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스타 시티즌에 등장하는 가공의 기업, rd1=RSI(스타시티즌))] [[분류:이탈리아의 역사]][[분류:나치 독일의 괴뢰국]][[분류:1943년 건국]][[분류:1945년 멸망]][[분류:독일-이탈리아 관계]] ||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장.svg|width=50]][br] '''{{{#fff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이탈리아의 역사)] [include(틀:제2차 세계 대전 참전국)] [include(틀:추축국)] [include(틀:나치 독일의 괴뢰국)]}}} || ---- ||<-3><:> {{{#fff {{{+1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br] '''Repubblica Sociale Italiana'''}}} || ||<-3><:> [[나치 독일]]의 [[괴뢰국]] || ||<:><-2> [[파일:이탈리아 국기.svg|width=100%]] ||<|3><:>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장.svg|width=100%]] || ||<-2><:> '''국기''' || ||<:><-2> [[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국기.svg|width=100%]] || ||<-2><:> '''전쟁기''' ||<:> '''국장'''[* [[로마 제국]]의 깃발과 매우 비슷하다.] || ||<:><-3> '''{{{#008751 Per l'onore d'Italia}}}''' [br] '''{{{#ce2b37 이탈리아의 영광을 위해}}}''' || ||<-3><:>[[파일:이탈리아 사회 공화국.svg|width=100%]] || ||<-3><:> '''{{{#fff 1943년 ~ 1945년}}}''' || ||<-2> '''{{{#fff 성립 이전}}}''' || '''{{{#fff 멸망 이후}}}''' || ||<-3> '''[[이탈리아 왕국|{{{#fff 이탈리아 왕국}}}]]''' || ||<:><#fff> '''{{{#000 국가}}}''' ||<-2>[[조비네차]][* 현재 이탈리아의 국가인 [[마멜리 찬가]]도 사용했었다.[[https://youtu.be/uUPcupF2O7Y]] ]|| ||<:><#fff> '''{{{#000 위치}}}''' ||<-2>[[이탈리아 반도]] 북부 || ||<:><#fff> '''{{{#000 수도}}}''' ||<-2>[[로마]] (명목상)[br][[살로(이탈리아)|살로]] (사실상) || ||<:><#fff> '''{{{#000 정치체제}}}''' ||<-2>[[일당제]][* [[국가 파시스트당]]의 잔당들이 창당한 [[공화 파시스트당]]이 일당 독재를 펼쳤다.], [[이탈리아 파시즘]] || ||<:><#CE2B37> '''{{{#fff 국가원수}}}''' ||<-2>[[베니토 무솔리니]] || ||<:><#CE2B37> '''[[언어|{{{#fff 언어}}}]]''' ||<-2>[[이탈리아어]] || ||<:><#CE2B37> '''{{{#fff 통화}}}''' ||<-2>[[이탈리아 리라|리라]](₤) || ||<:><#CE2B37> '''{{{#fff 법정연호}}}''' ||<-2>[[서력기원]] (공식)[br][[기년법#s-2.3|파시스트 기원]] (비공식)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괴뢰국. [[이탈리아 왕국]]에서 쫓겨난 [[베니토 무솔리니]]가 [[아돌프 히틀러]]의 도움을 받아 세운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괴뢰국]]이다. 약칭은 RSI로 보통 행정부 소재지인 [[살로(이탈리아)|살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에 있는 소도시로, 현재는 인구 1만명 남짓이다.]의 이름을 따서 '''살로 공화국'''(Repubblica di Salò)이라고 부르고 [[파시스트 이탈리아]]라고도 한다. == 역사 == 1943년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으로 미영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자 [[국가 파시스트당]] 내부의 반무솔리니파와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전쟁 책임을 전가하고 연합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에 합의, 무솔리니는 축출되고 육군 원수 출신인 [[피에트로 바돌리오]]가 이끈 신 행정부에 의해 전범으로 체포되어 감금되었고 바돌리오 정부는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지만, 항복 직후 바돌리오 정부를 의심하고 있던 독일이 이탈리아를 점령한 후 무솔리니를 구출[* [[오토 스코르체니]] 문서 참고.]해서 1943년 9월 23일 이탈리아 북부에 설립했다. 먼저 무솔리니는 자신을 배신했던 [[갈레아초 치아노|사위]]와 [[에밀리오 데 보노]] 등 17명을 처형한다. 자신의 사위도 처형시켰던 데서 알 수 있듯이, 군 장성도 처형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고 [[이니고 캄피오니]] 등 일부 군 장성들이 살로 공화국에 대한 협조를 거부했다가 처형당한다.--[[윈스턴 처칠]]이 그것을 보고 무솔리니를 존경했다고 한다.--[* 진짜로 존경했다는 게 아니라 처칠의 일화 중에 처칠의 사위가 처칠에게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자 처칠이 무솔리니라고 대답했는데 사위가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아니냐고 되묻자, '''걔는 지 사위마저 총살시킨 놈이었다'''고(...) 말한 것이었다. 사위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블랙 코미디|농담]]일 뿐이었다.] 사실 무솔리니는 마지막에 치아노는 살려주면 안되냐고 요청했지만 그는 실권이 없었고 독일군이 죽여버렸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군 구축과 정비의 노력들을 하였으나, 독일의 괴뢰국이었기 때문에 [[트리에스테]], [[이스트리아]], [[쥐트티롤]] 지방 등 일부 지역을 독일에 강탈당했다.[* 참고로 원래 쥐트티롤은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병합]]에 항의하는 무솔리니를 달래기 위해 공식적으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 지역이었다.] 노조 활동과 파업도 금지되었으나, 무솔리니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위해 노동자의 지지를 받을수 있는 정책들이 통과하도록 추진하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괴뢰국]]일 뿐 별다른 역할은 하지 못했다. 독일의 지원과 보호가 없이는 결코 존속하기 불가능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들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고, 이탈리아의 [[레지스탕스|레시스탄자]]([[파르티지아노]]) 유격대나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학살하는 일들에만 이용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남북으로 길다란 [[이탈리아 반도]]의 지형 덕분에 [[독일 국방군]]의 알베르트 케셀링이 지휘하는 독일군은 구스타프 라인, 베른하르트 라인, 발바라 라인, 아레초 라인, 고딕 라인 등 겹겹이 늘어선 산맥 방어선들을 따라 방어전을 전개하여 남부 이탈리아 지역에 있는 연합군들을 묶어두어 전선을 유지시켜 연합군의 진격이 지지부진했기에 이 허술해 보였던 국가가 의외로 오래 버티게 되었다. 하지만 독일군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군은 연합군의 진격을 지연시킬 수는 있지만 막아내고 반격을 할 역량은 부족했고, 독일의 패망 직전인 [[1945년]] [[4월 25일]]에 국방장관 [[로돌포 그라치아니]]가 '이탈리아의 독일군 항복이 임박했다.'는 급보를 무솔리니에게 전하고 북부로 도망친다. 무솔리니는 즉시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독일과의 [[추축국|추축동맹]]을 파기한다.'고 알리려 했었지만, 이미 뒷북이었다. 그 날 저녁, 베니토 무솔리니는 전범 재판을 대비해 자신의 전범 혐의가 써져 있는 서류들을 챙기고 이탈리아 탈출을 시도한다. 이로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정부는 사실상 붕괴된다.[* 이탈리아는 [[4월 25일]]을 해방의 날(festa della liberazione)이라는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4월 27일]] 중립국 [[스위스]]로 탈출하려던 무솔리니와 그의 일행 6명은 [[파르티지아노]]의 검문을 받게 되어 체포, 즉결 총살을 당한다. 총살당한 무솔리니와 애인 [[클라라 페타치]]를 비롯한 그의 일행들은 이어서 밀라노 광장 주유소에 거꾸로 매달린 채 전시되었다. 이틀 뒤 독일의 하인리히 폰 피팅호프(Heinrich von Vietinghoff) 장군이 카세르타에서 이탈리아 주둔 독일군의 항복에 서명하자, RSI의 국방장관 그라치아니도 항복했다. 항복은 [[5월 2일]]부터 발효됨으로써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은 완전히 멸망, 도로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었다. == 군대 == [[파일:23499A4656D00CE40DAB5D.jpg]] [[국방장관]]으로 [[로돌포 그라치아니]]가 임명되면서 [[검은 셔츠단]]를 다시 창설하고, 사실상 이들이 군대로 쓰였다. 물론 [[검은 셔츠단]]들 빼고 몇몇 [[민병대]]도 있었다고 하며 이외에도 [[https://en.m.wikipedia.org/wiki/National_Republican_Army|국가 공화국군]]이라는 가장 정규군스러운 조직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연합군과의 전투를 치를 수 있는 능력조차도 안되었을 뿐만 아니라 [[파르티지아노|파르티잔 유격대]] 및 게릴라 토벌을 할 수 있는 형편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의 파르타잔([[파르티지아노]])이나 게릴라 규모는 흔히 알려진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초과했다. 이들은 독일군에 의해 강제 해산된 이탈리아군이 뿌린 무기를 접수하고, 44~45년 내내 북부 이탈리아 곳곳에서 독일군과 살로 공화국을 공격했다. 연합군과의 연합작전도 펼쳤고, 연합군에 앞서 [[밀라노]], [[파르마]] 등 북부 도시들을 해방시켰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좌파 성향이었던 프랑스 레지스탕스들보다도 더 강경한, 한마디로 공산당에 근접한 좌파 성향을 띄었던 데다가 매우 호전적이었던 탓에 살로 공화국은 이들을 잡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괴뢰 정권이긴 했지만 독자적인 공군 부대도 있었다. 살로 공화국의 공군성 차관은 당시 '''중령'''이었던 에르네스토 보토(Ernesto Botto)가 맡았는데,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서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공군에 남아 활동해서 당시 이탈리아 공군 내에서 인망이 높았다. 그래서 에르네스토 보토가 살로의 공군 수뇌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탈리아 공군 조종사들 중 살로 측에 합류한 인사들도 꽤 있었다. 게다가 에르네스토 보토는 살로 공군은 독일군과는 독립적인 명령 및 조직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고 이를 위해 아예 독일 공군의 총수인 [[헤르만 괴링]]에게 직접 찾아가서 담판을 지어 이를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당연히 독일군 측과 마찰이 생겼고, 결국 독일 측의 압력을 견디다 못한 보토는 1944년 [[차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또한 의외로 살로 공화국 해군도 일단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항복 과정에서 [[이탈리아 왕립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리토리오급 전함]] 등 대형함들이 죄다 연합국으로 넘어가버렸고, 순양함급, 심지어는 구축함급 함선들도 다수가 연합국에 항복해버린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군 장교들이 대거 전향하면서 살로 공화국 해군은 완전히 빈 껍데기만 남아버렸다. 그나마 독일이 어뢰정이나 소형 반잠수정 몇 척을 보내주는 등 없는 상황에서도 약간의 지원을 해주었고, 살로 공화국도 자체적으로 Decima flotiglia MAS에서 갈라져 나온 대원들을 이용하여 해군 특수부대를 창설하기도 했지만, 그래봤자 겨우 연안 순찰이나 기뢰 부설같은 임무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으로 인하여 살로 공화국 해군의 유일한 전공은 1945년 4월, 어뢰정으로 [[프랑스 해군]]의 구축함 트롬베를 중파시킨 것이 전부다. 여담으로 초기 살로 공화국 해군은 백전노장의 해군 제독 [[이니고 캄피오니]](Inigo Campioni)를 지휘관으로 임명함과 동시에 해군을 재건하려 하였으나, 캄피오니는 살로 공화국을 위해 싸우기를 거부하였고 결국 살로 공화국은 그를 처형했다. 여러모로 [[이탈리아 왕국]]이 연합국으로 전향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가한 이탈리아 공동교전군(Italian Co-belligerent Army)[* 이탈리아 협동군, 남 왕국군(Esercito del Sud), 이탈리아 해방군(Italiano di Liberazione) 등, 편성 시기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과 비교되는데, 독일군과 히틀러가 이탈리아인을 믿지 못하고, 종전까지 살로 공화국에게 괴뢰정부 이상의 권한을 주지 않아 살로 공화국의 군대는 5만 남짓에 그마저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점령국 취급을 받으며 후방 [[파르티잔]] 토벌에만 동원된 반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일군은 [[무솔리니]]가 실각하고, 이탈리아 왕국이 공식적으로 항복하는 전후로 이탈리아군을 적대군으로 취급하고 강제 무장해제를 벌였기에(Operation Achse:악세 작전), 이 과정에서 희생된 이탈리아군도 몇 만명은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60만명은 독일과의 협력을 거부하고 노동 캠프에 들어가 노예나 다름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장과 건설, 농업 노동자로 종사했다. 이런 상황이니 히틀러와 독일군은 살로 공화국도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 [[연합국]]은 남쪽에 남은 [[이탈리아 왕국군]]을 지원하여 전투의 일원으로 참가시켰다. 이 이탈리아 공동교전군은 [[조반니 메세]], 움베르토 유틸리 등 구 [[이탈리아 왕국군]] 장성 출신들이 지휘를 맡았으며, 처음에는 1개 차량화 전투단으로 시작했지만 종국에는 6개 사단급 전투단을 합쳐 30만명 규모까지 확대되었다. 이들은 치안유지와 병참, 대공방어, 해안 경비 등 후방에서 연합군을 서포트하는 위치긴 했지만, [[몬테카시노 전투]], 안코나 전투(Battle of Ancona), [[볼로냐]] 해방 등, 미국 제2군단과, 영국군 제5군단, 10군단과 함께 이탈리아의 해방을 위해 활약했으며, 현대 [[이탈리아군]]의 전신이 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Military_ranks_of_the_Italian_Social_Republic|계급 목록]] [[아돌프 히틀러]]와 독일군 수뇌부는 마지막까지도 동맹국과 자신들의 역량을 끌어모을 통찰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Template:Armed_Forces_of_the_Italian_Social_Republic|편제 목록]] == 미디어에서 == 살로 공화국을 배경으로 해서 나온 소설 기반 [[영화]]가 바로 희대의 문제작 [[살로 소돔의 120일]]이다.[* 원작 소설은 근세 프랑스가 배경이다. 사실 영화도 엄밀하게 말하면 살로 공화국이 배경은 될 수 있어도 주무대는 아니다. 영화는 스위스의 어느 저택을 무대로 진행되며, 살로 공화국에 대한 언급은 그 저택의 주인들이 살로 공화국의 고위 인사들이라는 것과 '죽음을 유예받고 살로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그 대사 한 마디 뿐이다. 차라리 살로 공화국을 무대로 설정한 영화는 '[[로렌초의 밤]]'이 더 가깝다.] 또한 영화 [[파시스트(영화)|파시스트]]도 배경이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과 이탈리아 왕국이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던 1944년이다. [[Hearts of Iron IV]]의 [[Hearts of Iron IV/DLC#s-2.8|DLC 'By Blood Alone']]을 설치하면 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등 파시스트 지도자[* 무솔리니를 축출하고 [[이탈로 발보]]를 지도자로 세우더라도 지지도가 떨어지면 마찬가지로 내전이 발생한다.]의 지지율이 특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남부 왕국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으로 나뉘어 내전에 돌입한다. 파시스트 지도자의 지지율이 내전이 날 정도로 떨어지는 것은 대부분 전쟁에서 지고 있기 때문으로, 플레이어가 이탈리아를 하고 있다면 남부 왕국을 골라서 연합국으로 갈아타거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선택하여 추축국에 남아있을 수 있다. 물론 이탈리아가 남쪽으로부터 상륙을 당해서 지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상륙의 번거로움으로 인해 북부로부터 뚫려서 망하는 케이스가 더 많기 때문에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이름과는 달리 북부에 남부 왕국이 생겨나고]] 남쪽에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이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