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탈리아 왕국의 식민지)] ||<-3><#009246><:>{{{#fff {{{+1 '''이탈리아령 에게해 제도'''}}}[br]'''Isole italiane dell'Egeo'''}}} || ||<-2><:>[[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width=150]]||<:>[[파일:800px-Blason_Ordre_Malte_3D.svg.png|width=120]]|| ||<-2><#009246><:> {{{#fff '''국기''' }}}||<#ed2939><:>{{{#fff '''휘장''' }}}|| ||||||<:><-3> [[파일:Nomos_Dodekanisou.png|width=300]] || ||<-3><#009246><:> {{{#fff '''1912년 ~ 1945년''' }}} || ||<-2> {{{#fff '''성립 이전''' }}} || {{{#fff '''소멸 이후''' }}} || ||<-2> [[오스만 제국|'''{{{#FFF 오스만 제국}}}''']] ||<#00247d> '''{{{#FFF 에게해 제도 영국군 정부}}}''' || ||<#ed2939><:> {{{#fff '''위치''' }}} ||<-2>[[도데카니사 제도]] || ||<#ed2939><:> {{{#fff '''국가''' }}} ||<-2>[[왕의 행진곡]] || ||<#ed2939><:> {{{#fff '''수도''' }}} ||<-2>[[로도스]] || ||<#ed2939><:> {{{#fff '''정치체제''' }}} ||<-2>[[입헌군주제]], [[식민지]] || ||<#ed2939><:> {{{#fff '''언어''' }}} ||<-2>[[이탈리아어]], [[그리스어]] || [목차] [clearfix] == 개요 == 1912년부터 존재했던 [[이탈리아 왕국]]의 [[식민지]]였다. 현 [[그리스]]의 [[도데카니사 제도]]에 해당되는 지역이었다. 1943년부터는 [[나치 독일]]의 [[괴뢰 정부]]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지배했다. == 역사 == 1911년-1912년의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와중인 1912년 초, [[이탈리아 왕국군|이탈리아군]]은 [[오스만 제국]]을 압박하기 위해 오스만의 본토인 [[아나톨리아]]와 가까운 [[도데카니사 제도]]를 점령하고 군사령관을 보내 그곳을 [[군정]]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쟁이 [[이탈리아 왕국]]의 승리로 끝난 [[1912년]] [[10월 18일]] 두 나라는 [[스위스]]의 우시(Ouchy)[* [[로잔]] 근처에 있다. 때문에 우시 조약을 [[튀르키예 독립 전쟁]]을 종결지은 [[1923년]]의 [[로잔 조약]]과 구분하여 1차 로잔 조약이라고도 한다.]에서 평화 조약을 체결하면서 이탈리아는 오스만으로부터 [[이탈리아령 리비아|리비아를 할양받는]] 대신 점령한 [[도데카니사 제도]]를 오스만에게 반환하기로 합의하였으나 조약의 준수를 위해 이탈리아군이 도데카니사 제도를 계속해서 점령하고 있던 도중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져버리고 다시 오스만과 전쟁 상태에 돌입하게 된 이탈리아군은 은글슬쩍 도데카니사 제도에 눌러앉아버린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같은 협상국으로 싸웠지만 [[그리스인|그리스계 주민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도데카니사 제도를 차지한 이탈리아와 [[메갈리 이데아|대그리스주의]]를 앞세운 [[그리스 왕국|그리스]]와의 충돌은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1919년]] 7월 [[파리 강화 회의]]에 참가한 이탈리아의 [[외무장관]] 톰마소 티토니(Tommaso Tittoni)와 [[그리스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Eleftherios Venizelos)는 협정을 체결하여 메안드로스 강 이남의 아나톨리아 남서부 지역에 대한 이탈리아의 영유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로도스]]를 제외한 도데카니사 제도 전체를 그리스에게 넘기기로 합의하였으나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에서 그리스가 패하면서 이 협정은 없던 일이 되었고 [[로잔 조약]]에서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 역시 도데카니사 제도의 영유권을 포기하면서 도데카니사 제도는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영토가 되었다. 도데카니사 제도가 공식적인 이탈리아 영토가 된 [[1923년]]부터 이탈리아 정부는 군정을 폐지하고 [[총독]]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정교회]]를 탄압하고 [[가톨릭]]을 장려함과 동시에 본토에서 이탈리아계 이주민들을 유치하면서 도데카니사 제도의 이탈리아화 작업을 실시하였다. [[1925년]]에는 모든 도민(島民)이 의무적으로 이탈리아 국적을 갖게 돼 많은 도민들이 해외로 이민을 갔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 [[그리스 침공]]으로 [[추축군]]이 [[그리스 침공|그리스 전역을 점령하면서]] 이탈리아는 원래 그리스 영토였던 [[키클라데스 제도]]와 스포라데스 제도까지 이탈리아령 에게해 제도에 편입시킬 계획을 세웠다가 [[나치 독일|독일]]의 반대로 실현시키지 못했고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도데카니사 제도를 접수하려는 [[영국군]] 및 [[독일 국방군|독일군]]의 무장해제를 거부한 이탈리아군과 독일군 사이에 [[도데카니사 전투]]가 발발, 여기서 [[추축군]]이 승리하여 전쟁 말엽까지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이곳을 지배했다가[* 하지만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은 [[나치 독일]]의 [[괴뢰국]]이었기에 사실상 그곳에 주둔한 [[독일 국방군]]이 지배했다.] [[1945년]] 5월 8일, [[승리의 날|나치 독일의 항복]]과 함께 도데카니사 제도의 독일군 또한 항복하면서 도데카니사 제도는 연합군이 점령했고 [[영국]]의 군정이 실시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47년 파리 조약|1947년, 이탈리아와 연합국 간의 파리 조약이 체결되면서]] 도데카니사 제도 전체가 [[그리스 왕국|그리스]]에게 할양되었다. 740여년간의 외세의 지배가 끝나고 마침내 그리스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분류:그리스의 역사]][[분류:도데카니사 제도]][[분류:이탈리아-그리스 관계]][[분류:이탈리아의 식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