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가야 국왕)] ||<:><#87CEEB> '''{{{#3d428b 왕호}}}''' ||<(> '''이시품왕(伊尸品王)[*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등장. 주검 시(尸)는 향찰에서 'ㄹ' 받침을 나타내는 표기에 사용되므로, 당시에는 '일품왕'으로 불린 듯하다.]''' || ||<:><#87CEEB> '''{{{#3d428b 별호}}}''' ||<(> 이품왕(伊品王)[* 《삼국유사》 왕력에 등장.] || ||<:><#87CEEB> '''{{{#3d428b 시호(?)}}}''' ||<(> 명왕(明王)(?)[* 김해 김씨 족보에 기록된 시호.] || ||<:><#87CEEB> '''{{{#3d428b 성씨}}}''' ||<(> 김(金) || ||<:><#87CEEB> '''{{{#3d428b 휘}}}''' ||<(> 이품(伊品) / 이시품(伊尸品) || ||<:><#87CEEB> '''{{{#3d428b 왕후}}}''' ||<(> 정신(貞信) || ||<:><#87CEEB> '''{{{#3d428b 왕자}}}''' ||<(> 김좌지(金坐知) || ||<:><#87CEEB> '''{{{#3d428b 부왕}}}''' ||<(> 거질미왕(居叱彌王) || ||<:><#87CEEB> '''{{{#3d428b 모후}}}''' ||<(> 아지(阿志) || ||<:><#87CEEB> '''{{{#3d428b 생몰연도}}}''' ||? ~ 407년 4월 10일 || ||<:><#87CEEB> '''{{{#3d428b 재위기간}}}''' ||<(>346년 7월 7일 ~ 407년 4월 10일[br](61년) || [목차] == 소개 == [[금관국]]의 5대 왕.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한다. 김해 김씨 [[족보]]에는 명왕(明王)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은 김씨이고 [[왕비]]는 극정신이며 [[태자]]로는 좌지(훗날 [[좌지왕]])이 있었다. [[일본서기]]의 기본한기(己本旱岐)[* [[http://hl2dus.egloos.com/1750455|이본한기]](已本旱岐)의 오기라는 설도 있다.]와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한다. 일본서기에서는 기본한기의 음을 코호칸키(コホカンキ, 옛 발음으로는 "코포칸키")라고 달아놓았다. 여기서의 한기(旱岐)는 가야 소국의 왕을 지칭할 때 쓰는 칭호이기 때문에 본래 이름은 기본에 해당한다. 일본서기에는 기본한기의 왕자로 좌지왕말고 백구저(百久氐), 아수지(阿首至), 국사리(國沙利), 이라마주(伊羅麻酒), 이문지(爾汶至) 등을 더 기록해 놓았으나 이들이 실제로 이시품왕의 아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백구저가 좌지왕과 같다는 설도 있다. 346년 칠석부터 407년까지 무려 61년간 가야를 다스렸으나 [[임기]] 내내 침공에 시달리던 불운한 왕이었다. == 침략의 시대 == === 백제의 침공 === 369년에 [[백제]]의 [[리즈]] 시절을 만든 [[근초고왕]]의 지시로 사백, 개로, 사사노궤 등과 함께 [[가야]] 연맹의 일부인 탁순국에 모였다가 [[금관국]]을 침공한 [[신라]]를 격파했다. 이 내용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한국]] 사서에는 등장하지 않고 일본서기에만 등장한다. >3월에 아라타와 카가를 장군으로 삼아 구저와 함께 탁순국으로 보내어 신라를 치려고 하다. 원군을 청하자 [[목라근자]], 사사노궤, 사백, 개로가 탁순국에 모여 신라를 격파하고 비자화, '''남가라'''[* 일본서기에는 [[금관국]]이 남가라로 표현되어 있다. 이건 뒤의 기록에도 마찬가지.], 탁국, 안라, 다라, 탁순, 가라의 7국을 평정했다. 서쪽으로 돌아서 고해진에 이르러 남만 심미다례를 무찔러 백제에게 주다. 백제 왕 초고와 왕자 귀수가 군대를 이끌고 의류촌으로 와서 아라타와 목라근자 등을 만나자 비리, 벽중, 포미, 지반, 고사의 읍이 항복하다. 백제 왕과 치쿠마가 벽지산과 고사산에 올라 번국의 맹세를 하고, 치쿠마를 도읍으로 데려가 후대한 뒤 구저와 함께 보내다. 신라에게 공격당하면 항상 백제가 도와주는 식이었다. 이때 목라근자가 가야의 소국들을 평정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외교]]적인 협상으로 협력국으로 만들었다는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왜]]의 침공 === 382년 [[카츠라기노 소츠히코]]가 파견되었다는 '가라'에 대해서는 금관국인지 [[반파국]]인지 이견이 있으나 이 기록의 '기본한기'를 '이시품왕'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만약 이것이 금관국의 기록이라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가 왜에 보내는 사신을 끊자, 일본은 소츠히코를 파견하였으나 미인계에 속아서 뜬금없이 [[금관국]]을 침공했다. 이 결과 가라의 왕과 그의 가족들이 모두 백제로 도망갔고, 백제의 장수 [[목라근자]]가 나서서 겨우 도성과 땅을 되찾았다." 이를 되찾아준 것은 일본서기에는 [[천황]]이라고 되어 있는데 백제 장수 목라근자가 활동한 것 때문에 백제로 보는 의견도 적지 않다. === [[고구려]]의 침공 === 하지만 외세의 침략은 끝나지 않았다. 신라 [[내물왕]] 시대인 400년 왜가 신라를 침공했는데 '왜가 신라성부터 (임나가라) 종발성까지 들어찼다'고 하여 통설에서는 가야, 그리고 신라와 대립하던 백제의 지원이 함께 했다고 본다.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 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_][* 이 부분은 7글자가 있었으나 모멸되었을 수도 있고, 원래부터 글자를 새기지 않았을 수도 있다.]▨▨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戌兵拔新羅城▨城倭寇大潰城▨[_][* 앞서와 같이, 16글자가 있었으나 모멸되었을 수도 있고, 16~17자에 해당하는 부분에 원래 글자가 없었을 수도 있다.]ㅁㅁ盡ㅁㅁㅁ安羅人戌兵新ㅁㅁㅁㅁ其ㅁㅁㅁㅁㅁㅁㅁ言 >10년 경자에 ([[광개토대왕|왕]]이) 보병과 기병 도합 5만 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남거성을 거쳐 신라성에 이르니, 그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막 도착하니 왜적이 퇴각하였다. (…)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니 성이 곧 귀복하였다.''' '安羅人戌兵' …[* 이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안라국]]의 방위군', '순라병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신라인의 병사를 안치하여 …' 등으로 나뉘고 있다. [[광개토대왕#s-3.4.1|관련 문서]] 참조.] ㅁ 신라성 ㅁ성 ㅁㅁㅁㅁㅁㅁㅁ 하였고, 왜구가 크게 무너졌다. >---- >– 《[[광개토대왕릉비]]》 제2면 신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광개토대왕은 [[보병]]과 [[기병]] 5만명을 편성해 남하해 왔다. 다만 여기에는 판독 불가능한 글씨가 많아 [[논란]]이 있다. 이전까지는 임나가라(금관국)가 적극적으로 왜에 협조했다가 패배해 버리면서 이들이 가야 연맹의 [[맹주]] 자리를 내놓은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고구려 군대가 몰려오자 임나가라 종발성이 즉시 '귀복(歸服)'하였다는 점과 5세기 초반에도 대성동 [[고분]]군의 위세가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 협조하여 크게 타격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금관국은 더 이상 신라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실 369년 기록부터 백제가 [[일본]] 교역의 창구로 금관국이 아닌 탁순국 / 다사진을 택하고 4세기부터 [[부산]](독로국으로 추정) 지역에서 가야색과 신라색이 줄다리기를 하는 등 4세기 후반 신라는 점차 [[김해]] 쪽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광개토대왕 때의 원정이 직접 타격을 주지는 않았더라도 교역권이 5세기 초반이 되면 신라 주도로 완전히 넘어가는 상황에 영향을 일정 부분 미쳤으리라고 생각된다. 어찌되었건 금관국 [[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시기였고 결과적으로 안 좋은 방향으로의 전환점을 경험했던 왕. == 기록 == === 《삼국유사》 가락국기 === >김씨이고 영화(永和) 2년에 즉위하였다. 치세는 62년으로 의희(義熙) 3년(407년) 정미 4월 10일에 죽었다. 왕비는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貞信)으로 왕자 좌지(坐知)를 낳았다. >金氏, 永和二年即位. 治六十二年, 義熈三年丁未四月十日崩. 王妃司農卿克忠女貞信, 生王子坐知. === 《삼국유사》 왕력 === >제5대 이품왕(伊品王) >아버지는 거질미왕이고 어머니는 아지(阿志)이다. 병오년(346년)에 즉위하여 60년 동안 다스렸다. >第五 伊品王 >父居叱旀 母 阿志 丙午立 理六十年 == 기타 == * [[곽재식]]의 [[소설]] [[역적전]]에서 잠깐 한 번 등장한다. 하는 일은 없고 임금으로 상을 내리는 [[병풍]]스러운 역할이다. [[분류:가야의 왕]][[분류:김해 김씨]][[분류:407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