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무경칠서)] {{{+1 [[李]][[衛]][[公]][[問]][[對]]}}} [목차] == 소개 == [[무경칠서]](武經七書)의 하나이다. 정식명칭은 당태종이위공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이나, 약칭으로는 이위공문대 혹은 당리문대(唐李問對)로 불린다. 내용은 [[태종(당)|당태종]] 이세민과 당의 명장 [[이정(당)|이정]]이 문답하는 형식의 병서다. 저자는 당나라 초기 장수인 이정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당서]], [[신당서]]와 [[송사]] 예문지에는 이정의 저서로 육군경(六軍鏡) 3권, 위국공수기(衛國公手記) 1권, 이정병검신서(李靖兵钤新書 )1권, 도검비술(韜鈐秘術) 1권, 총요(總要) 3권, 궁결(弓訣) 1권만이 있지 이위공문대는 없다. 실질적으로 송대 이후의 무경칠서 합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 실물을 본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고 후대 가필이나 역사적 내용에 맞지 않기 때문에 [[위서]] 취급인데, 따라서 이정이 쓴 내용이 아니라면 누가 쓴것인지 여러가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진사도(陳師道)는 후산담총(後山談叢)에서 이 책을 송나라 사람 완일(阮逸)의 위작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설의 경우 점점 그 진위가 의심받아서 이 책은 이정의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또한 완일의 것도 아니라는 의견이 자리잡았다. 완일이 지었다면 문체가 조잡하진 않을 것인데 이 책의 문체가 조잡하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이다. == 상세 == [[사고전서]]총목제요에선 당말송초 촌에 사는 선비나 속된 학자가 정관(貞觀)의 군신의 유사(遺事)를 수집해 이를 만든 것이다라는 의견을 냈다. 칠서의 제정에 의거하면 결코 당(唐)대의 구문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기정(奇正)을 분별하고, 공수(攻守)를 가리키며, 주객(主客)을 변화시켜, 병가의 오묘한 뜻에서 당시에 얻는 바가 있다했고 정원(鄭瑗)의 정관쇄언(井觀瑣言)에선 문대(問對)란 책이 비록 위서이나, 반드시 학식과 모략이 있는 자의 손에서 나온 것이라고 일렀다. 이 말이 이 책에 꼭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지금 비록 그것이 바로 위작이라고 여겨지나, 오히려 이를 책에 적는다라고 했다. [[분류:병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