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이진우 || || '''출생''' ||[[1979년]]([age(1979-12-31)]-[age(1979-01-01)]세) || ||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대한민국]] || || '''가족''' ||[[어머니]] 전 모^^(1948년생)^^[br][[배우자]] 조 모^^(1979년생)^^[br][[아들]] 이주성 ^^(1998년 ~ [[동작대교 유아 투기 살인사건|2003년]])^^[br] [[딸]] 이주은^^(1999년 ~ [[동작대교 유아 투기 살인사건|2003년]])^^ || || '''범죄 혐의''' ||[[살인]] || || '''최종범죄 형량''' ||징역 15년^^(2018년 12월경 출소)^^ || [목차] == 개요 == >'''[[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죄는 씻을 수 있습니다.]]'''[* 원래 "는"이 아닌 "를"이라고 말했으나, 뉴스 자막이 는으로 송출되어서 는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기독교인이라서 사람을 죽여도 되냐"는 기자의 말에 [[동작대교 유아 투기 살인사건]]의 범인. == 생애 == 18세였던 1997년에 다른 학교 여학생과 [[동거]]에 들어간 뒤 이듬해 아들을 낳고 정식 결혼을 했다. 이후 직업 없이 부모에게 얹혀 살면서 [[교회]]에서 간부로 일하던 아버지에게 월 50만 원씩 [[용돈]]을 타서 살아 왔다. 2021년 기준으로도 월 50만원은 상당히 크고 다소 절약한다면 2인 가정의 1달 식비도 지탱할 수 있는 돈이다. 1997년 기준으로 보면 용돈 수준의 돈이 아닌데 당시 [[최저임금]]은 시간당 1,400원이었다.[* [[https://www.minimumwage.go.kr/stat/statMiniStat.jsp|최저임금위원회 '최저임금액 현황']] 출처.] 100대 기업 평균 대졸 초입 연봉은 1,860만원이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90600239111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7-09-06&officeId=00023&pageNo=11&printNo=23818&publishType=0001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조선일보 '100大(대) 기업 대졸초임 평균연봉 1,860만원']] 출처.] 어디까지나 세전 액수고 실제로는 1,600만원 가량 되었을 것이다. 집에 얹혀사는 '''무직 백수 고졸'''에게 주어진 1년 용돈이 600만원이었던 것인데 이는 당시 사립대 [[의대]], [[치대]]의 1년 [[등록금]]에 해당한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10400329121001&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1-04&officeId=00032&pageNo=21&printNo=16264&publishType=0001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대학등록금 5~9%인상 검토']] 출처.] 이런 정황을 볼 때 이 씨의 가족은 굉장히 유복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씨의 의지가 있었다면 공부해서 대학도 다닌 뒤 좋은 직장에 취직할 여건도 보장되는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씨는 1998년부터 [[과천시]]의 [[렛츠런파크 서울|경마공원]]과 [[부천시|부천]]의 TV 경륜장을 출입했다. 1999년부터 부천에 있는 한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으며 2003년에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2000년경부터는 5개의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다가 3,000여만 원의 카드 빚을 지게 돼 2000년 7월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 역시 2021년 기준으로도 굉장히 큰 돈이지만 1999년 대졸초임 평균 연봉이 약 1,700만원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1300329101003&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09-13&officeId=00032&pageNo=1&printNo=16852&publishType=00010|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대졸초임 평균연봉 1,711만원']] 출처.][* 즉 2021년 기준으로 보면 무려 9,000만원 정도 진 것이다.] 이 씨의 낭비벽과 [[도박 중독]]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씨의 부모는 아들의 카드 빚을 갚아 주다가 이 씨가 경마 등으로 자꾸 빚을 지자 점차 도움을 주지 않게 되었다. 아내와의 불화도 있었는데 [[도박]]을 하기 위해 범행 7일 전에도 아내의 카드를 훔쳐 500만 원 가량을 사용한 것이 드러나 심하게 다퉜다고 증언했다. 이 씨는 경제적 문제로 아이들을 키울 여력이 없어 범행 2주 전부터 [[동작대교]] 인근의 물 깊이를 재기 위해 답사를 하고 [[인터넷]]으로 "[[한강]]에 투신했을 때 살아날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조사했다고 한다. 19일 오전 이 씨는 아내가 자신의 승합차를 허락 없이 타고 나갔다며 [[부부싸움]]을 벌였다. 이 씨의 아내는 "남편은 '당신이 산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이 너무 비싸다'고 한 뒤, 선물을 바꿔 오겠다며 나갔다"고 말했다. 그 승합차를 타고 가서 인근 H [[어린이집]]에 맡겨진 아이들을 "놀이공원에 가자"면서 데리고 나왔으며 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오면서 아이들에게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1알씩[* 동아일보 기사에 "정신병 약"을 먹였다는 발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정신과]]에서 처방 받은 약을 안 먹고 갖고 있다가 범행에 사용한 듯.] 먹인 다음 몽롱한 상태의 아이들을 한강에 집어던졌다. 이 씨는 범행을 저지른 다음 전화를 걸어 어머니 전모 씨(55)에게 "아이들을 한강에 던져버렸다. 아내도 죽이러 간다"고 말했다. == 체포 == [[경찰]]은 차량의 뒤를 따르던 운전자의 신고를 받고 차량번호를 추적해서 이 씨의 신원을 알아냈다. 이씨의 집으로 경찰을 급파해 오후 6시 15분경 귀가하는 이씨를 체포해서 [[서울용산경찰서]]로 압송했다. 검거 당시 이 씨는 "지적장애 3급이라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며 [[복지카드|장애인 신분증]]을 경찰에 제시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동작대교 유아 투기 살인사건, version=491, paragraph=3)] [[분류:1979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