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란츠 1세 요제프의 황후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rd1=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Include(틀:다른 뜻1, other1= 벨기에 알베르 1세의 왕비, rd1=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마법소녀 타루토☆마기카 The Legend of Jeanne d'Arc, rd1=이자보 드 바비에르(마법소녀 타루토☆마기카))] [include(틀:역대 프랑스 왕비)] ||<-3> '''프랑스 왕국 샤를 6세의 왕비[br]{{{+1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br]Elisabeth von Bayern''' || ||<-3>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Christine_de_Pisan_and_Queen_Isabeau_detail.jpg|width=100%]]}}} || ||<|2> '''이름''' || 독일어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br](Elisabeth von Bayern) || || 프랑스어 ||바이에른의 이자보[br](Isabeau de Bavière) || || '''출생''' ||<-2>[[1370년]] [[뮌헨]] ,,(추정),, || || '''사망''' ||<-2>[[1435년]] [[9월 24일]] (64-65세)[br][[프랑스 왕국]] [[파리(프랑스)|파리]] || || '''장례식''' ||<-2>[[1435년]] [[10월]][br][[생 드니 대성당]] || || '''배우자''' ||<-2>[[샤를 6세]] ,,(1385년 결혼 / 1422년 사망),, || || '''자녀''' ||<-2>이자벨, 잔, 마리, 미셸, 루이, 장, [[카트린 드 발루아|카트린]], [[샤를 7세]] || || '''아버지''' ||<-2>바이에른 공 슈테판 3세 || || '''어머니''' ||<-2>타데아 비스콘티 || || '''형제''' ||<-2>바이에른 공 루트비히 7세 || || '''종교''' ||<-2>[[가톨릭]]||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 [[샤를 6세]]의 [[왕비]]이자 [[샤를 7세]]의 모후이다. 또한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의 왕비 [[발루아의 카트린]]의 어머니이기도 하기에 헨리 5세의 장모이자 [[헨리 6세]]의 외조모이기도 하다. 아래에 서술되는 이유로 프랑스에서는 자국 역사에서 악질적인 여자([[악녀]])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 생애 == [[1385년]] [[샤를 6세]]와 혼인하여 왕비가 되었다. 신혼 직후에는 평온했으나, [[남편]] 샤를 6세가 점점 정신분열 증세를 보임에 따라 [[결혼]] 생활이 파탄에 이르렀다. 왕이 실성하여 돌아다니다가 [[시종]]을 4명이나 죽이는 등 광기를 보이고, 왕비마저 침실에서 몰아냈기 때문이다. 결국 남편이 국정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질환이 심각해지자 [[1408년]]에 왕비 이자보가 섭정위원회를 주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래서인지 아들인 샤를 7세는 샤를 6세와의 아들이 아니라 이자보가 불륜으로 낳은 사생아라서 정통성이 없다는 소문에 시달려, [[잔 다르크]]의 도움이 있을 때까지 정식으로 즉위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전하는 초상화를 보면 샤를 7세가 샤를 6세와 아주 판박이라서, 반대파의 모함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권력욕에 따라 야합을 일삼았기 때문에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1420년]]에는 [[잉글랜드]]와 트루아 조약을 체결하여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국왕이 하나임을 시인했다. 영국 왕 [[헨리 5세]]가 카트린([[샤를 6세]]와 이자보의 [[딸]])과 반드시 혼인한다는 조건으로, 헨리 5세를 프랑스의 섭정으로 임명하고 샤를 6세가 사망하면 그가 [[프랑스 국왕]]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자보의 [[아들]]인 [[샤를 7세|도팽 샤를]]의 상속권은 박탈당했다. 굴욕적인 [[조약]]이 체결된 지 2년 만에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는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안 되는 영아를 상속자로 남긴 채 사망했고, 프랑스 국왕 샤를 6세 역시 생을 마감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를 다스리기 위해 2명의 [[섭정]]이 임명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고인]]이 된 잉글랜드 왕 헨리 5세의 [[형제]]이자 어린 헨리 6세의 [[후견인]]이기도 했다. 이자보 왕비는 이런 정치적 수완을 발휘한 다음 [[프랑스 파리]]의 마레 지역에 있는 생-폴(Saint-Paul)[* 성 [[바오로]]] 저택으로 은퇴하였고, 만인의 경멸 속에서 64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줄곧 거기서 살았다. == 여담 == 잉글랜드에 [[잔 다르크]]를 죽일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데 잔 다르크의 실제 [[어머니]]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오를레앙공과의 [[불륜]]으로 잔 다르크를 낳았는데 부르고뉴파가 아기를 죽이려고 하자 빼돌려서 농민의 집으로 보냈다는 [[막장드라마]] 같은 내용인데, 당연히 근거가 부족한 내용이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은 낮다. '[[프랑스]]는 한 여인에 의해 망하고, 한 여인에 의해 구원받는다.'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전자의 [[여인]]은 이자보를 가리키고 후자의 여인은 잔 다르크를 가리킨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오를레앙의 처녀>라는 희곡에서는 잔 다르크와 샤를 7세를 적대시하는 역할로 나온다. [[마법소녀 타루토☆마기카]]에서는 타루토를 제거하려 든다. 큐베의 모든 능력을 가진 마법소녀로 최종보스로 나온다.[* 큐베의 말로는 마법소녀이면서,마녀이면서,동시에 그 자신이라고 한다.]최후에는 직접 타루토와 맞서 싸우는데,타루토가 각성하며 결국 죽게된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잔 다르크)] [[분류:프랑스 왕비]][[분류:비텔스바흐 가문]][[분류:발루아 가문]][[분류:1370년 출생]][[분류:1435년 사망]][[분류:생 드니 대성당 안장자]][[분류:뮌헨 출신 인물]][[분류:독일계 프랑스인]][[분류:백년전쟁/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