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black,#white 林鵬}}}}}}''' [[파일:15세 귀래정공 휘 붕 유필.jpg|width=60%]] 생몰년: [[1486년]]([[성종(조선)|성종]] 17년) ∼ ? [목차] == 개요 == '''임붕''' 또는 __귀래정공(歸來亭公) 휘 붕__은 [[조선]] 중기의 [[문신(동음이의어)#s-2|문신]]이다. 본관은 [[나주 임씨|나주]], 자는 중거(仲擧), 아호는 귀래당(歸來堂)이다. [[명종(조선)|명종]] 때 승문원정자를 지낸 [[임복]]의 아버지이고, [[선조(조선)|선조]] 때 정랑을 지내고 시인으로 유명한 [[임제]]의 할아버지이다. 벼슬은 [[예조판서]]까지 지냈다. == 생애 == [[1486년]], 아버지 [[임평]]과 어머니 김로(金潞)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임귀연(林貴椽)이다. [[1510년]], [[중종(조선)|중종]] 5년에 생원이 되었다. [[1519년]], 중종 14년에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가 화를 입자 그를 구출하려 했다. 유생들이 대궐 마당에 들어가 호곡(號哭)하자 왕은 주모자를 감금하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임붕은 “유생들이 옥에 갇혔으니 신 등이 홀로 편안히 있을 수 없다.”라는 소를 올리고 생원으로 유생 240여명을 이끌고 궐문 밖에서 명령을 기다렸다. 3일째 되는 날 왕은 갇힌 자를 석방하고 상소에 답하며 타일러 보냈다. 다음 해, [[과거시험]]의 제목을 낼 때 시관이 간사한 집권자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사류(士類 : 조광조 등 기묘명현들)를 간사한 무리로 지칭함을 보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 어찌 차마 이 시에 글을 지으랴!” 하고 붓을 던지고 나와버렸다. [[1521년]], [[중종(조선)|중종]] 16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삼사를 두루 지내고 벼슬은 승지·병사에서 그쳤다. == 묘소 == [[파일:15세 귀래정 휘(諱) 붕(鵬) 경주부윤 묘소.jpg|width=600]] == 정자 == [[파일:영모정(15세 귀래정공을 위한 정자).jpg|width=600]] == 참조 ==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청선고(淸選考) *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ndex|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분류:1486년 출생]][[분류:나주 임씨]][[분류:조선의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