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도 계통의 종교]][[분류:종교 창시자]][[분류:황건적]][[분류:싱타이시 출신 인물]][[분류:184년 사망]][[분류:지병으로 죽은 인물]]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다른 뜻, rd1=장각(동음이의어))] [include(틀:황건적의 수뇌부)]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FCC00 0%, #FFCC00 20%, #FFCC00 80%, #FFCC00)" '''{{{#800000 {{{+1 태평도 교주}}}[br]천공장군(天公將軍)[br]대현량사(大賢良師)[br]{{{+1 張角}}}[br]장각}}}'''}}} || ||<-2>{{{#!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Zhang_Jue_Qing_portrait.jpg|width=100%]]}}}|| ||<#FFCC00> '''[[별호|{{{#800000 별호}}}]]''' ||<(> 천공장군^^(天公將軍)^^ 대현량사^^(大賢良師)^^ || ||<#FFCC00> '''[[종교|{{{#800000 종교}}}]]''' ||[[태평도]]^^(太平道)^^ || ||<#FFCC00> '''{{{#800000 성씨}}}''' ||장^^(張)^^ || ||<#FFCC00> '''{{{#800000 이름}}}''' ||각^^(角)^^ || ||<#FFCC00> '''{{{#800000 생몰기간}}}''' ||? ~ 184년 || ||<#FFCC00> '''{{{#800000 고향}}}''' ||기주^^(冀州)^^ 거록군^^(鉅鹿郡)^^ || [목차] [clearfix] == 개요 == >漢末乘間竊發(한말승간절발): 한나라 말기에 틈을 타서 몰래 발동하여, >號稱太平道人(호칭태평도인): 태평도를 창시하였고 태평도인이라 불리었다네. >豈爲儒冠誤我(기위유관오아): 어찌 유학을 배운 것이 나를 그르쳤겠나? >居肰首裹黃巾(거연자과황건): 거연하게 머리에 황건(黃巾)을 둘렀다네. > '''창천이사 황천당립 세재갑자 천하대길''' > > '''(蒼天已死 黃天當立 歲在甲子 天下大吉)''' >---- >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br]마땅히 누른 하늘이 서리라.[br]때는 바로 [[갑자]]년,[br]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중국]] [[후한]] 말기의 인물. [[삼국지/지명/기주|기주]] 거록군 출생[* 현재는 [[허베이 성]] [[싱타이시]]다.]으로 후대 [[도교]]의 원류 중 하나가 된 [[태평도]]의 창시자이자 교주로, [[영제(후한)|영제]] 때 세상이 혼란하자 [[주술]]이나 [[부적]], 영수(靈水)[* 신비스러운 효험이 있는 물이다.] 등으로 병을 고치는 요법(療法)[* 병을 고치는 방법이다.]으로 민심을 모아 태평도를 일으켰다. 대현량사(大賢良師)이자 천공장군(天公將軍)이라 자칭[* [[천지인#s-1]] 원리를 이용했으며 그의 동생들인 [[장보]]와 [[장량(삼국지)|장량]]은 각각 지공장군(地公將軍)과 인공장군(人公將軍)이 되었다.]하면서 수만 명의 신도들을 모아 조직화하여 184년에 [[후한]] 왕조 타도를 기치로 거병하여 [[황건적의 난]]이 발발한다. == 생애 == [[장보]], [[장량(삼국지)|장량]]이라는 두 동생과 함께 [[농민]]들을 규합하여 이끈 농민군을 [[황건적|황건]]이라 불렀는데, 이는 머리에 노란 두건을 걸쳤기 때문이다. 워낙에 거대하게 자라난 집단이라 순식간에 8주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세력을 넓히고, 장악하였지만 장각은 그 해에 병사했다. 결국 [[황건적]]은 [[주준]], [[노식]], [[황보숭]] 등의 활약에 패하여 장보, 장량이 전사하면서 진압되었다. 이때 병들어 죽은 장각은 [[부관참시|무덤이 파헤쳐져서 관은 부서지고 머리가 베였으며]], 잘린 목은 [[낙양]]으로 보내져 효수되었다. 비록 난은 진압되었지만 황건적은 후한의 행정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그리고 이후 황건적의 잔당들이 가끔 봉기하고 치안은 극도로 악화되었으며, 이를 해결할 중앙군이 무력한 가운데 지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벌]]들이 대두하여 [[삼국지|중국 전토를 할거하게 되었다.]] == 사후 == 184년 일어난 장각의 난은 1년만에 진압되었지만, 이어 몇년에 걸쳐 잔당들이 대규모로 봉기했고, 이는 후한의 숨통을 끊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를 바탕으로 하여 "국가 타도"를 목표로 반란을 일으킨 것은 중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이후 중국의 왕조들은 [[신흥 종교]]에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중국은 19세기 말까지도 여러 종교 반란[* [[청나라]] 말기에는 종교 반란이 매우 많았다. [[태평천국]]을 비롯하여 [[회교도]], [[백련교|백련교도]], 천지회(天地會), [[의화단]] 등등이 종교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 때문에 [[청나라]]는 약화되어 결국 망했다.]이 일어났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도 이를 경계하고 있고, 그리하여 1990년대 신도수를 1억명까지 확장했다고 주장하던 [[파룬궁]]도 중국 정부의 대탄압으로 중국내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 때문에 [[반중|반중국]]적인 인사들이나 서방에서는 파룬궁 측이 동정을 받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가톨릭]], [[불교]], [[개신교]], [[이슬람교]] 등의 대형 기성 종교들도 일정한 규제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런 기성종교를 믿는 개인의 종교활동은 그다지 간섭하지 않지만, 교단차원의 적극적 포교나 해외교류는 정부의 규제를 받는다.] == 기타 == 《[[삼국지연의]]》에서는 원래는 [[과거]] 시험에 떨어진 수재로 [[약초]]를 캐며 살아가고 있다가 [[남화노선]]([[장자]])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태평요술서라는 것을 받고 [[도사]]가 되었다고 한다. 장각이 남화노선을 만났다는 전설은 있기 때문에 완전히 근거없는 창작은 아니지만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에는 과거 시험이 없었으므로'''[* 과거 제도는 [[수나라]] 때 처음 시작되었다. 한나라 시대의 관료선발제도는 [[향거리선제]]라고 해서, 지방관이 그 지방의 여론을 보고 적당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 다만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지방관 역시 향거리선제로 선발된 경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되는 것이 다반사다.] [[고증]]에는 크게 어긋나는 설정이다.[* 지방에서 과목에 따라 효렴, '''수재''' 등을 천거해 시험을 거쳐 등용되는 과정은 한나라 때도 있기는 했다. 다만 피휘 문제로 장각이 살던 후한 말에는 수재가 이닌 '무재'로 불리던 상황이다.] 어쨌거나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태평요술서를 얻은 후 [[주화입마]]했다. 혹은 약간의 미화가 들어가서 한낱 도인으로 인민을 구제하기엔 힘이 부족해서 군사를 일으켰다는 설명이 붙기도 한다. [[토탈 워: 삼국]]에서 이런 식으로 해석했다. 다 죽어가는 병자에게 약을 먹여보지만 살려내지 못해 결국 약그릇을 집어던지고 먹구름에서 빠져나오는 햇빛을 움켜쥐는 트레일러가 인상적. 《[[삼국지평화]]》에서는 손씨 성을 가진 학구의 제자가 되어 의술을 배우다가 집의 노모를 돌보기 위해 휴가를 청했지만 손학구는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며, 장각은 손학구로부터 명방을 전수받고 천하의 병든 자들을 치료하면서 그들에게 재물을 요구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이후 사람들을 치료하고 제자를 모아 그 수가 불어나면서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다. 장량이 행림장, 연주 등에서 패하고, 장보가 전사하면서 광녕군으로 도망오자 크게 분노했으며 광녕군에서 [[유비]]가 이끄는 군사들과 싸우지만 전사했다. == 창작물에서 == * [[장각/기타 창작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