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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승훈시인.jpg|width=100%]] || || '''{{{#white 이름}}}''' || 이승훈(李昇薰) || || '''{{{#white 국적}}}''' ||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svg|width=30]] || || '''{{{#white 출생일}}}''' || [[1942년]] [[11월 8일]] || || '''{{{#white 사망일}}}''' || [[2018년]] [[1월 16일]] (향년 75세) || || '''{{{#white 학력}}}'''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br]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석사[br][[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 || || '''{{{#white 경력}}}''' ||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 || '''{{{#white 종교}}}''' || [[불교]]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아방가르드]] [[시인(문학)|시인]]. [[아호]]는 이강(怡江). == 생애 == 1942년 [[강원도]] [[춘천시|춘천]]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의사 집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의(公醫)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잦은 이사를 했고 이로 인해 낯선 전학생의 신분에 자주 처해지게 되었으나, 가족 중 어느 하나 온정을 베풀지 않아 어린 시절을 ‘긴장’과 ‘불안’으로 보내야 했다. 성년이 되어서도 [[자폐증|개인적 일상 속에서 유독 강한 낯선 것들에 관한 두려움과 공포를 지녀왔는데]] 이는 유년기와 청소년기가 낯익고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어 버린 기억과,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들이 던져주는 알 수 없는 공포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남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불안감은 이후 [[춘천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당시 시인으로 활약하던 이희철 은사를 만나게 되면서부터 동창 [[전상국]]과 함께 습작시 등을 짓는 등 ‘소외의식’과 ‘서구의식’으로 전환되지만, 그의 평생에 걸친 자기 실존에 대한 불안의식과 내면성 탐구에의 집착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고교를 졸업하고 가업인 의사를 꿈꿨으나 [[의과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우연한 기회에 접한 한양대학교 특차 모집 공고를 통해 1961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섬유공학]]과에 진학했다. 참고로 이때 한양대와 성균관대는 [[SKY(대학교)]]급 대학에 떨어졌는데 재수가 여의치 않으면 진학하는 최상위 후기대였다. 1962년 〈현대문학〉에 시 「낮」외 2편이 당시 국문과 교수였던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왔다. 이를 계기로 1963년 등단하였고, 1964년 3학년 때 국문과로 전과했다. 여담으로 이때 박목월 시인의 한양대 국문과 또 다른 제자 중 한 명이 배우 [[윤여정]]이었다. 한양대 국문과 졸업 후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이상(작가)|이상]] [[이상(작가)/작품 목록|시 연구]]' 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70년부터 1980년까지 고향 춘천에 있는 [[춘천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 때 그의 손을 거쳐간 사람이 바로 [[최승호(시인)|최승호]]다. 1980년부터는 모교인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3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시 이외 다수의 문학이론서를 출간하였으며 현대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세계를 탐색하는 에세이 등을 문학 잡지에 발표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문재를 과시해왔다. 한국 시단이 서정적 전통을 주류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 세계를 끝없이 천착했고, 특히나 '[[르네 마그리트#s-2.1|이것은 시가 아니다]]', '위독' 등의 작품을 통해 언어 [[기호학]]을 벗어난 고정된 관념의 틀 속에서 자유로운 문학 표현을 강조했다. 2008년 정규 교수직에 퇴임한 후에는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암]] 투병을 하면서 심신안정을 위해 불가에 반 귀의하디시피 하고 있으며, '나'와 '언어' '대상'까지 버리고 시상(詩想)의 전복을 감행해 "[[연기#s-4|시의 본질은 없고 절대적 가치도 없다]]"는 그의 아방가르드 표현이 불교 정신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현대불교신문사와 <시와세계>사가 제정한 ‘이상시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자, 제18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만해문예대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수상 소감으로 > "아직도 사는 게 서글픈 떠돌이 시인이자 자폐증에 시달리는 정년 퇴임 교수이자 선객(禪客)일 뿐"이라며 "언제 미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시를 썼지만 이제 [[무아지경|시는 시를 모르고 나는 나를 모른다]]" 라는 말을 남겼다. 2015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계 교재인 [[국어 영역]] [[EBS N제]]와 2016년 [[수능완성]]에 그의 작품인 '이승훈 씨를 찾아간 이승훈 씨'가 나온 적이 있다. 시 자체가 [[인식론|철학적 요소]]를 담은 관념적 주지시이고, 작가의 경향 자체도 독특해 해석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이러하지만 작품의 짜임새들이 수준 높기 때문에, 그가 쓴 작품이 여러 시험에 출제될 가능성이 많다. 2018년 1월 1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장지는 춘천 공원 묘원이다.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문학 교수]][[분류:춘천시 출신 인물]][[분류:1942년 출생]][[분류:2018년 사망]][[분류:춘천고등학교 출신]][[분류:한양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