 분량의 이 드라마는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 등 국책 사업을 소재로 한 일종의 홍보 드라마였다.] 에서는 [[함경도]] 출신의 꼬장꼬장한 [[꼰대]] 대서사 역을 맡아 이전에 배운 걸직한 함경도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당시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대한민국 표준어|표준어]]를 쓰는 것이 상식이던지라 방송에서 [[사투리]]를 쓰면 이채롭게 보던 시절이었다.] 동네 [[공인중개사|복덕방]] 주인 역할인 [[송해]]와의 콤비 연기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끌기도 했다. [[파일:영구_여로.jpg|width=50%]] [youtube(3akekRh4aSQ)] 1972년 4월, 장욱제는 KBS 일일연속극 [[여로(드라마)|여로]]에 주인공인 [[영구(여로)|영구]] 역으로 캐스팅되어 절륜한 [[바보]] 연기와 더불어 아내 분이 역의 [[태현실]]과 가슴 절절한 호연을 선보이며 '''드라마 시청률은 70~80%로 폭발하는 대박을 이끌어 냈고''', 이 때 대다수의 어린 아이들이 "땍띠야 땍띠야" 등등 영구 말투를 흉내내며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뒷목잡기|뒷목을 잡을]] 정도로 영구 [[신드롬]]이 퍼져나가는 공전절후의 인기를 누렸다.[* 바로 전 해인 1970년 [[동양방송|TBC]]의 드라마 [[아씨(동양방송)|아씨]]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지만 TBC의 시청권은 [[서울특별시|서울]]과 [[부산광역시|부산]]에 한정되어 있었는지라 타 지역에선 [[아오안]]이었을 반면, KBS는 진작에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비교한다면 여로의 파급효과는 아씨를 훨씬 능가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국영방송]]이었던 KBS는 매달 징수원들이 각 가정을 방문하여 [[시청료]]를 걷었는데, 이전에는 "재미없는 방송만 내보내면서 무슨 시청료냐?" 라고 불평하며 시청료 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여로가 방영된 뒤에는 시청료 징수원에게 "좋은 [[드라마]]를 방영해줘서 고맙다" 면서 기꺼이 시청료를 지불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장욱제는 확고부동한 스타 자리에 오르며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욱제를 스타로 만든 영구 역할은 양날의 검이 되어 돌아왔고, [[이창훈(코미디언)|바보 이미지가 지나치게 굳어버린 장욱제는 이후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자꾸 영구가 [[오버랩]] 되는 바람에 시청자들의 몰입이 깨질 수 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장욱제는 연기를 잠시 그만두고 [[가수]]와 예능프로 [[MC]]로 외도하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지 못한 채 다시 연기자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조금씩 연기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 연기자 은퇴, 전업 == 1973년 장욱제는 자신의 열렬한 팬이었던 '''김신자'''와 [[결혼|백년가약]]을 맺었는데, 그녀는 [[파라다이스 그룹]] 창업주 '''전락원''' 회장의 [[조카]]였다.[* 장욱제의 [[장모|장모님]]은 전락원 회장의 첫째 누님 '''전숙자''' 씨이며, [[장인어른|장인]]은 소싯적에 [[축구]]선수로 활약한 후 한국 [[루어|루어낚시]]의 대부가 된 '''위수 김홍동''' 선생이다. 또한 장욱제의 처[[이모]]이자 전락원의 둘째 누님 '''전숙희''' 씨는 [[수필가]]로 한국 문예계에서 이름을 남겼다.] 사실 전락원은 장욱제의 처외삼촌이기는 해도 사업 특성 상 해외출장과 체류가 잦아 이렇다 할 교류는 적었는데, 어느 날 장욱제가 영화 촬영 차 [[제주도]]에 가서 [[스태프]]들과 점심식사를 하려고 한 [[호텔]]에 들어갔다가 전락원 회장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 호텔은 전 회장이 경영하던 곳 중 하나였고 오랜만에 해외에서 돌아와 계열 호텔을 시찰하던 중 마침 조카사위 장욱제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둘이 점심식사를 하던 중 전 회장은 장욱제에게 '''"자네 연기를 10년 넘게 했으면 할 만큼 한거 아닌가? 슬슬 그만두고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건 어때?"'''라며 갑작스럽게 제안하였고, 마침 연기 생활에 회의를 갖고 있던 장욱제는 처삼촌의 말에 솔깃 했지만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무심결에 "네, 그러지요" 라고 답하였다. 그 뒤로 특별한 얘기가 없어서 그냥 흐지부지 되나 싶었는데 몇 주쯤 후 전 회장이 장욱제 집에 전화를 걸어 '''"저번에 내가 한 얘기는 어떻게 되었나? 언제 (연기자) 그만두고 여기 올 건데?"'''라며 채근하자 아차 싶은 장욱제는 처삼촌의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지금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부터 정리하고 두 달 내로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에 전 회장은 '''"[[OK|오케이]], (1977년)11월 1일 부로 제주도 호텔로 [[낙하산 인사|발령낼테니]] 준비해서 출근하라"'''며 딱 잘라 지시했고, 결국 장욱제는 출연 중이던 [[MBC]]의 '''타국'''과 '''113 수사본부''' 등에서 하차하고 1977년 10월 배우 생활을 접었다. 이후 장욱제는 제주도 '''허니문하우스 호텔''' 직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호텔리어]] 생활을 시작했고 처음엔 고전을 거듭했지만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새로운 이벤트[* 대표적인 이벤트로 [[신혼여행]]을 온 부부들을 초대하여 [[맥주]]와 [[술안주]], 음료수를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장욱제가 직접 [[MC]]로 나와 신혼부부들의 결혼 계기 등 신변잡기를 물어보는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호텔 예약을 기본 2~3개월 전에 해야 할 정도로 히트를 쳤다. 장욱제가 연기자 생활을 잠시 접고 쇼 프로 MC를 했던 경력을 이 때 적절하게 살린 셈이다. 이후 장욱제의 인맥을 동원하여 당대 유명 가수를 초빙하는 디너쇼 형식도 추가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도 방문 시 장욱제가 근무하던 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그야말로 [[잭팟]]을 터뜨릴 수 있었다.]를 기획하여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등 수완을 발휘하며 [[파라다이스 그룹]] 내에서 인정받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장욱제는 그룹 산하 [[면세점]]과 [[호텔]] 등의 [[임원]]과 사장을 지내며 제 2의 인생도 승승장구 하였다. 2001년 호텔 사장 직을 퇴임하고 그룹 [[사외이사]]와 [[고문(직위)|고문]]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장욱제는 개인적으로 무역상 등 사업을 벌였고, 한편으로 연기자로서의 복귀를 타진하여 2001년 [[SBS]] 드라마 [[아버지와 아들(SBS)|아버지와 아들]]에 [[주현]]의 친구 역할로 출연하면서 25년 만에 방송계로 돌아와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정작 드라마 자체의 인기는 신통치 못하여 조기종영 [[크리]]를 먹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추억의 악극 '''여로'''에 영구 역할로 [[태현실]]과 같이 출연했으며 그 뒤로 연기 생활은 완전히 접고 방송출연도 줄이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2021년 1월 부로 장욱제는 [[파라다이스 그룹]] 고문 자리도 내려놓으며 경영인 생활도 완전히 [[은퇴]]했고, 이후 여생을 조용히 보내고 있다. [[파일:장욱제_최근.jpg|width=40%]] [[송승환]]의 [[유튜브]] 채널 '''원더풀라이프'''[* [[삼성생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고 있다.]에 출연하여 자신의 근황과 인생 회고 등을 풀어놓기도 했다.[* 송승환은 [[여로(드라마)|여로]]에 아역으로 출연하여 장욱제와 부자지간을 연기한 바 있다.] [[https://youtu.be/zSw8E4tplck|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장욱제 편 1화(1~8화까지 있음)]] == 출연작 == === 드라마 === * 일망타진 일보직전[* 원래 제목은 '''잡았네요''' 였지만, 장욱제의 극중 막판 고정 대사이자 [[유행어]]였던 '''"일망타진 일보직전 이었는데..."'''를 따라 드라마 제목까지 바꿨다고 한다.] (KBS) * 임자 있었네 (KBS) * [[신부일년생]] (KBS) * 녹슬은 단검 (KBS) - 돌쇠 역 * 의리의 사나이 돌쇠 (KBS) * 사또 돌쇠 (KBS) * 10분 쇼 (KBS) * 미스터 리 흥분하다 (KBS) * 아들낳고 딸낳고 (KBS) * 꽃동네 새동네 (KBS) * '''[[여로(드라마)|여로]]''' (KBS) - 영구 역 * 장바우 (KBS) - 장바우 역 * 여보 정선달 ([[동양방송|TBC]]) * 골목안 사람들 (KBS) * 타국 ([[MBC]]) * 왜 그러지 (MBC) * 113 수사본부 (MBC) * [[아버지와 아들(SBS)|아버지와 아들]] ([[SBS]]) - 김종태 역 === 영화 === * 의리의 사나이 돌쇠 - 돌쇠 역 * 어느 부부 * 여로 - [[영구(여로)|영구]] 역 * 잃어버린 계절 * [[성춘향전]] - 방자 역 === 광고 === * 맛들이 강정 ([[해태제과]]) * 스마크 (해태제과) == 여담 == * 장욱제가 KBS 탤런트로 합격 후 [[보조출연자|엑스트라]] 역할을 전전하던 어느 날 한 [[프로듀서]]가 장욱제에게 "넌 연기를 할 팔자가 아니니까 빨리 그만두고 다른 살 길을 찾으라" 는 충고 아닌 충고에 낙심하고 연기자 생활을 포기하려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이남섭 PD가 '''"너는 배우의 문턱을 넘기 일보 직전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다"''' 라며 장욱제를 붙들었다. 그리고 이남섭은 자신이 연출하던 KBS의 수사 드라마 '''일망타진 일보직전'''에 장욱제를 캐스팅하여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원래 주연이던 [[백일섭]]보다 더 눈에 띄는 호연을 보이며 주연급 조연을 꿰차면서 인기 탤런트로 자리잡았다. * 1972년 2월 [[방위병]] 소집에 백여차례 불참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방위병 부대 [[중대장]]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형사절차)|구속수감]] 되었지만 나흘만에 [[체포구속적부심사|구속적부심]] 통과로 [[석방]]되었다(...). * [[여로(드라마)|여로]]의 [[영구(여로)|영구]] 역으로 캐스팅 된 장욱제는 처음에 영구라는 [[바보]]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며칠동안 고민하던 중, 방송국 로비에서 KBS에 자재를 납품하던 업체 [[사장]] 특유의 혀 짧은 소리를 듣고[* 그 사장은 발음만 안좋았을 뿐 정상적인 [[지능]]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영구 캐릭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사장]]이 [[공중전화]]로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야! 빨디(빨리) [[못(도구)|못]] 6모짜디(짜리) 하고 3모짜디 당장 가져오다꼬(가져오라고)!!" 라며 소리를 친 후 전화를 끊고 "아 저때끼(저새끼) 말 딘따(진짜) 모다다듣네(못알아듣네)" 라며 투덜대는 것을 본 장욱제는 '아 이거다!!' 라고 무릎을 치며 그 사장의 말투를 본따 영구의 캐릭터를 확정하였다. 이후 영구의 혀 짧은 말투는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행어|크게 유행]]할 정도였다. * [[1988년]] [[한국방송공사|KBS]] [[유머 1번지]]의''영구야 영구야'''를 론칭하여 [[심형래]]를 [[영구(심형래)|영구]] 역으로 캐스팅 했는데, 심형래는 이전에 [[영구(여로)|영구]]를 연기했던 장욱제에게 실례가 될지 몰라 [[부산광역시|부산]]에서 [[면세점]]을 경영하던 그를 직접 찾아가서 '''"이번에 새 코미디 프로에서 [[장욱제|선배님]]이 연기하셨던 [[영구(여로)|영구]]를 맡았습니다만, 제가 그걸 해도 되겠습니까?"''' 라고 묻자 장욱제는 '''"내가 [[영구(여로)|영구]]를 [[특허]] 낸것도 아닌데 좋을대로 하라"'''며 웃으면서 승낙했다고 한다. 그리고 심형래의 영구는 장욱제가 연기했던 영구를 시청자들 기억에서 완전히 밀어낼 정도로 초 대형 히트를 쳤다. * [[술]]을 잘 못한다. 사업가 시절 [[사업|비즈니스]] 때문에 억지로 몇 잔 마신거 빼면 술을 스스로 찾아마시는 편은 아니며, [[송승환]]의 원더풀라이프 에서 '''"친한 친구가 열둘인데 술 좋아하는 순서대로 [[죽음|가고]] 나만 남았다"''' 며 [[블랙 코미디|씁쓸한 너스레]]를 떨었다.[* 여로에서 분이([[태현실]])를 괴롭히던 김달중 역할의 '''김무영'''은 장욱제와 어린 시절부터 친한 사이였다. 그런데 김무영은 술을 굉장히 좋아했고, 이로 인하여 [[뇌졸중]]이 발병하는 바람에 1975년 연기자 생활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이후 가업인 [[https://www.shinsungsafes.co.kr|신성금고]]의 사장으로 일했지만 뇌졸중 후유증으로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각주][[분류:전직 배우]][[분류:1942년 출생]][[분류:1964년 데뷔]][[분류:1977년 은퇴]][[분류:중구(서울) 출신 인물]][[분류:동국대학교 출신]][[분류:은퇴한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