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4대 국회의원/전라북도)] 李玉童[* 족보 이름은 이환의(李環儀)이다.] 1922년 06월 01일 ~ 2009년 02월 18일 [[대한민국]]의 전 [[독립유공자|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922년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전주 이씨|전주]][* [[효령대군]] 17세손, 시조 40세손.]다.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 [[도쿄도]] [[주오대학]] 재학 중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전주형무소에서 1년4개월간 구금되었다. 1943년 출옥 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최남선]], [[이광수(소설가)|이광수]] 등이 한국인 [[학병]]의 일본군 입대를 권유하는 강연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였다. 이에 또다시 체포되어 20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998.15 광복, 후인 1947년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도쿄본부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전라북도 진안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5.16 군사정부에 의해 [[3.15 부정선거]] 가담을 이유로 1961년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에 의해 공민권이 제한되었나 무혐의 처리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민회 후보로 전라북도 [[무주군]]-[[진안군]]-[[장수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진안군 출신의 [[민주공화당]] [[전휴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신한당]], [[신민당(1967년)|신민당]] 등에 속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일당]] 후보로 전라북도 [[전주시]]-완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1967년)|신민당]] [[이철승]] 후보와 [[민주공화당]] [[유기정(1922)|유기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분류:진안군 출신 인물]][[분류:전주 이씨 효령대군파]][[분류:1922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제4대 국회의원]][[분류:자유당 국회의원]][[분류:전주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