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MBC·KBS·YTN 부당징계자 명단)] ---- ||<-2> [[파일:이용마기자 프로필.jpg|width=100%]] || || {{{#ffffff ''' 이름 ''' }}} ||이용마(李容馬) || || {{{#ffffff ''' 국적 '''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28]] [[대한민국]] || ||<|2> {{{#ffffff ''' 출생 ''' }}} ||[[1969년]] [[1월 10일]] || ||[[전라북도]] [[남원시|남원군]][br](現 전라북도 남원시) || ||<|2> {{{#ffffff ''' 사망 ''' }}} ||[[2019년]] [[8월 21일]] (향년 50세) ||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 || {{{#ffffff ''' 학력 ''' }}} ||[[전주풍남초등학교]] {{{-2 (졸업)}}}[br][[전주동중학교]] {{{-2 (졸업)}}}[br][[전주고등학교]] {{{-2 (졸업)}}}[br][[서울대학교]] {{{-2 ([[정치학]][* 87학번] / [[학사]])}}}[br][[서울대학교 대학원]] {{{-2 ([[정치학]] / [[석사]][* 석사 학위 논문 : [[http://www.riss.kr/link?id=T39872|칼 마르크스의 계급정치 사상에 대한 비판적 연구 : 루이 알튀세르/에티엔 발리바르의 논의를 중심으로]].]·[[박사]][* 박사 학위 논문 : [[http://www.riss.kr/link?id=T13289192|한국 사회 계층균열의 등장과 정당재편성 : 2000년대 선거를 중심으로]].])}}} || || {{{#ffffff ''' 직업 ''' }}} ||[[기자]] || || {{{#ffffff ''' 가족 ''' }}} ||배우자 김수영, 슬하 2남[* 이란성 쌍둥이이다.] || [목차] [clearfix] == 개요 == > '''"지금까지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 ''' > 이용마 기자의 삶은 정의로웠다. 젊은 기자 시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기득권의 부정과 부패에 치열하게 맞서 싸웠고,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돌려주기 위해 가장 험난한 길을 앞서 걸었다. >---- > [[문재인]] 대통령 ||[[파일:이용마기자.jpg|width=100%]]|| ||2017년 12월 8일, MBC로 복직되고 나서 첫 출근하는 모습. 오랜 암투병으로 인해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이다.|| [[대한민국]]의 기자. == 생애 == [[1969년]] [[1월 10일]] [[전라북도]] [[남원시|남원군]]에서 태어났다. [[전주풍남초등학교]]와 [[전주동중학교]],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1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 2013년 8월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MBC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전국부, 경제부, 문화부, 외교부, 정치부 등을 두루 거치며 기자로 활동하는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지부에서 홍보국장을 역임했다. 2012년, MBC 파업 당시 [[노조]] 홍보국장으로 역임하며, [[최승호(언론인)|최승호]] PD 등 6명과 함께 [[파업]]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는 이유로 같은 해 3월 보도국에서 입사 한지 15년 만에 강제해고됐다. [[김재철(언론인)|김재철]]이 첫 번째로 해고한 언론인이다. 해임 후 [[국민라디오]]에서 <이용마의 한국정치>를 진행하였고, 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갑작스런 복막암 발병으로 인해 투병 생활을 하였으며, 복막암 투병 중에도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저서를 냈다. [[2017년]] 12월 8일 [[최승호(언론인)|최승호]]가 MBC의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해직된 동료 언론인들과 함께 5년 9개월 만에 MBC 보도국에서 복직되어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 투병 중인 관계로 그 날 이후로는 계속 휴직중이었으며, 결국 2019년 8월 21일,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향년 50세의 나이로 [[https://www.etoday.co.kr/news/view/1790200|별세했다]]. 8월 24일 MBC 상암사옥 광장에서 선후배 직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사우장으로 장례가 엄수되었으며,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안치되었다. 언론자유를 위해 투쟁한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이용마 언론상'을 제정했다. 2021년 12월 3일,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이야기들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그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MBC에서 방영되었다. 제목은 <이용마의 마지막 리포트>. [[https://m.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21526.html?_fr=gg|#]] == 여담 == * 보도국 취재 도중 1997년 3월 뉴스데스크를 보도하여 같은 해 3월 횡령혐의로 편파도로로 명예를 훼손하여 수원지검 성남지청 조영선 검사는 26일 제보자의 말만 믿은손해배상청구소송을 5억원으로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제출하여 당시 검찰은 이중기소 사실을 알고 있어 보도했었다. * 2023년 3월 [[대장동 게이트]]의 [[https://youtu.be/acFqjAmaIf4|유동규가 유재일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한 발언]]에 따르면, [[이재명]]이 성남시장이던 과거에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이던 [[유동규]]에게 갑자기 전화를 하더니 '''이용마의 부인에게 시설관리공단 내 일자리를 무조건 만들어주라고 일종의 불법청탁을 하며 강요했었다고 한다.'''[* 유동규는 당시 기술직을 제외하고는 급수가 높은 자리는 승진 형태 외에는 외부영입으로 고용할 수 없게 체계를 만든 상황이라 8급직(주차요원) 정도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재명이 그런거 말고 무조건 높고 편한 자리로 만들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근데 사실 '''나중에 알고보니 이는 부인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이재명이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유동규는 없던 직원 자리를 갑자기 무조건 만들라는 요구에 당황했지만, 이재명의 요구라서 거절하기 두려워 일단 이재명이 알려준 부인의 번호로 전화를 해서 "사모님 저희 이재명 시장님께서 기자님과 사모님을 걱정하셔서 사모님께 일자리를 제공해 드리려 하는데, 지금 제가 시간이 약간 필요하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라고 말했는데, 그녀는 갑자기 처음 본 사람이 전화로 한 말이 무슨 소린지 몰라서 당황하다가 이해한 뒤 "저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는 그런 특혜는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유동규는 그제서야 그 부인이 청탁한 적이 없다는 걸 얼핏 깨닫고 당황한 채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물론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이용마 기자의 부인의 인품이 정말 훌륭한 분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이후 유동규는 이재명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하며, 사모님이 안 한다고 하시는데 계속 설득해야 하냐고 물었고, 이재명은 "아 자기가 안 한다고 했다고? 그럼 됐어. 하지마. 본인이 안 한다는데 안하면 되지."라고 말하고 끊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유동규는 이재명이 생색내려고 소통없이 일방적으로 정하여 자신에게 청탁한 거라는걸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분류:MBC 전직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남성 기자]][[분류:1969년 출생]][[분류:2019년 사망]][[분류:남원시 출신 인물]][[분류:복막암으로 죽은 인물]][[분류:전주풍남초등학교 출신]][[분류:전주고등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출신]][[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