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마한의 국가)] [목차] == 개요 == {{{+1 咨離牟盧國}}} 《[[삼국지(정사)|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소개된 [[마한]] 54개국 중 하나이다. 정확한 위치는 불명이나, 마한 소국 목록에서 보통 [[충청남도]] [[천안시]]에 비정되는 [[목지국]] 바로 다음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청도]] 지역에 위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에 비정하기도 하며, 660년 [[백제]]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에 의해 설치된 [[웅진도독부]]의 지명 자래현(子來縣)과 연관지어 [[당진군]]에 비정하기도 한다. [[https://db.history.go.kr/item/compareViewer.do?levelId=sg_037_0030_0200|#]] 그러나 자래현의 백제 시절 명칭은 부수지(夫首支) 또는 벌수지(伐首支)였기 때문에 확실한 설은 아니다. 한편 자리모로국의 '모로(牟盧)'는 [[마한]]의 다른 소국인 [[모로비리국]]의 이름에서도 나타나며, 〈[[광개토대왕릉비]]〉[* 396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점령한 옛 백제의 성들 중 구모로성(臼模盧城), 각모로성(各模盧城), 모로성(牟盧城), 모루성(牟婁城), 고모루성(古牟婁城)이 있다고 기록했다.], 《[[삼국사기]]》[* [[전라북도]] [[고창군]]의 백제 시절 지명으로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이 등장한다. 이는 마한의 소국들 중 하나인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에서 기원한 지명이므로 모로(牟盧)와 모량(毛良)이 같은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일본서기]]》[* 529년 3월 신라가 공략한 성들 중 하나인 포나모라(布那牟羅), 동년 4월 왜국의 [[오우미노케나]]가 머무른 [[가야]]의 [[창원시/역사#s-1|구사모라]](久斯牟羅), 530년 9월 기사에서 등장하는 이사지모라성(伊斯枳牟羅城),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 등리지모라(騰利枳牟羅), 모자지모라(牟雌枳牟羅), 그리고 554년 12월 백제의 [[위덕왕|부여창]]이 요새를 쌓았다는 구타모라(久陀牟羅)가 기록되어 있다.], 《[[양서(역사책)|양서]]》[* 6세기 신라인들은 왕성을 건모라(健牟羅)라는 명칭으로 부른다고 기록했다. 이는 《[[남사]]》에도 실린 내용이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 524년 1월 15일의 기록으로, 울진 지역에 거벌모라(居伐牟羅)라는 지명이 있었다고 한다.] 등 후대의 문헌에서도 다양한 차자표기로 문증된다. 당시 한자음을 고려하면 실제 음가는 '모라'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뜻은 확실치 않으나 보통 [[일본어]]의 [[무라]](むら)와 연관지어 [[마을]]이라고 해석한다.[* 참고로 현대 한국어의 '마을'과는 별개의 어원을 가지는데, 마을의 [[중세 한국어]] 형태는 'ᄆᆞᅀᆞᆶ'이었기 때문이다.] 또는 《[[일본서기]]》에서 구례모라성(久禮牟羅城)이 구례산(久禮山)으로도 나타난다는 점을 들어 [[산]]의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같은 문헌에서 한자 산(山)을 모로(モロ)라고 훈독하기도 했고[* 487년 기사에서 백제의 지명 대'''산'''성(帶山城)을 '시토로'''모로'''노사시(シトロモロノサシ)'라고 훈독했다. 자세한 내용은 [[ㅅ계 합용병서]] 문서 참조.] 《[[용비어천가]]》에서도 산을 뜻하는 순우리말 [[뫼]]의 고어형 '모로'가 나타나므로[* 가산(椵山)이라는 지명 표기를 '피모로'라고 읽었다.] 역시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분류: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