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작위 요구자/유럽)] [목차] == 개요 == [[영국]]의 [[작위 요구자]]를 다루는 문서. == 등재 기준 ==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작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현재 [[영국]]의 작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https://namu.wiki/thread/ARoundAndTastefulStomach|토론 합의]] [[https://namu.wiki/thread/TheToothsomeAndExpensiveTurn|토론 합의]]에 따라,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가 직위를 자손에게 계승했거나 계승하려 시도한 경우는 등재하지 않는다. 단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라도 '몽골의 칸' 등 세습 군주의 칭호를 자칭한 경우는 등재한다. ==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 === 국가 ===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 ==== ||<-2> [[파일:영국 국장.svg|width=200]] || || 관련 칭호 || 하노버 국왕[br]브라운슈바이크 공작[br][[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br]인도 황제 ||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 || 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 || || 계승 실패 원인 || 1837년 동군연합 해체[br][[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1901년 왕조 교체]][br][[아일랜드 자유국|1922년 연합왕국 해체]] ||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부터 영국 왕족임을 자칭하면서[* 성씨에 Königlicher Prinz von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Großbritannien und Irland]]를 추가했다. 당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과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나누어져 해체된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성씨에 추가한 말에 Nordirland(북아일랜드)가 아니라 그냥 Irland(아일랜드)가 들어갔다는 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해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로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족을 자칭하는 이들은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 뿐인 셈이다.] 대대로 영국 [[하노버 왕조]]의 왕위도 요구하게 되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는 무려 영국 국적까지 취득하여 독일과 영국의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영국 치하의 아일랜드가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어 자치권을 얻음으로써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해체된 건 [[윈저 왕조]] 때의 일이므로, 하노버 왕조의 입장에선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 잉글랜드 === ==== 도싯 후작 ==== || 관련 칭호 || 도싯 후작 || || 작위 요구자 || 존 마이클 에드워드 시모어 || || 전임자 || 퍼시 해밀턴 시모어 || || 후임자 || 세바스찬 시모어 || || 계승 실패 원인 || [[제인 그레이]] 폐위의 여파로 도싯 후작가 몰락 || 도싯 후작을 대대로 배출했던 [[잉글랜드 왕국]]의 그레이 가문(Grey family)은 [[제인 그레이]]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인 그레이가 폐위된 후 제인 그레이의 아버지 헨리 그레이가 장녀인 제인 그레이의 복위를 위해 토마스 와이어트의 반란에 가담한 게 문제가 되어 그레이 가문이 완전히 몰락했으며, 그 후로 영국에서 도싯 후작이라는 작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 이론상의 도싯 후작위 요구자는 헨리 그레이의 차녀이자 제인 그레이의 첫째 동생 캐서린 그레이가 직계 조상인 서머싯 공작 존 마이클 에드워드 시모어다.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처럼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작위 요구자일 뿐이므로 사실상 무의미하지만 말이다. ==== 랭커스터 공작 ==== ||<-3> [[파일:랭커스터 왕조 휘장.svg|width=200]] || || 관련 칭호 ||<-2> 랭커스터 공작 || || 작위 요구자 || {{{-2 ([[하노버 왕조]])}}}[br][[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 {{{-2 ([[스튜어트 왕조]])}}}[br]프란츠 폰 바이에른[*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 || || 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 알브레히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 막스 폰 바이에른 || || 계승 실패 원인 ||<-2> [[명예혁명|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하노버 왕조|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2 (스튜어트 왕조)}}}[br]1837년 동군연합 해체,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1901년 왕조 교체]]{{{-2 (하노버 왕조)}}} || 잉글랜드 내에는 랭커스터 공국이 있는데, 영국 국왕이 곧 랭커스터 공작으로 간주되어 영국 왕실의 재정으로 관리된다. 이는 [[장미 전쟁]]에서 [[랭커스터 왕조]]의 방계인 [[헨리 7세]]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면서 생긴 관행이다. 따라서 명목상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족을 자칭하는 [[하노버 왕국]],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와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는 랭커스터 공작 칭호의 요구자로도 볼 수 있다. ==== 올버니 공작 ==== ||||<#ffffff>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6/Coat_of_Arms_of_Leopold%2C_Duke_of_Albany.svg|올버니 공작 문장]] || || 관련 칭호 || 올버니 공작 || || 작위 요구자 || 후베르투스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 전임자 || 에른스트 레오폴트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후베르투스의 아버지.] || || 후임자 || 제바스티안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 || 계승 실패 원인 ||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독일 제국]] 산하 작위를 계승한 [[영국]] 왕족들의 영국 내 작위 박탈 || 최후의 올버니 공작인 [[카를 에두아르트]]는 본래 [[영국]] [[잉글랜드]]의 서리 주에서 태어난 영국 왕족으로, 본가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원 작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위를 계승하고자 [[독일]] 국적을 택했다. 그러던 중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과 독일이 서로 적으로 만나면서, 카를 에두아르트의 올버니 공작위를 포함한 영국 내 작위가 모조리 박탈되었다. 카를 에두아르트 본인을 포함해 그의 후손들은 당시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 5세]]의 이런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2023년 현재까지 이들의 작위 요구는 유효하다. 현 올버니 공작위 요구자는 카를 에두아르트의 귀천상혼한 장남 요한 레오폴트의 장손 후베르투스이다.[* 이전에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위 요구자인 안드레아스로 나와 있었지만 영국의 작위는 귀천상혼 여부 상관없이 철저한 장자상속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3남의 장남인 안드레아스는 정통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만일 작위가 박탈되지 않았다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위와 올버니 공작위는 카를 에두아르트가 죽으면서 분할 상속되었을 것이다. 영문 위키백과에서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위 계승 권리만 잃었을 뿐 올버니 공작위 부활을 위해 영국 왕실에 요청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나와있다.] ==== 요크 공작 ==== ||<-2> [[파일:요크 왕조 휘장.svg|width=200]] || || 관련 칭호 || 요크 공작 || || 작위 요구자 ||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 || || 전임자 || 마이클 에드워드 애브니-헤이스팅스 || || 후임자 ||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 || 계승 실패 원인 || [[장미 전쟁|1485년 공국 멸망]] || [[장미 전쟁]]에서 승리한 [[헨리 7세]]는 [[요크 왕조]]를 멸망시키고 요크 공국 또한 [[잉글랜드 왕국]]의 직할령으로 편입했다. 그 후로 요크 공작 칭호는 잉글랜드/영국 국왕의 둘째 아들이 받게 되었다. 현재 요크 왕조의 왕위 요구자인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가 현 [[윈저 왕조|윈저 왕가]]의 요크 공작 칭호 사용에 맞서 명목상의 요크 공작 칭호를 쓰고 있다. ==== 잉글랜드 국왕 ==== ||<-3> [[파일:Royal_Coat_of_Arms_of_England_(1399-1603).svg|width=200]] || || 관련 칭호 ||<-2> [[잉글랜드 국왕]][br]프랑스 국왕[br][[스코틀랜드 국왕]][*프란츠][br]아일랜드 국왕[*프란츠][br]바이에른 국왕[*프란츠][br]요크 공작[*사이먼] || || 작위 요구자 || {{{-2 ([[자코바이트]]파)}}}[br][[프란츠 폰 바이에른]][*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 || {{{-2 ([[요크 왕조]])}}}[br]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 || || 전임자 || [[알브레히트 폰 바이에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마이클 에드워드 애브니-헤이스팅스 || || 후임자 || 막스 폰 바이에른 ||<-2>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 || 계승 실패 원인 ||<-2> [[튜더 왕조|1485년 왕조 교체]]{{{-2 (요크 왕조)}}}[br][[명예혁명|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영국 통일|1707년 스코틀랜드와 통합]], [[하노버 왕조|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2 ([[스튜어트 왕조]])}}} || [[독일]]의 [[비텔스바흐 가문]]은 여계로 넘어온 [[자코바이트]] 계승권자로, [[스튜어트 왕조]]의 왕위들을 요구할 수 있다. 스튜어트 왕조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제임스 6세]] 때 [[잉글랜드 국왕|잉글랜드 왕위]]도 얻은 바 있다. [[요크 왕조]]의 왕위 요구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485년]]에 [[장미 전쟁]]에서 [[랭커스터 왕조]] 지지파가 승리하여 요크 왕조가 멸망한 이후 요크 왕가 후손들은 대대로 요크 왕조의 왕위를 요구하고 있으며, 현 왕위 요구자는 초대 클래런스 공작 조지의 후손인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다. [[제인 그레이]]의 짧은 재위기간 및 요절로 인해 단명한 왕조인 그레이 왕조는 원래대로라면 제인 그레이의 방계 후손인 서머싯 공가가 이론상의 왕위 요구자 가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제인 그레이가 자신의 폐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본 문단에는 없다. ==== 컴벌랜드 공작 ==== || 관련 칭호 || 컴벌랜드 공작[br]테비엇데일 공작[br]하노버 국왕[br]브라운슈바이크 공작 ||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 || 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 || || 계승 실패 원인 || 1917년 영국 작위박탈법 || ==== 테비엇데일 공작 ==== || 관련 칭호 || 테비엇데일 공작[br]컴벌랜드 공작[br]하노버 국왕[br]브라운슈바이크 공작 || || 작위 요구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 || 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 || || 계승 실패 원인 || 1917년 영국 작위박탈법 || [[하노버 왕국]]의 국왕인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영국]]에서 [[조지 1세]]로 즉위한 뒤로, 그의 손자인 [[조지 3세]]가 자신의 다섯째 아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에게 컴벌랜드 공작위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를 내렸는데, 이후에 영국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자, [[살리카법]]에 따라 여성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는 하노버 왕국과 영국 간의 [[동군연합]]이 해체되면서 하노버 국왕이 이 두 작위를 대대로 계승하게 된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내에서 반독 감정이 극심해짐에 따라, 1917년에 영국 의회에서 [[독일]] 국적자들의 영국 내 작위를 박탈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하노버 왕실은 컴벌랜드 공작위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를 상실했다. 현재 하노버 왕위 요구자는 자동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와 컴벌랜드 공작위, 테비엇데일 공작위의 요구자가 된다. === 스코틀랜드 === ==== 스코틀랜드 국왕 ==== ||<-2> [[파일:영국 국장(스코틀랜드).svg|width=200]] || || 관련 칭호 || [[스코틀랜드 국왕]][br][[잉글랜드 국왕]][br]아일랜드 국왕[br]프랑스 국왕[br]바이에른 국왕 || || 작위 요구자 || [[프란츠 폰 바이에른]][*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 || || 전임자 || [[알브레히트 폰 바이에른|알브레히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 || 후임자 || 막스 폰 바이에른 || || 계승 실패 원인 || [[명예혁명|1688년 제임스 2세 폐위]][br][[영국 통일|1707년 잉글랜드와 통합]][br][[하노버 왕조|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 || [[제임스 2세]]가 [[명예혁명]]으로 폐위되자 [[스코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주민들과 [[아일랜드인]]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자세한 건 [[자코바이트]] 항목 참고. === 웨일스 === ==== 귀네드 국왕 ==== ||<-2> [[파일:Aberffraw.svg|width=200]] || || 관련 칭호 || 귀네드 국왕[br][[프린스 오브 웨일스|웨일스 공작]] || || 작위 요구자 || 에반 본 앤윌 || || 계승 실패 원인 || 1283년 왕국 멸망 || 귀네드 왕국(웨일스어: Teyrnas Gwynedd, 영어: Kingdom of Gwynedd)은 중세 북[[웨일스]]에 있었던 왕국으로 사실상 웨일스를 제패했던 나라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Tywysog Cymru, Princes of Wales)라는 칭호도 귀네드 국왕이 썼다. 귀네드 왕국은 [[에드워드 1세]] 치세의 잉글랜드가 웨일스를 점령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저항했으나 끝내 멸망하여 잉글랜드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현 왕위 요구자 에반 본 앤윌은 오웨인 압 그루피드의 후손이다. 물론 영국이나 (독립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함께 [[영국]]의 구성국들 중에서는 독립 여론이 가장 낮은 곳이다. 매우 오래 전에 잉글랜드에게 정복당한 역사가 있어서, 같은 [[켈트]]계 국가인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보다도 잉글랜드와 국민정서상 더 가깝게 여기는 편이다.]) 향후 독립된 웨일스 안에서 그가 귀네드 국왕이라는 칭호를 쓸 수 있게 해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 웨일스 공작 ==== |||||||||| [[파일:princeofwalesfeather.png|width=200]] || || 관련 칭호 ||<-4> [[프린스 오브 웨일스|웨일스 공작]][br]잉글랜드 왕세자[*막스][*마커스][br]프랑스 왕세자[*막스][*마커스][br]스코틀랜드 왕세자[*막스][br]아일랜드 왕세자[*막스][br]바이에른 왕세자[*막스][br]요크 공세자[*마커스][br]하노버 왕세자[*에른스트 아우구스트][br]브라운슈바이크 공세자[*에른스트 아우구스트][br][[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왕세자[*에른스트 아우구스트][br]인도 황태자[*에른스트 아우구스트][br]노르망디 공세자[*에른스트 아우구스트][*막스][*마커스] || || 작위 요구자 || {{{-2 (독립 공작)}}}[br]러웰린 존스 || {{{-2 ([[하노버 왕조]])}}}[br]에른스트 아우구스트 6세 || {{{-2 ([[자코바이트]]파)}}}[br]막스 폰 바이에른 || {{{-2 ([[요크 왕조]])}}}[br]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 || 전임자 ||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버지.] || [[프란츠 폰 바이에른]][*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 ||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의 아버지] || || 후임자 || || 벨프 아우구스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 || 조피 폰 바이에른[* 막스 폰 바이에른의 장녀이자 [[리히텐슈타인]] 공세자빈] || || || 계승 실패 원인 ||<-4> 1284년 공국 멸망{{{-2 (독립 공작)}}}[br][[튜더 왕조|1485년 왕조 교체]]{{{-2 (요크 왕조)}}}[br][[명예혁명|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영국 통일|1707년 스코틀랜드와 통합]], [[하노버 왕조|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2 ([[스튜어트 왕조]])}}}[br]1837년 동군연합 해체,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1901년 왕조 교체]], [[아일랜드 자유국|1922년 연합왕국 해체]]{{{-2 (하노버 왕조)}}} || 웨일스 공국이 [[잉글랜드 왕국]]에 정복되어 [[프린스 오브 웨일스|웨일스 공작]] 칭호가 영국 왕세자의 칭호로 자리잡은 뒤에도, 영국 왕세자와 별개로 명목상의 웨일스 공작 칭호를 대대로 쓰는 웨일스 공가 후손이 남아있다. 현 공위 요구자는 러웰린 존스다. 이와는 별개로, [[하노버 왕조]] 측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위를 주장하는 관계로, 이 작위의 [[작위 요구자|요구자]]의 후임자는 자동으로 웨일스 공위 요구자가 된다. [[잉글랜드]]의 왕위를 요구하는 [[자코바이트]] 계열과 [[요크 왕조]]의 후계자들도 마찬가지다. === 영국 본토 밖 === ==== 맨 섬 영주 ==== ||<-3> [[파일:1280px-Coat_of_arms_of_the_Isle_of_Man.svg.png|height=200]] || || 관련 칭호 ||<-2> [[맨 섬]] 영주 || || 작위 요구자 || {{{-2 (영국 왕실 직할령 맨 섬)}}}[br][[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 {{{-2 (독립 영지 맨 섬)}}}[br]그레이스 || || 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 데이비드 ||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6세 || || || 계승 실패 원인 ||<-2> 1765년 영국 왕실 직할령으로 편입{{{-2 (독립 영지 맨 섬)}}}[br]1837년 동군연합 해체,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1901년 왕조 교체]]{{{-2 ([[하노버 왕조]])}}} || 본래 [[맨 섬]]은 스코틀랜드 서부 섬들과 함께 통치되던 독자적 국가였다가 이후 통일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귀족이 자국 밖에서 영주로서 통치하던 땅이 되었는데, 1765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왕 [[조지 3세]]가 맨 섬의 영주로부터 맨 섬을 구입하면서 영국 왕실 직할령이 되었다. 다만 명목상의 맨 섬 영주 계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현 영주위 요구자는 그레이스다. 한편 맨 섬을 구입한 조지 3세를 시작으로 영국 국왕이 맨 섬 영주 칭호를 쓰기 시작했으므로 상술한 영국 [[하노버 왕조]]의 왕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또한 맨 섬 영주위 요구자라고 볼 수 있다. ==== 지브롤터 영주 ==== ||<-8> [[파일:지브롤터 문장.svg|width=200]] [[파일:스페인 국왕 휘장.svg|width=250]] [[파일:758px-Greater_Arms_of_Charles_I_of_Spain,_Charles_V_as_Holy_Roman_Emperor.svg.png|width=200]] || || 관련 칭호 || 지브롤터 영주[br] 영국 국왕[br]하노버 국왕 || 스페인 국왕[br]아라곤 국왕[br]네오파트라스 공작 ||<-2> 스페인 국왕[br]에트루리아 국왕[br]파르마 피아첸차 공작 || || 양시칠리아 국왕[br]칼라브리아 공작 || 프랑스 국왕[br]나바르 국왕[br]앙주 공작[br]부르봉 공작 || || 작위 요구자 || {{{-2 (하노버 왕조)}}}[br][[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 {{{-2 (현직 스페인 국왕)}}}[br][[펠리페 6세]] || {{{-2 (카를로스 정통주의)}}}[br]식스토 엔리케 데 보르본-파르마 이 보르본-부세트 || {{{-2 (카를로스주의)}}}[br]카를로스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오란지-나사우 || {{{-2 ([[압스부르고 왕조]])}}}[br]도미닉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2 (카를로스주의)}}}[br]페드로 후안 데 보르본 도스-시실리아스 이 오를레앙[* 페드로 후안 마리아 알레요 사투르니노 이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도스-시실리아스 이 오를레앙] || {{{-2 (자유주의)}}}[br]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이 마르티네스-보르디우 || || 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 [[후안 카를로스 1세]] || 하비에르[*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데 브라간사] || 카를로스 우고 데 보르본-파르마[* 하비에르의 장남. 카를로스 하비에르의 아버지.] || 안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안톤 마리아 프란츠 레오폴트 블랑카 카를 요제프 이그나츠 라파엘 미하엘 마르가레타 니체타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카를로스 마리아 알폰소 마르셀로 || 알폰소 2세 || || 후임자 ||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 || [[아스투리아스 여공 레오노르|레오노르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 [[펠리페 6세]]의 딸] || || (카를로스) 우고 데 보르본-파르마 || 잔도어 합스부르크-로트링겐 || 하이메 || 루이스 데 보르본 이 바르가스 || || 계승 실패 원인 ||<-8>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0년 영국의 지브롤터 합병]]{{{-2 (스페인 국왕)}}}[br][[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1901년 왕조 교체]]{{{-2 (하노버 왕조)}}} || [[지브롤터]]는 본래 [[스페인]]령이었으나, 1700년에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와중에 [[영국]]이 일방적으로 점령하면서 영국령이 되었는데, 스페인 정부와 왕실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않고 지브롤터를 스페인에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므로, 스페인 왕위 요구자와 현직 스페인 국왕은 자동으로 지브롤터 영주위 요구자가 된다. 그리고 [[하노버 왕조]]는 [[지브롤터]]가 [[영국]]령이 된지 한참이나 지난 1901년부터 영국의 왕위 요구자가 되었는데, 이에 따라 자동으로 지브롤터를 포함한 영국의 모든 속령에 대한 권리의 요구자가 된다. [[지브롤터]]는 [[유럽]] 본토에 위치해있지만, [[스페인]]을 제외하면 국제사회에서 [[영국]] 영토로 인정되므로, 이 지역에 관련된 지위를 요구하는 사람은 영국의 작위 요구자가 된다. [[분류:유럽의 작위 요구자]][[분류:영국의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