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休 1224년(고종 11) ~ 1300년(충렬왕 26) [[고려]] 후기의 인물이다.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이며 가리 이씨(加利 李氏)의 시조이다. 1224년 경산부 가리현(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났다. 1252년([[고종(고려)|고종]] 39) 4월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홀어머니를 뵈러 [[삼척시|삼척현]]으로 갔다가 [[몽골 제국|몽골]]의 침략으로 길이 막히자 그 곳 [[두타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현재도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지라는 이름으로 유적지 존재하며 사적 제421호에 등재되어 있다.] 1264년([[원종(고려)|원종]] 5)에 이장용과 유경의 천거를 받아 경흥부서기에 보임되었다가 내직으로 옮겨 도병마녹사가 되었다. 이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1280년([[충렬왕]] 6) 감찰사의 관원들과 함께 국왕의 실정 및 국왕 측근 인물들의 전횡을 들어 10개조로 간언하다가 파직되었다. 이후 [[제왕운기]]를 저술하였다. 1298년 [[충선왕]]이 즉위해 개혁정치를 추진할 때 특별히 기용되어 사림시독학사 좌간의대부 사관수찬관 지제고에 임명되었다. [[분류:고려의 유학자]][[분류:성주군 출신 인물]][[분류:1224년 출생]][[분류:130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