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5세기)] || '''이름''' ||일루스[br](영어: Illus 그리스어: Ἴλλους 또는 Ἰλλοῦς)|| || '''출생''' ||미상|| || '''사망''' ||[[488년]]|| || '''직위''' ||[[집정관]], 마기스테르 밀리툼|| || '''반란 대상''' ||[[제노]]||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레오 왕조]]의 반란자. 같은 이사우리아인 출신인 [[제노]] 황제를 도와 여러 반란을 진압했으나, [[아일리아 베리나]] 황후와 암투를 벌이다 484년 반란을 일으켜 [[레온티우스]]를 새 황제로 추대했지만, 4년만에 진압당했다. == 생애 == 이사우리아 혈통으로 알려졌으나, 출생지와 출생년도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레오 1세(황제)|레오 1세]] 치하에 군대에 입대하여 여러 직책을 맡았는데, [[제노]]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474년 제노가 황위에 오른 뒤, 그는 아사우리아 출신 군 지휘관을 맡았다. 475년 [[바실리스쿠스]]가 여동생이자 레오 1세의 황후였던 [[아일리아 베리나]]와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키자, 제노는 곧바로 도피했다. 바실리스쿠스는 일루스에게 제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루스는 제노의 동생 [[플라비우스 롱기누스]]를 인질로 잡아서 제노를 유인하려 했다. 그런데 바실리스쿠스가 수도에서 이사우리아 족을 학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루스는 제노의 편으로 돌아섰다. 한편 애인을 죽인 오빠에게 분노한 베리나는 제노의 귀환을 위해 자금을 보냈다가 발각당하자 블라케르나의 교회로 피신했다. 476년 8월 제노는 일루스의 도움으로 황위에 복귀했고, 베리나에게 버림받은 바실리스쿠스는 교회로 피신했다가 피를 흘리지 않게 해주겠다는 제노의 약속을 믿고 밖으로 나왔다가 연금된 뒤 굶어 죽었다. 일루스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478년 [[집정관]]이 되었다. 479년, [[마르키아누스]] 황제의 외손자이자 베리나 황후의 딸 레온티아의 남편인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일루스의 집을 불태우고, 황궁 앞까지 진격해 제노를 거의 사로잡을 뻔했다. 그러나 그날 밤 일루스가 칼게도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이사우리아 부대를 이끌고 수도로 들어와서 반란군을 궤멸시켰다. 마르키아누스는 형제들과 함께 성 사도 교회로 피신했으나 곧 일루스의 부하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로 유배된 뒤 탈출을 시도했으나 체포되어 이사우리아의 파우리우스 요새에 수감되었다. 나중에 탈출한 뒤 군대를 일으켜 안키라를 공격했으나, 일루스의 동생 트로쿤데스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혔고, 재차 요새로 보내졌다. 이렇듯 잇따른 반란을 제압한 일루스는 마기스테르 밀리툼의 직책에 올라 동로마군 총사령관으로서 절대권력를 누렸다. 그는 전쟁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고, 시인이자 점술가인 팜프레피우스를 후원했다. 그러나 [[아일리아 베리나]] 황후는 팜프레피우스를 미워해 그를 추방했다. 이에 일루스는 그를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여서 편히 쉬게 해줬다. 그러나 일루스는 곧 베리나 황후의 표적이 되었다. 베리나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그를 제거하지 않는 한 자신의 입지가 약해질 게 자명하다고 판단했다. 베리나는 일루스를 죽이기 위해 수 차례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했다. 수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일루스는 이사우리아에서 병사들을 긁어모으는 한편, 제노에게 베리나를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제노는 그녀를 타르수스로 유배보내는 것으로 끝냈다. 이후 제노의 황후이자 베리나의 장녀인 [[아일리아 아리아드네]]는 제노에게 어머니를 석방해달라고 청했다. 제노는 아리아드네에게 일루스에게 간청하라고 했다. 아리아드네는 일루스를 만나 울먹이며 어머니를 풀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일루스는 "그녀는 또 다른 황제를 세워 당신의 남편에게 대항할 거다"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아리아드네는 제노에게 어머니와 일루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제노는 "당신이 나와 함께 하면 좋겠다"라며 베리나가 유배지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하였고, 아리아드네는 어머니와 함께 일루스에 대한 세 번째 암살 시도를 벌였다. 암살자는 일루스의 귀를 잘랐지만 죽이지 못했다.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판단한 일루스는 484년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처음엔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했지만, 제노로부터 진압 임무를 맡아 달려온 [[레온티우스]]와 협의하여 마르키아누스를 폐위한 뒤 레온티우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또한 그는 베리나를 유배지에서 풀려나게 한 뒤 레온티우스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게 했다. 그녀가 일루스를 일관되게 죽이려 했던 것을 볼 때,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우나, 아마도 자신을 끝까지 풀어주지 않는 제노를 원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일루스가 자신을 여러 번 죽이려 했던 베리나를 풀어준 점 역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인데, 황실의 일원인 그녀를 이용해 레온티오스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술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당시 제국 백성들은 거듭된 반란에 신물이 나 있었고, [[오랑캐]]로 여기던 이사우리아인 출신인 일루스를 경멸했기에, 별다른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제노는 동고트족 지휘관 [[테오도리크 대왕|테오도리크]]를 파견해 이들을 진압하게 했고, 테오도리크는 안티오키아 인근에서 반란군을 격파했다. 레온티우스와 일루스는 파푸리우스 요새로 후퇴하여 4년간 농성했으나, 488년 끝내 함락되어 테오도리크에게 참수되었다. 두 사람의 수급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제노에게 전해졌다. [[분류:동로마 집정관]][[분류:488년 사망]][[분류:5세기 집정관]][[분류:참수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