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토막글)] [include(틀:조선 정사공신(인조))] ---- [include(틀:종묘 배향공신)] 完豊府院君 李曙(완풍부원군 이서) [[1581년]] [[1월 7일]][* [[율리우스력]] [[1580년]] [[12월 28일]].](음력 [[1580년]], [[선조(조선)|선조]] 13년 11월 22일) ~ [[1637년]] [[1월 28일]](음력 [[인조]] 15년 1월 3일) (향년 56세)[* [[세는나이]] 58세.] 이서는 [[이경록]][* 충무공 [[이순신]]의 무과 급제 동기이자 [[녹둔도 전투]]에서 같이 동고동락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주목사를 지내며 [[임진왜란]]기 제주를 수호하는 공을 세웠다.]의 아들이며, [[조선]]시대 [[인조반정]]에 가담해 사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에 추증된 조선시대의 군인이다. [[인조반정]] 당시 [[광해군]]의 측근 중 하나였던 [[영의정]] [[박승종]]의 친척이었는데, 본래 박승종은 살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반정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인조가 허락하지 않자 무척 상심하였고, 본래 이서에게 약속을 했던 [[김류]]와 [[이귀]]가 끈질기게 인조를 설득하여 일단 후일에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양보를 받아냈으나, 그때 지방으로 도망친 박승종은 이미 장남과 같이 음독자살한 뒤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인조에게 박승종의 시신을 거두게 해달라고 청했고, 인조에게서 의리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으며 장례를 허락받는다. [[남한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재상 [[이귀]]의 지원을 받아 남한산성을 수축하고 전쟁 대비를 했다. [[병자호란]]때 왕을 호종하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지키다가 1637년 1월 적군이 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항복을 재촉하는 가운데 과로로 순직하였다. [[분류:전주 이씨 효령대군파]][[분류:1581년 출생]][[분류:1637년 사망]][[분류:조선의 무관]][[분류:과로사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