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이상 저온)] [include(틀:관련 문서, top1=이상 저온/사례)] [include(틀:하위 문서, top1=이상 저온/대한민국/20세기, top2=이상 저온/대한민국/21세기)] [목차] == 개요 == [[한반도]]에 찾아온 [[이상 저온]]을 시기별로 나열한 문서이다. * '''볼드체'''는 평년과의 차이가 큰 경우 * '''{{{#blue 파란색 볼드체}}}'''는 평균 기온 편차가 역대급으로 큰 경우 == 읽기 전에 == 아래의 사례는 [[봄]]~[[가을]]에 기온이 낮게 나타난 경우에 대해 다루며, [[겨울]]([[12월|12]]~[[2월]])의 [[이상 저온]]에 대한 내용은 간략하게만 서술하고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 [[한파/사례]] 문서들을 참조하면 된다. 또한 전국 평균 기온은 본격적인 전국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를 기준으로 통계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2021년]] [[3월]]까지는 대체적으로 [[1981년|1981]]~[[2010년]]까지 30년간의 평균 기온을 기반으로 서술된 내용이 많으니, [[1980년대]] 이전의 평균 기온은 [[1981년|1981]]~[[2010년]] 평균 기온에 비해 다소 낮으며 [[이상 저온]]의 강도가 더욱 강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는 것이 좋다. 본 문서에서는 [[19세기]]의 기후를 서술할 때 [[https://blog.naver.com/hahnsudang|한수당연구원 블로그]][* 본명 한상복, 1940~2023.]의 글을 자료로 많이 사용하는데, [[https://blog.naver.com/hahnsudang/222142037969|이 글]]을 보면 블로그 주인의 약력이 있으니 후술할 자료들은 신빙성이 높은 편이다.[* 다만 해당 블로그에 기재된 월평균 기온의 경우 산출 방식이 현대와 달라서 현대의 방식으로 계산된 월평균 기온보다 0.5~1℃ 정도 높게 적혀있는데,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당시에는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9시로 일 3회 측정에 대한 평균치가 바로 일평균 기온을 산출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는 오전 3시, 오전 6시, 오전 9시, 오후 12시, 오후 3시, 오후 6시, 오후 9시, 오전 0시로 일 8회에 걸쳐 측정된 시간대별 기온을 합산하여 일평균 기온을 산출해낸다. 하루 중 기온이 대체적으로 가장 낮은 시간은 늦은 밤~새벽 사이인 오전 0~9시 사이인데, [[19세기]] 일평균 기온 산출 과정에서는 오전 0~9시 사이(0시, 3시, 6시)를 모두 빼먹었으니 당연히 현대와 같은 산출 방식보다는 수학적으로 높게 산출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월평균 기온도 실제보다 다소 높게 계산될 수밖에 없는 방식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 목록 == === [[15세기]] 이전 === * [[190년]](고국천왕 12년) - 음력 '''[[9월]]'''에 수도 [[국내성]]에 눈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원문에는 서울로 번역되었는데, 고구려의 서울이므로 당시 수도였던 [[국내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곳의 현 위치는 [[중국]] [[지린성]] [[지안시]] 일대. [[북한]] [[만포시]]와 바로 마주볼만큼 북한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 [[808년]](애장왕 10년) - 음력 [[8월 15일]] '''(양력 [[9월 13일]])'''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삼국유사]][* 이하 신라 왕들의 기록 모두 삼국유사에 기록된 것이다.]) * [[818년]](헌덕왕 원년) - 음력 [[3월 14일]] '''(양력 [[4월 26일]])'''에 '''눈이 내렸다'''고 한다. * [[839년]](문성왕 원년) - 음력 [[5월 19일]] '''(양력 [[7월 9일]])'''에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 [[915년]](신덕왕 4년) - [[3월]]에 서리가 2번이나 내렸다고 한다. * [[1394년]](태조 2년) * [[4월]] - 음력 [[3월 3일]], 큰 바람이 불고 '''[[눈(날씨)|눈]]이 내려서''' 상고대[* [[서리(날씨)|서리]]가 나무나 풀 등의 물체에 들러붙어서 얼어붙은 것]가 생겼다고 한다. * [[9월]] - 음력 [[9월 2일]], '''얼음이 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양력으로는 '''[[9월 27일]]'''에 해당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현대라도 기상학적 [[가을]]이 시작되고 북쪽에서 찬 바람이 내려와 더운 기운이 식어서 쌀쌀해진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나, 여전히 나뭇잎이 많고 물이 어는 현상은 당연히 어림도 없는 시기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얼음이 얼었다는 기록이 튀어나왔으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길래 [[10월]]을 넘어가기도 전에 얼음이 보였다는 것일까? 참고로 기상 관측 사상 [[9월]] 하순에 가장 낮은 최저 기온을 기록한 [[1928년]] [[9월 26일]]의 경우, [[서울특별시|서울]] 최저 기온이 '''3.2℃'''로 당시조차도 얼음이 얼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연실색할 상황이다.] 보통 음력 [[11월|11]]~[[12월]](양력 [[12월|12]]~[[1월]])에나 보일 법한 현상이 [[9월]]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 [[1398년]](태조 6년) -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상 저온]]이 오랫동안 이어진 정황이 담겨 있다. [[이상 고온/사례]] 문서에 적혀 있듯, [[1397년|전년도]] [[12월]]과 이해 [[1월]]에는 '''얼음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따뜻한 것으로 보였지만, '''[[3월]] 상순'''부터 상황이 반전된 듯한 기록들이 몇 개 있다. 그 외에도 [[가뭄]]이 아주 심했는지, [[3월|3]]~[[6월]] 기록 내내 [[가뭄]]이 있다는 언급이 끊임없이 나온다. * [[3월]] - 음력 [[2월 14일]](양력 [[3월 2일]])에는 나무에 성에[* 실내의 공기 중 수증기가 승화하여 유리창에 얼어붙어 만들어지는 [[서리(날씨)|서리]]]가 끼었다고 하더니, 이런 현상은 다음 날이 되자 더욱 심해져서 얼음까지 끼었다고 한다. 음력 [[3월 5일]], [[3월 9일]], [[3월 13일]](각각 양력 [[3월 23일]], [[3월 27일]], [[4월 1일]])에 '''얼음이 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 [[5월]] - 음력 [[4월 24일]]'''(양력 [[5월 10일]]),''' [[계룡산]][* 현재의 [[대전광역시|대전]]과 [[충청남도]] [[공주시|공주]], [[논산시|논산]]에 걸쳐 있는 산이다.]에 [[눈(날씨)|눈]]이 내렸다고 한다. * [[6월]] - 음력 [[5월 16일]]'''(양력 [[6월 1일]]),''' [[서울특별시|서울]] 주산의 [[소나무]]가 말라 죽었고, 심지어 '''[[서리(날씨)|서리]]'''까지 내렸다고 언급된다. * [[1404년]](태종 4년) * [[6월]] - 음력 [[5월 16일|5월 16]]~[[5월 17일|17일]](양력 [[6월 23일|6월 23]]~[[6월 24일|24일]]) 이틀 동안 날씨가 [[가을]] 날씨와 같았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이 당시가 정말 [[여름]]인데도 [[가을]]과 같은 날씨를 보였다는 것인지 단순히 비유적 표현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여름|한여름]]에 날씨가 평년보다 상당히 시원했다는 막연한 추측만 가능할 뿐.] * [[1405년]](태종 5년) * [[3월]] - 음력 [[2월 14일]](양력 [[3월 14일]])에 날씨가 [[겨울]]과 같이 추웠다는 기록이 있다. * [[7월]] - 음력 [[7월 4일]](양력 [[7월 29일]])에 강한 저온이 나타나 [[2020년]] [[7월]] 이맘때처럼 서늘한 [[가을]] 날씨가 나타났다고 한다. * [[1406년]](태종 6년) - 양력 [[4월]] 하순~[[5월]] 상순에 꽤 넓은 지역에 [[서리(날씨)|서리]]가 내렸다는 기록들이 존재하고, 심지어 현재의 [[강원도(북한)|북한 강원도]] 지역에는 [[눈(날씨)|눈]]까지 왔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날짜는 양력 기준이다. * [[4월 22일]] - [[서울특별시|한성]][* 現 [[서울특별시|서울]]] * [[4월 26일]] - [[금산군|금주(錦州)]][* 現 [[충청남도]] [[금산군|금산]]] * [[4월 28일]] - [[영흥군|영흥부(永興府)]][* 現 [[함경남도]] [[영흥군|영흥]]] * [[4월 29일]] - [[군위군|군위현(軍威縣)]][* 現 [[대구광역시]] [[군위군|군위]]] * [[5월 1일]] - [[지리산]], [[옥천군|옥주(沃州)]][* 現 [[충청북도]] [[옥천군|옥천]]], [[이천군|이천(伊川)]][* 現 [[강원도(북한)|북한 강원도]] [[이천군|이천]]], [[안변군|안변(安邊)]][* 現 [[강원도(북한)|북한 강원도]] [[안변군|안변]]], [[법동군|영풍(永豊)]][* 現 [[강원도(북한)|북한 강원도]] [[법동군|법동]]], [[고성군(강원도)|간성(杆城)]][* 現 [[강원도]] [[고성군(강원도)|고성]]. 현재 [[간성군|간성]]이 있던 지역은 [[고성군(강원도)|남한 고성]]과 [[고성군(북한)|북한 고성]]으로 나뉘어져 있다.], [[현내면|열산(烈山)]][* 現 [[강원도]] [[고성군(강원도)|고성]] [[현내면]]] 지역에 [[눈(날씨)|눈]]이 내렸으며, 많이 내린 곳은 2자 5치'''(약 75.8cm)'''까지 내렸다고 한다. * [[5월 2일]] - [[지리산]], [[영주시|영주(永州)]][* 現 [[경상북도]] [[영주시|영주]]] * [[5월 3일]] - [[옥천군|옥주]] * [[5월 4일]] - [[금산군|금주]][* 아예 '''닷새 동안''' [[서리(날씨)|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 [[5월 8일]] - [[이천군|이천]], [[법동군|영풍]] * [[1415년]](태종 15년) * [[6월]] - 음력 [[5월 17일]](양력 [[6월 23일]])자 기록에 의하면, 날씨가 [[가을]]과 같이 서늘한 바람이 그치지 않는 고로 유사(攸司)에 명하여 여러 [[도(행정구역)|도(道)]]에 부처(付處)[* 죄수를 어느 한 곳에 계속 두게 하는 형벌이라고 한다.]한 죄인을 석방시켜 주었다고 한다. * [[1417년]](태종 17년) - 이해는 유독 쌀쌀하거나 [[서리(날씨)|서리]]가 내렸다는 언급이 많다. 첫 기록부터가 '나무에 꽃조차 피지 않았다'라는 언급이 있어서 첫 기록 이전에도 기상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태종(조선)|당시 임금]]이 '''[[5월]]에 [[서리(날씨)|서리]]가 내리기는 처음'''이라는 언급까지 했을 정도로 [[이상 저온]]의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 [[4월|4]]~[[5월]] - 음력 [[3월 30일]](양력 [[4월 16일]]), 이해 [[봄]]에 [[복사나무|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오얏나무]]에 '''꽃이 피지 않았다'''는 기록을 시작으로, [[4월 9일]](양력 [[4월 25일]])에는 [[서리(날씨)|서리]]가 '''나흘 동안 내렸다'''고 하며, [[4월 28일]](양력 [[5월 14일]])에는 아침 저녁으로 [[가을]]처럼 서늘했다는 기록도 있다. [[5월 8일]](양력 [[5월 23일]])에는 ''''[[4월]]에 [[서리(날씨)|서리]]가 내리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나, [[5월]]에 내리기는 올해가 처음\''''이라는 기록까지 등장한다. 그리고 이 기록 이후로 [[서리(날씨)|서리]]가 계속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 그리고 이해 [[11월]]에는 다른 의미로 해괴한 기록이 있으니, 음력 [[9월 30일]](양력 [[11월 8일]])에 [[살구나무]]에 꽃이 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 [[1419년]](세종 1년) - 이해에는 직접적으로 추웠다고 명시된 기록이 단 하나만 존재한다. * [[5월]] - 음력 [[4월 15일]](양력 [[5월 9일]]), [[세종(조선)|당시 임금]]이 신하들에게 "요즘 기후가 고르지 못해서 '''때아닌 [[서리(날씨)|서리]]가 내리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라고 묻자, [[허조]]가 '''"지금 추위가 [[2월]]보다 더 심하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 [[1436년]] * [[5월]] - 음력 [[5월 1일]](양력 [[5월 16일]])과 [[5월 2일]](양력 [[5월 17일]])에 [[서울특별시|한성]]에 [[서리(날씨)|서리]]가 내렸다고 하며, 더욱이 [[전라도]] [[순창군|순창]] 등 20[[군(행정구역)|군(郡)]]에 [[4월 27일]](양력 [[5월 13일]])부터 [[5월 2일]](양력 [[5월 17일]])까지 [[서리(날씨)|서리]]가 내려 목화나무, 모시나무, [[뽕나무]] 잎이 모두 시들어버렸다고 한다. === [[16세기]] === * [[1505년]](연산군 11년) * [[4월]] - 임금 [[연산군]]이 "[[청명#s-1.1]]은 [[3월]] 절후(節後)이거늘, 날씨가 어찌하여 아직도 추운가?"라고 말하더니, 강혼(姜渾)이라는 신하에게 이것을 주제로 시를 지어 바치게 했다고 한다.[* [[1505년]] [[2월 22일]](양력 [[4월 6일]])자 기록] === [[17세기]] === [[17세기]]는 [[소빙하기]]가 절정에 달해 연도가 네 자릿수로 바뀐 이후로 평균 기온과 최저 기온이 가장 낮았던 시기로 추정되며[* [[서울특별시/기후]] 문서에 작성된 [[서울특별시|서울]]의 일별 역대 최저 기온 극값을 확인해보면 상반기는 [[4월 20일]]까지 영하로 뒤덮여 있는데, 만약 [[17세기]]로 범위를 넓힌다면 이 영하의 기온이 [[4월 20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4월]] 전체를 뒤덮는 것은 물론 '''[[5월]]까지 영하로 뒤덮일 것'''으로 의심되며, [[강원도]]나 [[충청도]], [[경상도]] 내륙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blue '''7~8월에도 영하로 추정되는 기온이 기록되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두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매우 추웠던 시기.] 이에 관련된 기록들이 아주 많다. 아래 나열된 기록들은 모두 [[조선왕조실록]]이 출처이다. * [[1650년]](효종 1년) * [[2월]] - 음력 [[1월 1일]](양력 [[2월 1일]])에 날씨가 매우 추워져 경범 죄수들을 석방하도록 명했다고 한다. * [[5월]] - 음력 [[4월 4일]](양력 [[5월 4일]]), [[양주시|적성현]][* 現 [[경기도]] [[양주시|양주]]]에 [[눈(날씨)|눈]]이 내렸다. * [[1654년]](효종 5년) * [[3월]] - 음력 [[1월 27일]](양력 [[3월 15일]]), [[강원도]] [[통천군|흡곡]][* 現 [[강원도(북한)|북한 강원도]] [[통천군|통천]]] 등 고을에 [[눈(날씨)|눈]]이 내렸는데 그 색깔이 약간 붉었다고 한다. * [[1655년]](효종 6년) - 이해는 [[소빙하기]]를 통틀어 '''역사상 최대의 강력한 [[한파]]'''가 찾아온 시기로, [[조선]]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현대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이상 저온]]이 기승을 부렸다. 아래의 기록들을 참조하면 [[1655년]] 한 해 동안에는 [[소빙하기]]가 아니라 정말로 '''[[빙하기]]에 준하는 비정상적인 추위'''가 이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며, 이 외에도 전 지구적으로 매우 초기록적인 [[이상 저온]]이 계속되어 사실상 [[1년|서기 1년]] 이후 지난 2,000여 년의 모든 해를 통틀어 가장 추운 해일 가능성도 존재한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한파/사례]] 문서 참조. * '''[[4월]]''' - 음력 [[3월 3일]]'''(양력 [[4월 9일]]),''' [[강원도]] [[강릉시|강릉]], [[양양군|양양]], [[삼척시|삼척]] 앞바다가 '''사흘 동안이나 얼어붙은''' 사건이 [[조선]] 조정에 [[http://sillok.history.go.kr/id/kqa_10603003_001|보고되었다.]][* 이 기록이 믿기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적자면, 당시에는 '기군망상죄'라는 죄목이 있어서 어떤 일을 거짓으로 보고해서 왕을 속인 것이 들통나면 국왕의 진노를 사서 '''[[참수|몸과 목이 분리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따라서 제정신인 신하라면 거짓 보고를 올리기란 꿈도 못 꿀 상황. 게다가 이 결빙 사건이 사실인지 해당 지역에 사람을 보내 확인했다고 하고, 이후로 거짓이었다는 말도 없는 것을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동해]]는 최대 수심이 3,600m에 달할 정도로 깊어서, [[겨울]]에 [[한파]]가 찾아와도 [[황해|서해]]보다 수온이 높다. 따라서 [[강릉시|강릉]]처럼 [[동해|동해안]]에 접한 지역이 '''-25℃ 이하'''로 내려갈 정도의 초강력 [[한파]]가 몰아지치 않는 이상, [[동해]]는 결빙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해에는 [[1월]]도 아닌 '''[[4월]]에 [[동해]]가 결빙되었다'''고 하니, [[4월]]에 [[강릉시|강릉]]의 최저 기온이 과연 몇 ℃까지 내려갔을까? 게다가 [[4월]]이 이 정도였다면, [[1월]]에는 최저 기온이 얼마나 내려갔을지 가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4월]]에 [[동해]] 앞바다가 사흘이나 얼어붙었다는 기록을 참조하면, 이해 [[1월]]에는 [[강릉시|강릉]] '''-30℃ 이하,''' [[서울특별시|서울]] '''-35℃ 이하'''의 비현실적인 [[한파]]가 찾아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음력 [[3월 5일]](양력 [[4월 11일]])에는 [[서울특별시|서울]]에서 [[눈(날씨)|눈]]이 쌓였다고 한다.[* 사실 [[4월]]에 [[눈(날씨)|눈]]이 내린 경우는 현대에도 간혹 있는 일이지만, [[4월]] 중순에 [[서울특별시|서울]]에서 [[눈(날씨)|눈]]이 쌓인 사례로는 거의 없는 기록이며 후술할 [[1911년]]의 사례가 있다. 당시 [[17세기]]임을 감안하면 그리 놀랍지는 않으나, 앞의 각주에 설명한대로 [[4월]]에 [[동해]]가 얼어붙을 정도의 [[한파]]였고 [[서울특별시|서울]]에서는 적설까지 기록되었다.] * '''{{{#blue 6월}}}''' - 음력 [[5월 3일]]'''(양력 [[6월 6일]])'''에 [[제주시|제주(濟州)]]에서 큰 [[눈(날씨)|눈]]이 내려 국마(國馬) 900여 필이 얼어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충청도]]에서 '''[[서리(날씨)|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음력 5월 25일에는 신하들이 '''"여름에 눈과 서리가 내리고 더위와 추위가 바뀌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https://sillok.history.go.kr/id/kqa_10605025_003|상소문]]을 올렸다.[* 양력 [[6월 28일]]자 기록.] * '''[[8월]]''' - 음력 [[7월 22일]]'''(양력 [[8월 23일]]),''' '''[[경상도]]'''에 [[눈(날씨)|눈]]과 [[우박]]이 [[http://sillok.history.go.kr/id/kqa_10607022_001|내렸다.]] * [[1656년]](효종 7년) * [[4월|4]]~[[5월]] - 음력 [[4월 1일]](양력 [[4월 24일]])에 [[전라남도|전남도(全南道)]]에서 [[눈(날씨)|눈]]이 내렸으며, [[4월 12일]]'''(양력 [[5월 5일]])'''에는 [[전라남도|전남도]] [[광주광역시|광주]][* 現 [[광주광역시]]]에서 큰 [[눈(날씨)|눈]]이 내렸다고 한다.[* 현대에는 [[2010년]] '''[[4월 14일]]'''에 [[광주광역시|광주]]에서 [[눈(날씨)|눈]]이 내려 당일 치뤄질 예정이었던 야구 경기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17세기]]에는 이러한 늦장 [[이상 저온]]이 한 달 뒤에도 나타날 정도였던걸로 보인다. 이때 당시 광주의 최'''고'''기온이 9.6℃에 불과했고 서울도 6.4℃에 불과했기에, 단순하게 대입한다면 '''5월 5일'''에 '''광주 최고기온이 9.6℃, 서울이 6.4℃에 불과'''한 셈이 된다. 이미 이 정도만 해도 1917년 5월 초순의 저온보다 더 심각한 셈.] [[11월|11]]~[[3월]]에는 추위에 대한 별다른 기록이 없지만, 양력 [[4월|4]]~[[5월]]에는 [[한반도]] 남부에서 [[눈(날씨)|눈]]이 내릴 정도로 강력한 [[이상 저온]]이 발생한 모양이다. * [[1659년]](효종 10년) * '''[[3월|3]]~[[5월]]''' - 전국 각지에서 강설을 비롯한 [[이상 저온]]이 관측되었다. [[경기도]] [[광주시|광주]]에서 [[눈(날씨)|눈]]이 내리거나 [[함경도]]에서 많은 [[눈(날씨)|눈]]이 내렸으며[* 두 기록 모두 [[1659년]] [[3월 5일]](양력 [[3월 27일]])자 기록이다.], [[서울|한성]]에서도 눈이 관측되었다.[* [[1659년]] [[3월 8일]](양력 [[3월 30일]])자 기록] [[4월]]에 들어 [[서울특별시|한성]]에서 태백이 유독 자주 나타났고 '''다시 한 번 [[눈(날씨)|눈]]이 내린 것도 모자라[* [[1659년]] [[3월 25일]]'''(양력 [[4월 16일]])'''자 기록],''' 다음 날에는 '''많은 [[눈(날씨)|눈]]이 내렸다'''는 기록까지 등장한다.[* [[1659년]] [[3월 26일]]'''(양력 [[4월 17일]])'''자 기록] 이후 [[경기도]] [[광주시|광주]]에서 또 한 번 [[눈(날씨)|눈]]이 내렸고[* [[1659년]] [[3월 29일]]'''(양력 [[4월 20일]])'''자 기록], [[충청도|충홍도]], [[전라남도|전남도]], [[강원도]]에서도 [[눈(날씨)|눈]]이 관측되기도 했으며[* [[1659년]] [[윤달|윤]][[3월 2일]]'''(양력 [[4월 22일]])'''자 기록], [[서울특별시|한성]]에서 [[우박]]도 관측되었다.[* [[1659년]] [[윤달|윤]][[3월 4일]]'''(양력 [[4월 24일]])'''자 기록] 게다가 [[윤달|윤]][[3월 10일]]'''(양력 [[4월 30일]])'''에는 두 눈을 의심할 만한 기록이 등장한다. [[강원도]] [[삼척시|삼척]]에 '''바닷물이 얼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양력 날짜상 [[5월]]을 단 하루 앞둔 시기다. 위의 [[1655년]]마저도 [[4월]] 상순에 [[동해]]가 얼어붙었는데, 이해는 [[5월]]을 하루 앞두고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시대를 고려해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추위이다.''' [[윤달|윤]][[3월]] 말에는 [[평안도]] [[강계시|강계]] 등지에서 [[눈(날씨)|눈]]과 [[우박]]이 내리기도 했다.[* [[1659년]] [[윤달|윤]][[3월 29일]]'''(양력 [[5월 19일]])'''자 기록] 한편 [[서울특별시|한성]]에서 '''또다시''' [[눈(날씨)|눈]]이 관측되었는데, 그 색깔이 송화가루처럼 노랬다고 한다.[* [[1659년]] [[4월 2일]]'''(양력 [[5월 22일]])'''자 기록] 이러한 일련의 이상 기후 현상으로 인해 많은 지역에서 흉년으로 고통받았고, 조정 신하들이 병이나 자책성 사퇴를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조정 내부도 어수선해졌으며, 결정적으로 이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얼마 뒤에는 국왕 [[효종(조선)|효종]]이 승하하고 [[현종(조선)|현종]]이 즉위했기에 이 사이에 기후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아, 이 이상 기후가 얼마나 오래 갔는지는 불명이다. * [[1662년]](현종 3년) * [[6월]] - [[강원도]] [[삼척시|삼척]]에서 음력 [[5월 6일|5월 6]]~[[5월 7일|7일]](양력 [[6월 21일|6월 21]]~[[6월 22일|22일]])에 잇따라 밤에 [[서리(날씨)|서리]]가 내려 콩과 삼 등이 모두 손상을 입었으며 [[강릉시|강릉]]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 [[1665년]](현종 6년) * [[6월]] - 음력 [[5월 2일]](양력 [[6월 14일]])에 [[강릉시|강릉]]에 [[우박]]이 내리고 또 [[서리(날씨)|서리]]가 왔다. * [[1667년]](현종 8년) * [[6월]] - 음력 [[4월 10일]](양력 [[6월 1일]]), [[문천시|문천]]과 [[고원군|고원]] 땅에 [[우박]]이 내렸고, [[함흥시|함흥]] 땅에 [[우박]]과 [[눈(날씨)|눈]]이 내렸는데 거의 반 자에 이르렀다고 한다. * [[1670년]](현종 11년) * [[12월]] - 음력 [[11월 2일]]'''(양력 [[12월 13일]]),'''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 거센 바람과 큰 [[눈(날씨)|눈]]이 동시에 사납게 불어닥친 끝에 쌓인 [[눈(날씨)|눈]]이 '''한 길(약 2.4m)'''이었다고 하며, 기근에 지쳐 열매를 주우러 산에 올라간 91명이 이 쌓인 [[눈(날씨)|눈]]에 갇혀 '''그대로 얼어죽어버린''' 기록이 등장한다. * [[1671년]](현종 12년) - '''[[경신대기근]]이 발생한 해이다.''' 이해에는 [[조선]]에서 위의 [[1654년|1654]]~[[1655년]]에 버금가는 [[이상 저온]]과 [[한파]]가 찾아온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해 추위에 관한 기록들 중 아래의 대목이 눈에 띈다. >기근의 참혹이 올해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습니다. 굶주림과 추위가 몸에 절박하므로 서로 모여 도둑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집에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는 자는 곧 겁탈의 우환을 당하고 몸에 베옷 한 벌이라도 걸친 자도 또한 강도의 화를 당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무덤을 파서 관을 뻐개고 고장(藁葬)을 파내어 염의를 훔치기도 합니다.''' * 너무나도 살인적인 [[한파]]에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무덤을 파서 시체에 입혀진 옷을 훔쳐 입었다'''는 이야기인데, 이해에 [[조선]]을 덮친 [[한파]]의 기록들은 다음과 같다. * [[5월]] - 음력 [[3월 28일]](양력 [[5월 6일]]), [[평안도]] [[초산군|이산]][* 現 [[평안북도]] [[초산군|초산]]] 등 네 고을과 [[황해도]] [[수안군|수안]], [[경상도]] [[창원시|창원]], [[강원도|원양도]] [[원주시|원주]], [[충청도]] [[단양군|영춘]][* 現 [[충청북도]] [[단양군|단양]] [[단양군/행정#s-3.5|영춘면]] 일대이다.], [[전라도]] [[남원시|운봉]][* 現 [[전라북도]] [[남원시|남원]] [[남원시/행정#s-2.1|운봉읍]] 일대이다.] 등 고을에 [[눈(날씨)|눈]]이 내렸는데 서너 치 또는 한두 치씩 땅에 쌓여 녹지 않았으며, 여섯 [[도(행정구역)|도]]의 감사가 잇따라 아뢰었다고 한다. * [[7월]] - 음력 [[5월 29일]](양력 [[7월 5일]])에 [[함경도]] [[경성군|경성]] 장백산(長白山)에 [[눈(날씨)|눈]]이 한 자쯤 내리고 날씨가 매우 추워서 농사를 크게 손상시켰으며 남도(南道) 각 고을의 밀, 보리가 황모가 드는 재해를 입어 거의 다 말라 죽었다고 한다.[* [[함경도]] [[경성군|경성]](現 [[함경북도]] [[경성군|경성]])은 [[개마고원]] 등 [[북한]]의 추위로 유명한 지역들에 비하면 많이 온화한 기후를 가지는 지역이다.] * [[1672년]](현종 13년) * [[6월]] - 음력 [[5월 7일]](양력 [[6월 2일]]), [[평안도]] [[덕천시|덕천]]에 [[눈(날씨)|눈]]이 내렸으며 [[운산군|운산]] 등의 고을에는 주먹만 한 [[우박]]이 내려 땅에 거의 한 자 가량 쌓였는데, 하루가 지나도 녹지 않았다고 한다. * [[1675년]](숙종 1년) * [[5월]] - 음력 [[4월 28일]](양력 [[5월 22일]])에 [[경상도]]가 가물었고 [[풍기군|풍기]][*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영주]] 서북 지역에 있었던 [[군(행정구역)|군]]으로, 현재의 [[영주시|영주]] [[풍기읍]], [[봉현면]], [[안정면]]과 [[예천군|예천]] [[예천군/행정#s-13|은풍면]], [[예천군/행정#s-12|효자면]]이 속한 지역이다.]와 [[밀양시|밀양]] 등의 여러 고을에는 [[눈(날씨)|눈]]이 내리고 또 된서리가 와서 괸 물에 얼음이 얼었고 [[뽕나무]]의 잎이 다 죽었으며 보리와 조가 소금에 절인 것처럼 되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 [[1677년]](숙종 3년) * [[6월]] - 음력 [[5월 25일]](양력 [[6월 24일]]), [[충청도]] [[제천시|제천]]에 [[서리(날씨)|서리]]와 [[우박]]이 내렸다. * [[1686년]](숙종 12년) * [[9월]] - 음력 [[8월 25일]](양력 [[10월 12일]])에 [[조선왕조실록]]에 작성된 기록에 의하면, [[진주시|진주]] 등의 고을에 이달 초 7일'''(양력 [[9월 24일]])'''에 [[눈(날씨)|눈]]이 내려 제비와 참새가 얼어 죽었고[* 이 지역이 상당한 일교차를 자랑하는 지역이기에 9월 하순에 눈이 내리고 새들이 얼어죽었다면 영하가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1969년 기상 관측 시작 이래로 9월 하순에서 가장 낮은 기온은 6.2℃.], [[영덕군|영해(寧海)]][* 現 [[경상북도]] [[영덕군|영덕]]] 등 다섯 고을에는 (같은 날에) 바다가 넘쳐서 바닷가의 어민들의 집이 여러 채 떠내려갔으며, [[서리(날씨)|서리]]와 [[눈(날씨)|눈]], 바람과 [[비(날씨)|비]]의 재앙으로 각종 곡식들이 모조리 손상을 입어 온 [[도(행정구역)|도]]의 백성들이 떼지어 울부짖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 [[10월]] - 음력 [[9월 9일]](양력 [[10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기르는 2,890마리의 소와 말이 얼어죽었다고 한다. [[겨울|한겨울]]에도 따뜻한 기후를 자랑하는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에서 [[10월]]임에도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보면, 웬만한 [[겨울|한겨울]] 이상 급의 강도로 시기에 걸맞지 않은 비정상적인 [[한파]]가 온 것으로 보인다. * [[1687년]](숙종 13년) * [[6월]] - 음력 [[4월 22일]](양력 [[6월 1일]]), [[전라도]] [[무주군|무주]]에 [[눈(날씨)|눈]]이 내렸다. * [[1695년]](숙종 21년) * [[8월|8]]~[[10월]] - 음력 [[7월 7일]]'''(양력 [[8월 16일]])'''에 '''[[경상남도]] [[진주시|진주]]에서 3촌 가량의 [[눈(날씨)|눈]]이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는 35℃가 넘어가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인 [[8월]]에 따뜻한 남부 지방인 [[진주시|진주]]에서 [[폭설]]이 내렸다는 이야기인데, 매우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음력 [[7월 21일]]'''(양력 [[8월 30일]]),''' [[평안도]] [[강계시|강계]] 지방에 [[눈(날씨)|눈]]과 [[서리(날씨)|서리]]가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고[* 현대 [[강계시|강계]]의 [[8월]] 평균 기온은 [[서울특별시|서울]]의 [[9월]] 날씨와 거의 일치한다. [[서울특별시|서울]]에서 [[9월]] 하순에 [[눈(날씨)|눈]]이 날리고 [[서리(날씨)|서리]]가 발생한 것과도 비슷한 사례이다.][* 물론 [[진주시|진주]]는 내륙이라 현대에도 일교차가 무지막지하게 커서 최저 기온은 꽤 낮은 경우가 많다. [[2021년]]에는 '''[[10월 18일]]'''에 영하를 기록했을 정도다. 그러니 하루 중 가장 기온이 낮을 시간인 밤과 새벽에 눈에 내렸다고 하면 그나마 아귀가 들어맞을 것으로 보인지만, 그렇다 쳐도 [[강원도]] 산간도 아니고 [[8월]]에 따뜻한 [[경상남도]] 지역에서 적설이 쌓일 정도의 눈이 내렸다.] 게다가 양력으로 [[10월]] 중순부터 전국적으로 [[서리(날씨)|서리]]가 계속 발생했다고 하니 이해 [[이상 저온]]이 매우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심한 [[이상 저온]]의 여파로, 이해에는 [[을병대기근]]이 발생하였다. === [[18세기]] === * [[1708년]](숙종 34년) * '''[[4월]]''' - 이 당시 [[경상도]] [[함양군|함양]]에 [[비(날씨)|비]]와 [[눈(날씨)|눈]]이 내리고, [[전라도]] [[무주군|무주]]에서 [[우박]]이 내렸으며, [[강원도]] [[원주시|원주]]에도 [[서리(날씨)|서리]]와 [[눈(날씨)|눈]]이 내렸고, [[서울특별시|한성]] 역시 추위가 엄동(嚴冬)과 같았다는 기록이 있다.[* [[1708년]] [[3월 22일]]'''(양력 [[4월 12일]])'''자 기록] 나열된 지역들은 모두 내륙에 있기에 내륙 위주의 저온으로 보임. 물론 갑자기 이날 하루만 추웠을 리는 없으니, 며칠 동안 이어진 [[이상 저온]] 중 유독 이날이 심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 [[1709년]](숙종 35년) * '''[[4월]]''' - [[1708년|전년도]]에 이어 양력 [[4월]]에 [[이상 저온]]이 묘사되었으며, 이번에는 아예 '''날마다''' 큰 [[눈(날씨)|눈]]이 내리고 추위가 살을 에는 느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709년]] [[2월 26일]]'''(양력 [[4월 5일]])'''자 기록] 현대보다 평균 기온이 낮았다는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4월]]에 며칠 연속 [[눈(날씨)|눈]]이 내리거나[* 물론 [[4월]]에 적설이 기록될 정도로 [[눈(날씨)|눈]]이 내렸다는 기록은 있으나, 며칠 연속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 추위가 살을 에는 듯하다는 묘사도 전무했다시피 한 것을 감안할 때, 당시 [[소빙하기]]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기록 중 하나. 일단 지금까지 알려진 [[서울특별시|서울]]의 [[4월]] 역대 최저 기온[* [[1972년]] [[4월 1일]] '''-4.3℃''']보다 낮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덧붙여 이해 [[겨울]] 역시 [[소빙하기]]에서 매우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왔는데 자세한 내용은 [[한파/사례]] 문서 참조. * [[1743년]](영조 19년) * '''[[4월]]''' - 이달에 큰 추위가 들어 '''[[눈(날씨)|눈]]이 쏟아지고 며칠이 되도록 녹지 않아 [[보리|보리(牟麥)]]가 많이 얼어죽었다'''고 한다.[* [[1743년]] [[3월 29일]]'''(양력 [[4월 23일]])'''자 기록] * [[1780년]](정조 4년) * [[11월]] - 이때 '''날씨가 매우 추워서[* 기록에도 이렇게 적혀 있다.]''' 의금부와 형조에 명해 죄가 가벼운 죄수들에 한해 석방시켰다고 하며, 나머지 죄수들에게도 추위에 얼어죽을 것을 대비해 옷과 거적을 만들라는 명도 내렸다고 한다.[* [[1780년]] [[10월 27일]](양력 [[11월 23일]])자 기록][* 그 뒤에도 해를 넘긴 [[1781년]] [[겨울]]은 [[2월]] 하순에도 [[겨울|한겨울]] 추위처럼 추웠다고 언급될 정도였다. 공교롭게 100년 뒤인 [[1880년]]에도 [[11월]]부터 추위가 시작되고 [[1881년]] [[3월]]까지 추위가 풀리지 않았다고 하며, 200년 뒤인 [[1980년]]에는 [[11월]]에는 [[이상 고온]]이었지만 [[12월]]에 추위가 시작되었고 역시 [[1981년]] [[2월]] 하순~[[3월]] 상순까지 추웠다.] * [[1784년]](정조 8년) * [[3월]] - [[1783년]] [[12월]] 하순부터 갑자기 추워졌고[* [[1783년]] [[12월 7일]](양력 [[12월 30일]])자 기록. 국왕 정조가 직접 '''"[[작금]]의 날씨가 갑자기 독하게 추워졌다\"'''라고 언급한다. 작금이라는 표현을 보아 하루~이틀 전부터 날씨가 크게 뒤바뀐 듯.] 해를 넘긴 [[2월]]에도 추위가 혹심했다는 언급이 여럿 보일 정도이며, 현재의 '''[[3월]] 중순'''에도 '''"추위가 [[겨울]]과 다름없으니 진휼할 때 백성들이 추위에 떨어가며 기다리게 하지 말라\"'''라는 표현까지 등장하였다.[* [[1784년]] [[2월 27일]](양력 [[3월 18일]])자 기록][* 200년 뒤인 [[1984년]] [[3월]]에도 때늦은 추위로 인해 [[서울특별시|서울]] 월평균 기온이 '''2.5℃'''에 그쳤고, 마지막으로 [[3월]] 평균 기온 2℃대를 기록하였다.] * [[1796년]](정조 20년) * '''[[4월|4]]~[[5월]]''' - 이해에는 양력 [[4월|4]]~[[5월]]에 [[이상 저온]]이 묘사되어 있다. 국왕 정조가 '''"[[봄]]이 이미 저물어 가는데도 날씨가 아직껏 차서 꽃 소식이 막연하니 사관이 충분히 기록할 만한 일이다\"'''라고 하자 당시 우의정 윤시동이 "정월의 추위는 천하가 다 같다고 하니, '''꽃이 필 기운이 전혀 없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으나''' 아침에 [[북악산]]을 보니 '''또 눈(雪)빛이 있었습니다\"'''라고 발언하고 정조도 '''"[[눈(날씨)|눈]] 또한 제 철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1796년]] [[3월 12일]]'''(양력 [[4월 19일]])'''자 기록][* 되짚어보자면 [[4월]] 중순이 다 지나가도록 꽃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이미 [[벚꽃]]이 제일 늦게 피었다는 '''[[1936년]] [[4월]]'''보다도 더 심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짐작할 수 있다. 현대에는 평년 기준으로 [[개나리]]와 [[진달래]]라도 [[3월]] 하순~[[4월]] 상순에 피니... 괜히 [[사관(역사)|사관]]이 기록할 만한 일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신하가 하는 말이 '''"원래 이 시기가 자주 추운데 꽃이 안 피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라고 대답하기까지 한다. 이어서 '''"[[북악산]]을 보니깐 새하얀 눈빛도 나던데요?\"'''라고 하자 "그래도 이 시기까지 [[눈(날씨)|눈]] 내리는 건 정상이 아니지"라고 하는 격이다.] 그리고 이 [[이상 저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지, "[[봄|올봄]]은 기후가 어긋나서 '''추위가 [[겨울]]이나 다름없고, [[봄]]내 꽃이 없어 상도가 매우 어긋났다\"'''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다.[* [[1796년]] [[3월 26일]]'''(양력 [[5월 3일]])'''자 기록][* 공교롭게 200년 뒤인 [[1996년]] [[4월]]에도 하순 일부를 빼고는 전부 [[이상 고온]]이 전멸하다시피 하여 월평균 기온이 '''10.2℃'''에 불과하였다. 물론 [[1996년]] [[4월]]이 [[1796년]] [[4월]]보다 월평균 기온이 낮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만약 [[1796년]] [[4월]] 기온이 1996년과 같았다면 당시로써는 평년 수준인 것이다.][* 이로부터 몇 개월 뒤인 [[10월]]에는 월 강수량이 '''126mm,''' [[11월]] '''98mm,''' [[12월]] '''47mm'''로 시기에 걸맞지 않은 [[집중호우|폭우]]가 내린 것으로 추정되어 [[1796년]] 한 해는 상당히 특이한 양상을 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19세기]] === ==== [[1800년대|1800]]~[[1870년대]] ==== ===== [[1851년]](철종 2년) ===== * [[10월]] - 역시 [[조선시대]]이므로 정확한 기온 관측은 없으나, 이해 [[10월]]에 '''190.0mm'''에 달하는 월 강수량을 기록. 같은 시기 [[상하이시|상하이]]의 [[10월]] 평균 기온이 '''15.8℃[* [[1871년|1871]]~[[1900년]] 당시 [[10월]] 평균 기온은 18.1℃이며, [[1991년|1991]]~[[2020년]] 기준으로는 19.7℃이다.][* 현대의 [[서울특별시|서울]]로 치면 다소 [[이상 고온]]이지만 [[상하이시|상하이]]는 북위 31°에 해양성 기후라 기온도 높고 늦게 식으니 이 정도면 매우 심한 [[이상 저온]]이다.]'''에 불과했던 것과 무언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황상 잦은 [[비(날씨)|비]]로 인한 일사 차단이 원인이었던 듯. 아니면 [[집중호우|폭우]] 이후에 찬 공기가 심했을 수도 있다. 일단 한기의 주요 루트인 [[베이징시|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11.5℃[* [[1991년|1991]]~[[2020년]] 기준으로 2℃ 정도 낮다.]'''였던 것을 보면, 강수 이후 급격한 한기 남하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1852년]](철종 3년) ===== * [[3월]] - 당시 [[상하이시|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6.9℃, [[베이징시|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2.8℃. 둘 다 당시 기준으로 평년 기온보다 1~2℃ 가량 낮았고, 북서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가 [[베이징시|베이징]]은 물론이고 [[상하이시|상하이]]까지 도달했던 정황이 기록되어 있다. [[서울특별시|서울]] 역시 [[3월]]에 상당히 쌀쌀했을 것으로 추정.[* 그리고 [[베이징시|베이징]], [[상하이시|상하이]] 쪽을 보면 [[1월|1]]~[[2월]]도 [[한파]]가 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남겨진 기록으로 보면 이후 등장할 [[1월|1]]~[[2월]] [[한파]]와 [[3월]] [[이상 저온]]을 동시에 띈 해들의 조상격이다.] ===== [[1860년]](철종 11년) ===== * '''[[3월|3]]~[[5월]]''' - [[베이징시|베이징]]의 [[3월]] 평균 기온이 '''1.3℃,''' [[상하이시|상하이]]의 평균 기온이 '''6.4℃.''' 당대 평년보다 2~3℃ 낮았고, [[상하이시|상하이]]까지 한기의 영향으로 월평균 기온이 낮았던 것을 볼 때 [[서울특별시|서울]] 역시 [[베이징시|베이징]]과 거의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4월]]에 잠시 주춤했던[* [[3월]]과 [[5월]]에 비하면 양반인 수준일 뿐, [[4월]]도 그렇게 높다고 보기 힘들다. [[베이징시|베이징]]과 [[상하이시|상하이]]의 [[4월]] 평균 기온이 각각 13.3℃와 14.1℃로, [[19세기]] 후반 [[4월]] 평년과는 거의 비슷하나, [[1991년|1991]]~[[2020년]] 기준으로는 1~2℃ 가량 낮다.] 한기는 [[5월]]에 다시 심해진 것으로 추정되어, [[베이징시|베이징]]의 [[5월]] 평균 기온이 '''17.5℃'''로 역대 최하위이고[* [[1991년|1991]]~[[2020년]] [[5월]] 평년 기준으로 '''3.8℃'''나 낮다. 그러나 [[1863년]] [[5월]] [[상하이시|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고작 '''16.9℃'''([[1991년|1991]]~[[2020년]] 기준 평년보다 '''4.0℃'''나 낮음)에 그쳐 역대 최하위였는데, 이때 [[베이징시|베이징]]은 결측 상태인지라 [[1860년]] [[5월]]이 진짜 역대 최하위인지는 불명.] [[상하이시|상하이]] 역시 '''17.2℃[* [[상하이시|상하이]]의 [[1991년|1991]]~[[2020년]] [[5월]] 평년 기준 '''3.7℃'''나 낮다.]'''에 그쳐 북방 남방을 가리지 않고 [[이상 저온]]이 심했는데, [[서울특별시|서울]]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막연하게만 추측될 뿐이다. * [[10월|10]]~[[11월]] - [[베이징시|베이징]]의 [[10월|10]]~[[11월]] 평균 기온이 각각 11.2℃[* [[1991년|1991]]~[[2020년]] 기준 2.6℃ 낮다.]와 1.6℃[* [[1991년|1991]]~[[2020년]] 기준 '''3.6℃''' 정도 낮다.], [[상하이시|상하이]]는 각각 16.7℃[* [[1991년|1991]]~[[2020년]] 기준 '''3℃''' 가량 낮다.]와 10.3℃.[* [[1991년|1991]]~[[2020년]] 기준 '''3.6℃''' 정도 낮다.] 그럭저럭 평년을 유지하던 [[9월]]과 달리, [[10월]]부터 기온이 급강하하고 [[11월]]에 가속화되어, [[12월]]부터는 그대로 [[한파]]로 발전하고 연이어 [[1861년]] [[2월]]까지 강력한 [[한파]]가 불어닥친 것으로 추정된다.[* [[1877년]] [[10월]]~[[1878년]] [[2월]]과 같은 유형이라 생각하면 된다. 차이점은 [[1861년]] [[1월]]은 [[베이징시|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이 역대 최하위이고, [[1878년]] [[1월]]은 [[상하이시|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역대 최하위다.] [[한반도]]도 거의 국룰 수준으로 [[한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덧붙여 [[1860년]] [[여름]]은 [[베이징시|베이징]], [[상하이시|상하이]] 둘 다 그렇게 덥지도 않았기에 [[한반도]]도 마찬가지로 [[여름]]이 그리 덥지 않았을 것이므로, [[한파]]의 기세가 상당한 [[1월]]([[베이징시|베이징]]과 [[상하이시|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을 보면 [[서울특별시|서울]]은 대략 -6~-7℃로 추정)과 그렇게 따뜻할 것 같지 않은 [[2월]], 상술했듯이 추운 [[봄|봄철]], 덥지도 않은 [[여름|여름철]], 급격히 추워지는 [[가을|가을철]]까지 사계절 모두 골고루 이어진 [[이상 저온]] 때문에 [[1860년]]의 연평균 기온은 심각하게 낮았을 것으로 추정되기까지 한다. 결국 이해에 [[이상 저온]]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달은 [[6월]]과 [[9월]]밖에 없었다.] ===== [[1864년]](고종 1년) ===== * '''[[3월]]''' - [[소빙하기]]가 끝나가는 [[19세기]] 중후반~현대 기간 중에서 가장 추웠던 [[3월]]로 의심되는 시기이다. 그 증거로 이 당시 [[상하이시|상하이]]의 [[3월]] 평균 기온이 '''4.7℃[* 이 정도는 [[서울특별시|서울]]로 쳐도 [[이상 저온]]에 속한다. 그러나 당시 기준로 보면 다소 높기는 하다.]'''로 역대 최하위이다. 일반적으로 [[상하이시|상하이]]는 [[서울특별시|서울]]이 [[3월]]에 월평균 기온 0℃를 기록할 때 5~6℃를 기록할 정도로 따뜻한 곳이다.[* 예시로, [[1892년]] [[3월]] [[서울특별시|서울]]이 0℃대 초반(추정)일 때 [[상하이시|상하이]]는 5.8℃였고, [[1898년]] [[3월]] [[서울특별시|서울]]이 0℃대 초반(추정)일 때 [[상하이시|상하이]]는 6.7℃였으며, [[1936년]] [[3월]] [[서울특별시|서울]]이 '''-0.3℃'''일 때 [[상하이시|상하이]]는 '''6.1℃'''였고, [[1970년]] [[3월]] [[서울특별시|서울]]이 0.4℃일 때 [[상하이시|상하이]]는 6.2℃였다.] 그런 [[상하이시|상하이]]가 [[3월]]임에도 5℃ 이하[* 현대 [[상하이시|상하이]]는 [[3월]]의 월평균 기온 평년값이 9℃대이며 [[1월]]에 평년 수준이거나 조금 낮으면 월평균 기온 4℃대가 기록되기도 한다. [[서울특별시|서울]]로 치면 [[1월]] 평균 기온 -2~-3℃에 대응된다. 이는 다시 말해, [[1월]] 수준의 월평균 기온이 [[3월]]에 기록된 셈이다.]로 기록되었으니, 그 윗 지역들, 특히 [[서울특별시|서울]]은 절대 [[이상 저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동시대에 [[상하이시|상하이]]와 함께 기상 관측이 시행되었던 [[베이징시|베이징]]은 결측으로 인해 [[1864년]]의 기록이 공백으로 남아있다. 따라서 동시기 [[베이징시|베이징]]의 월평균 기온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상술했듯 [[서울특별시|서울]]의 [[3월]]이 0℃ 정도이면 [[상하이시|상하이]]는 5~6℃ 정도이니, [[1864년]] [[3월]]의 [[서울특별시|서울]]은 월평균 기온마저 영하를 기록했을 것이며, 심하면 '''-1℃ 이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서울특별시|서울]](당시 한성)이 이 시기부터 기온 관측을 했다면, 역대급 [[이상 고온]]을 보인 [[2023년]] [[3월]]과 비교할 때 [[3월]] 최고/최저 격차가 '''10℃'''를 넘었을 것이다.[* 그리고, [[1864년]] [[1월]]과 [[2월]]도 [[한파]]가 무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도 [[상하이시|상하이]]의 월평균 기온이 [[1월]]에 1.1℃, [[2월]]에 2.3℃를 기록했는데, [[서울특별시|서울]]로 치면 [[1월]]은 '''-7~-8℃,''' [[2월]]은 '''-5~-6℃'''에 대응된다. 따라서 [[상하이시|상하이]]의 공식 기온 자료에 근거해 보면 [[1864년]] [[서울특별시|서울]]은 월평균 기온이 [[1월]] '''-7~-8℃,''' [[2월]] '''-5~-6℃,''' [[3월]] '''0~-1℃'''라는 미친 기온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일제강점기]]의 [[한파]]와 [[이상 저온]]마저도 울고 갈 수준이며, 특히 [[2월]]과 [[3월]]의 월평균 기온은 공식적인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저치보다 약간 더 낮을 가능성도 높아보인다.] ===== [[1877년]](고종 14년) ===== * '''[[10월]]''' - [[베이징시|베이징]]의 [[10월]] 평균 기온이 11.5℃, [[상하이시|상하이]]의 [[10월]] 평균 기온이 16.3℃. [[1991년|1991]]~[[2020년]] 기준 2~3.5℃ 정도 낮은 월평균 기온이고, 특히 [[중국]]의 다른 남부 지역에서는 '''[[10월 4일]]에 [[눈(날씨)|눈]]이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10월]] [[이상 저온]]으로는 순위권에 드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의 [[이상 저온]]은 꽤나 범위가 넓어서 [[서울특별시|서울]]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같은 날 [[일본]] [[도쿄도|도쿄]]에서 뜬금없이 최저 기온이 '''8.4℃'''까지 내려갔기 때문. 참고로 현대 [[도쿄도|도쿄]] 사람들은 [[10월]] '''중순'''에 최저 기온이 9℃로 떨어져도 춥다는 반응을 내보인 적이 있는데, 그때가 다름 아닌 [[2021년]] [[10월]] 중순이었다.] [[서울특별시|서울]] 역시 높아봐야 월평균 기온이 12℃를 턱걸이할 것이고, 11℃대로도 추정된다.[* 재미있게도 100년 뒤인 [[1977년]] [[10월]]은 [[10월]] 평균 기온이 16.7℃로, 역대 3위에 드는 [[이상 고온]]을 기록하였다.][* 그 뒤로도 한기가 멈추지 않고 남하해 [[11월]], [[12월]], 이듬해인 [[1878년]] [[1월]], [[2월]] 모두 강추위가 기록되는 진풍경이 계속되었다. 특히 [[1877년|1877]]~[[1878년]] [[겨울]]은 [[한반도]]는 비교적 덜했지만 [[중국]](특히 남부 지역)의 [[한파]]가 매우 기록적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한파/사례]] 문서 참조. [[10월]]은 그저 전조 현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10월 31일]]에는 [[도쿄도|도쿄]]에서 '''-0.5℃'''까지 급락하여 기상 관측 시작 2년 만에 유일하게 영하의 기온으로 남게 되었는데, 한기가 [[일본]]에만 집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877년]] [[10월]] 하순에 [[도쿄도|도쿄]]에서 한기 남하가 이루어진 증거가 남아있으나, [[한반도]] 날씨의 간접적인 증언을 해줄 [[나가사키시|나가사키]]는 당시 기상 관측이 시행되지 않았다. 주변 지역들인 [[가고시마시|가고시마]] 등은 '''아예 [[세이난 전쟁|전쟁]]이 막 끝난 터라''' 분위기가 뒤숭숭하기도 했고. 그나마 [[도쿄도|도쿄]]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하코다테시|하코다테]]([[1872년]] 시작)와 [[삿포로시|삿포로]]([[1876년]] 시작)조차 [[1877년]] 당시의 기록이 아예 없으며, [[네무로시|네무로]], [[히로시마시|히로시마]] 등은 [[1879년]]에 시작했으니, 남은 기록이라곤 [[도쿄도|도쿄]] 뿐이다.] 만약 [[서울특별시|서울]]에도 한기가 내려왔다면, 기온 차가 6~8℃ 정도 벌어지는 두 지역의 기온 특징상 '''[[10월]] 하순에 -6~-7℃를 기록했다는 셈이 된다.[* [[1907년]] [[10월]] 기상 관측 이후로 가장 낮은 기온이 '''-5.1℃'''([[1942년]] [[10월 24일]])이고, [[10월]] 하순 후반으로 범위를 좁혀도 -3.0℃([[1931년]] [[10월 28일]])이다. [[1878년|1878]]~[[1906년]] [[10월]] 사이에 지금 남아있는 이 기록들을 깨는 [[이상 저온]]들이 더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단순 비교로 치면 2~4℃ 이상 낮은 대기록이다.]''' ==== [[1880년대]] ==== 이 시기 무렵([[1870년대]] 중반~[[1880년대]])부터 [[한반도]]의 과거 날씨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비공식 관측 자료가 존재한다.[* [[개화기]] 시기에는 [[2010년대]] 이후에 맞먹는 [[폭염]]도 있었지만 그만큼 [[한파]]도 매우 강했던 시기이다. 다만 [[서울특별시|서울]]만 비공식 관측이 이루어졌던 [[1887년|1887]]~[[1890년]]은 [[이상 고온]]이 심했다.] 아래 [[1886년]]까지 서술된 내용은 당시 일별 기상 관측을 한 지역들 중 [[서울특별시|서울]]과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일본]] [[나가사키시|나가사키]] 지방의 기온을 대조한 것이다. [[5월]]부터 [[9월]]까지는 [[서울특별시|서울]]과 차이가 크지 않으나 [[11월]] 중순~[[2월]]은 [[서울특별시|서울]]과 12~17℃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1887년]]부터는 [[인천광역시|인천]]의 [[https://data.kma.go.kr/cdps/original/selectOriginalMaritimeList.do?pgmNo=202|해관기상관측자료]]를 참고하여 더욱 정확한 기온으로 서술하였다. ===== [[1881년]](고종 18년) ===== * '''[[3월]]''' - [[1880년]] [[11월]]부터 시작된 [[이상 저온]]은 [[1880년|1880]]~[[1881년]] [[겨울]] 시즌에 접어들자 그대로 [[한파]]로 발전했으며, 이 영향은 [[3월]]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해는 [[한반도]]에서는 비공식적으로도 관측된 기상 자료가 없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도쿄도|도쿄]][* [[1875년]] [[6월]] 기상 관측 시작], [[히로시마시|히로시마]][* [[1879년]] [[1월]] 기상 관측 시작], [[교토시|교토]][* [[1880년]] [[11월]] 기상 관측 시작], [[나가사키시|나가사키]][* [[1878년]] [[7월]] 기상 관측 시작], [[삿포로시|삿포로]][* [[1876년]] [[9월]] 기상 관측 시작. 그러나 [[1879년]] [[1월]]부터 제대로 된 관측이 시행되었다.], [[하코다테시|하코다테]][* [[1872년]] [[9월]] 기상 관측 시작. 그러나 [[1873년]] [[1월]]부터 제대로 된 관측이 시행되었다.], [[와카야마시|와카야마]], [[네무로시|네무로]][* [[1879년]] [[7월]] 기상 관측 시작] 등지에서 [[3월]] 중순과 하순에도 영하의 날씨가 기록되어 있고, [[꽃샘추위]]([[혼슈]])와 [[한파]]([[홋카이도]])의 기간이 은근히 길어서 월평균 기온이 낮았다. 나열된 지역들 간의 거리를 따져보면 사실상 [[일본]] 전역에 [[이상 저온]]이 일어났다고 봐도 무방하며, 이를 따져보았을 때 [[한반도]] 전역에도 [[이상 저온]]이 심각했고, [[서울특별시|서울]]의 [[3월]] 평균 기온이 고작 '''0℃대'''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꽃샘추위]]는 [[4월]]에 물러갔지만, 이 시대의 날씨가 으레 그렇듯 [[4월]]에도 최저 기온 0℃대가 기록되었을 듯. ===== [[1882년]](고종 19년) ===== 이 해는 1월 하순에 강력한 남풍으로 인한 고온 정황이 보여 1월은 약 -2~-3도 사이로 평균기온이 현대 평년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6월 상순에 역대 최강의 이상 저온이 발생했다. 그리고 12월도 매우 추운 편에 속했다. * '''[[6월]] 상순''' - [[나가사키]]의 6월 6일 최저기온이 '''8.9 ℃''', 2위인 [[1893년]] 6월 1일 10.8 ℃를 아득히 밑도는 유일한 한 자릿수 기온이다. 6월과 여름은 서울과 나가사키 차이가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6월은 통상적으로 3~4도 정도 차이가 난다.[* [[1921년]] 6월 상순에 서울이 8~9 ℃를 연일 기록하였는데, 당시 나가사키 극값은 12.3 ℃.] 따라서 서울은 6월임에도 불구하고 최저 '''6~7 ℃''', 혹은 그에 준하는 압도적인 저온을 보였을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서울 6월 역대 최저기온인 [[1981년]] 6월의 8.8 ℃ 보다는 낮았을 것이다. * [[12월]] 중순~하순 - 서울에서 [[1897년]] 12월 등과 함께 월평균기온 -3 ℃ 후반, -4 ℃ 초중반 사이가 강력히 의심되는 해이다. 상순도 저온이기는 했으나 시대에 비하면 비교적 그 강도가 덜한 반면 중순과 하순에는 [[1935년]]을 연상시키게 매우 추웠다. 12월 14일에 [[나가사키]]가 -2.2 ℃를 기록하고 29일에는 '''-3.6 ℃'''로 한겨울을 알리는 극심한 추위를 보여 극점을 기록했다.[* 원래 나가사키에서 1월에 -4 ℃ 이하를 기록하면 서울은 최소 -16 ℃에 최대 -21 ℃ 정도로 강력한 추위에 속한다. 그런데 이 해는 12월에 -4 ℃에 준하는 기온을 기록했으니 12월 치고는 매우 추운 한파였을 듯하다.] 기온 양상을 보면 [[1884년]], [[1917년]], [[1944년]] 12월처럼 월평균기온이 극심히 낮았을 가능성은 낮지만, 당대 12월에 비해 매우 추운 해임은 확실하다. ===== [[1883년]](고종 20년) ===== 다음 해 보다는 좀 덜 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 해도 [[크라카타우 화산]] 분화로 인해 매우 낮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9월 하순에 이상 저온이 매우 심각했다. * [[3월]] 하순~[[4월]] 상순 - 89년 후인 [[1972년]] [[3월]]~[[4월]] 상순 [[이상 저온]]의 조상격으로, [[일본]]에서 그나마 [[한반도]]와 가까운 [[나가사키시|나가사키]]부터 [[한반도]]와 거리가 먼 [[도쿄도|도쿄]]에까지 이 시기에 갑작스런 [[이상 저온]]이 관측되었다. 그 따뜻하다는 [[도쿄도|도쿄]]에서 '''[[4월 1일]]''' 오전에 '''-3.1℃'''까지 떨어질 만큼 한기가 강했으며, [[나가사키시|나가사키]]도 갑자기 기온이 훅 떨어졌다. 그렇다면 [[한반도]] 전체에도 [[1972년]] [[3월|3]]~[[4월]] 급[* [[4월 1일]] [[서울특별시|서울]]에서 최저 기온 '''-4.3℃,''' 최고 기온 '''5.5℃,''' 일평균 기온 '''0.0℃'''라는 [[겨울|한겨울]]급 [[이상 저온]]이 있었다.]으로 강한 한기가 내려왔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때는 [[서울특별시|서울]]의 기온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만한 [[인천광역시|인천]]의 [[https://data.kma.go.kr/cdps/original/selectOriginalMaritimeList.do?pgmNo=202|해관기상관측자료]]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 '''[[9월]] 하순''' - [[나가사키]]의 최저 기온이 '''무려 3일이나 11도대'''를 기록. 이는 최저기온이 평균적으로 가장 빨리 떨어졌다는 [[1912년]] 9월의 극값 12.9 ℃를 가볍게 능가한다. 서울 3.2 ℃의 역대 9월 최저기온을 기록한 [[1928년]]도 당시에 12.5 ℃를 기록했음을 생각하면 서울은 9월 하순임에도 불구하고 '''0~3 ℃ 가까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하루도 아니고 무려 3일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한기가 자리했다는 것이 거의 명백해진다. 여러모로 다음 해 11월 월말 한파와 비슷한 편차를 보였을 것이다. * [[11월]] - [[1884년|다음 해]]보다는 아니지만, 이해 역시 [[11월]]이 다소 낮아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54066800|한수당연구원 블로그]]에 의하면 [[서울특별시|서울]] 월평균 기온이 '''4.6℃'''를 기록했다고 한다. 동시기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기온을 대조해 봤을 때 최저 기온 분포가 [[2002년]] [[11월]]과 유사하거나 살짝 높은 것을 알 수 있는데, [[2002년]] [[11월]]에 [[서울특별시|서울]]이 월평균 기온 '''4.0℃'''를 기록했으니 이해 [[11월]]도 4℃대 초중반, 한기 축의 방향에 따라 낮으면 3℃대 후반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블로그의 평균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듯하다.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외교관]]인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조선]]에서는 '노월(魯越)'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두음 법칙]]을 빼면 '로월'이 되어 본명과 상당히 비슷해진다.]이 남긴 당시의 날씨 상황은 아래와 같다. 다만 구체적으로 [[서울특별시|서울]]의 어느 지역인지는 불명. >[[11월]] 말에 [[겨울]]이 시작되고 [[강]]과 [[연못]]이 얼어붙으며 [[눈]]이 내렸다. ===== [[1884년]](고종 21년) =====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이상 저온]] 중에 '''가장 비정상도가 큰 해''' 중 하나이다. [[3월]], [[5월]], [[9월]]은 [[이상 저온]]이 심하지 않았고 [[8월]] 상순은 당시 치고 조금 더운 편이었으나, 중하순에는 저온이 매우 심했다. '''[[10월|10]]~[[12월]]의 압도적인 [[이상 저온]] 및 [[한파]]'''가 가장 기록적이고[* 후술하겠지만 공식 기상 관측 이후 [[가을|가을철]] [[이상 저온]] 현상이 가장 심했다는 [[1912년]] '''따위'''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정말 유래없는 초강력 [[이상 저온]]이었다.] [[1월]]도 추운 편이었으며, [[2월]], [[4월]], [[6월]]에도 강한 [[이상 저온]]이 발생했다. 이같은 극한 [[이상 저온]]의 원인은 [[1883년]]의 [[크라카타우 화산]] 분화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특별시|서울]]이 기상 관측이 조금이라도 빨랐다면 [[1947년]] 이상으로 상당히 낮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1월]] - 전반적으로 추운 편이었다.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기온 흐름으로는, [[1월 11일]]에 '''-2.9℃,''' 이후 [[한파]]가 지속되다가 [[1월 21일]]에 '''-4.1℃'''로 크게 떨어졌다. 당시 한기의 축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흐름으로 봤을 때, [[1월]] 상순에 춥다가 잠시 따뜻해졌고, [[1월 10일]]을 기점으로 중순이 상당히 추웠으며, [[1월 21일]]에 최저 기온 극값을 세우고 하순에 급격히 따뜻해졌다가 다시 낮아진 양상이다.[* 최소 -17~-18℃ 이하의 강한 [[한파]]가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4.1℃는 상당히 큰 [[한파]]로, [[2016년]] [[1월 24일]](다만 이해는 유달리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를 비롯한 남부 지방이 매우 기록적인 [[한파]]였다), [[1917년]] [[1월 8일]] 등이 그렇다. 이 두 [[한파]] 당시에 [[서울특별시|서울]]이 각각 최저 기온 -18.0℃, -20.4℃를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서울특별시|서울]]도 [[1884년]] [[1월]]에 한기 축의 중심이 아니었어도 최소 -16℃ 이하의 최저 기온을 기록했을 듯하다.]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29238080|한수당연구원 블로그]]의 기록에 의하면 [[1884년]] [[1월]] [[인천광역시|인천]]의 월평균 기온이 -4.5℃였다고 하는데, 해당 블로그의 월평균 기온이 실제보다 다소 높게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월평균 기온은 -5℃ 정도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를 통해 [[서울특별시|서울]]의 월평균 기온은 -5.5℃에서 더 낮으면 -6℃ 이하로 기록적이지는 못해도 제법 낮았을 것은 자명해보인다. * '''[[2월]]''' -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최저 기온 분포를 볼 때, [[1월]] 하순에 다시 시작한 [[한파]]가 풀리지 않았으며 [[2월 8일]]에 '''-2.7℃,''' 조금 올라가나 싶더니 [[2월 11일]] '''-4.8℃,''' [[2월 12일]] '''-4.4℃'''로 이틀 연속 -4℃를 밑돌았다. 후술할 유사 사례인 [[1895년]] [[2월 21일]]이 [[나가사키시|나가사키]] '''-4.6℃,''' [[인천광역시|인천]] '''-16.0℃'''를 기록했음을 생각하면 이것보다 심한 [[한파]]가 [[2월]] 중순 초입에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1월]]과 다르게 [[한파]]가 풀리지 않았고 그대로 이어져서 [[2월 26일]]에 다시 '''-2.1℃'''를 기록하는데, [[1991년]] [[2월 25일]]에 '''-2.3℃'''를 기록한 것을 보면 이와 유사한 [[한파]]가 [[겨울]] 막바지에 온 듯하다. 월 내내 뚜렷한 [[이상 고온]] 없이 상당히 낮아 [[2월]] 평균 기온은 순위권으로 낮았을 듯하다.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29238080|한수당연구원 블로그]]에는 [[인천광역시|인천]]의 월평균 기온이 -2.2℃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5~-3℃일 가능성이 높으며, [[서울특별시|서울]]도 인천과 비슷하거나 혹은 -3℃ 미만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인다. * '''[[4월]]''' - [[3월]]은 기온이 올라 [[3월 9일|3월 9]]~[[3월 14일|14일]]의 [[꽃샘추위]]를 제외하고 심한 [[이상 저온]]은 없었으나 [[4월 3일]]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최저 기온 '''0.2℃'''로 역대 최저 1위를 기록한다. 2위인 [[1972년]]과 비교해도 1℃나 낮은 값인데, [[서울특별시|서울]]이 이때 '''-4.3℃'''를 기록했음을 보면 [[4월]]임에도 불구하고 '''-5℃ 이하의 비현실적인 추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남은 중순, 하순도 평년보다 약간 낮고 딱히 [[이상 고온]]은 없었던 모양이다. * '''[[6월]] 상순''' - [[6월 1일]]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최저 기온 '''11.0℃'''로 역대 최저 2위. 아무리 [[서울특별시|서울]] - [[나가사키시|나가사키]] 간의 기온 차이가 적은 [[여름|여름철]]이라고는 하지만 11.0℃까지 떨어진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고, 이를 미루어 짐작해보면 [[서울특별시|서울]]은 7~9℃대로 [[1981년]]의 기록을 깼을 가능성도 있다.[* [[1921년]] [[6월]] 상순에 [[나가사키시|나가사키]] 12.3℃, [[서울특별시|서울]] 8~9℃대의 한 자릿수 기온이 연일 관측된 것을 보면 이해 [[6월]]도 한 자릿수까지 내려간 것은 거의 자명해 보인다. 사실 이것보다 더 압도적인 [[이상 저온]]이 [[1882년]]에 있기는 하다.] * '''{{{#blue 10월}}}''' - [[10월 7일]] [[나가사키시|나가사키]]의 최저 기온 '''11.6℃,''' 이는 [[서울특별시|서울]] 0.1℃([[10월 10일]])로 가장 빠르게 영하에 근접한 [[1911년]] [[10월]]의 11.3℃와 맞먹는 기록이다. 그리고 [[10월 16일]]에 다시 급락해 '''7.9℃'''를 기록하였고[* 이미 [[나가사키시|나가사키]]에서 [[10월]] 한 자릿수라는 것 자체가 초강력 [[한파]]가 있었음을 보이는데, [[10월]] 중순에 최악으로 추웠던 [[1924년]], [[1956년]]의 [[10월 20일]]의 [[나가사키시|나가사키]] 기온이 11℃대였음을 볼 때, [[서울특별시|서울]]은 '''-3~-4℃ 이하'''의 경악스러운 수치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여담으로 [[서울특별시|서울]]이 1.3℃를 기록한 최근 사례인 [[2021년]] [[10월 17일]]의 [[나가사키시|나가사키]] 기온([[10월 18일]] 극점)은 '''12.6℃'''였다.] 또한 [[10월 26일]]에 '''5.1℃'''로 매우 크게 낮았다. 실제로 [[10월 26일]]의 최저 기온 극값은 '''[[1942년]]'''보다도 낮은 값이며 [[1941년]] [[10월 28일]]과 같고 오로지 [[1970년]] [[10월 31일]]만이 이보다 낮다. [[1970년]]은 0.5℃로 영하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이 값이 [[1942년]]보다 낮고 [[1941년]] [[10월 27일]]에 [[서울특별시|서울]]이 -1.6℃를 기록한 것을 보면 영하권은 거의 확정이고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아 [[열섬 현상]]이 없어 -1℃보다 더 떨어졌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서울특별시|서울]]의 [[10월]] 평균 기온이 '''11.1℃'''인 [[1912년]] [[10월]]보다도 최저 기온 한 자릿수 이하의 날씨가 확연히 많은 것으로 보아, 한기 축이 [[한반도]]가 아니더라도 [[서울특별시|서울]] 월평균 기온은 10℃대, 심하면 '''9℃대'''로 매우 순위권으로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9월]]은 [[1912년]] [[9월]]이 더 우위였을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기상학적 [[겨울]] 역시 [[1912년]]보다 빠르게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blue 11~12월}}}''' - 말이 필요없는 충격적인 [[겨울|초겨울]] [[한파]]로, [[11월]]은 그 압도적으로 낮은 [[1912년]] [[11월]]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낮았을 가능성이 크며, [[12월]]은 '''[[1944년]] [[12월]]의 심화판'''으로 지속성이 큰 [[한파]]였음을 보여준다. [[나가사키시|나가사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상하이시|상하이]] 등지에서도 이해 [[11월|11]]~[[12월]]이 아예 압도적으로 낮은 것을 보아 [[1850년]] [[11월]]과 함께 [[19세기]]~현재까지 최악으로 추웠던 [[11월]]이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파/대한민국/19세기]] 문서 참조. 일단 [[11월]] 하순에 한기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해보자면, [[홋카이도]] [[하코다테시|하코다테]]에서는 [[11월 26일]]에 '''-12.1℃'''를 기록했고, [[삿포로시|삿포로]]에서는 [[11월 27일]]에 '''-15.5℃'''를 기록했는데, 이는 해당 지역들의 기록 중 '''유일하게 [[11월]]에 압도적으로 낮은 기온이다.''' 당연히 이보다 낮기는 커녕 비슷한 기록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 [[11월]] 하순부터 상상을 넘어서는 [[한파]]가 덮친 [[1891년]], [[1892년]] [[11월]]보다도 더한 수준이다. 그 외에도 [[1884년]] 당시 관측이 시행되었던 [[일본]] 지역들은 전부 '''[[1884년]] [[11월]] 하순에 영하를 기록하지 않은 지역이 없으며, [[11월]] 역대 월평균 기온 중에 가장 낮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를 보아 [[서울특별시|서울]]에 '''-12℃ 이하'''의 추위가 찾아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한파]]의 지속성 또한 무지막지하게 길었던[* 11월 말에 내려온 한기가 12월 초순에 더 쎄지면서 계속 이어지다 물러난 정황도 있다. 이때 12월 초순에 기록됐을 최저기온이 어림잡아 '''-14℃~-16℃'''선이다. 최근 2022년 12월 초순의 한기 남하로 인해 사람들이 버티기 힘들어했는데, 1884년 11말12초는 이것과 비교도 안 되게 춥고 길었다. 한마디로 이 시절은 '''원래 강력한 한기+아직 추위에 덜 적응됨+강력한 바람---+[[패딩]]이 없음---''' 이 3박자에 의해 체감온도를 한없이 급감시켰을 것은 덤.] 것으로 보인다. [[한강]] 역시 [[11월]]에 결빙했을 가능성이 있다. ===== [[1885년]](고종 22년) ===== [[1885년]]은 비공식 자료이기는 하나, [[한반도]] 기상학의 역사를 다루는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29259394|한수당연구원 블로그]]에 따르면 이해 [[한반도]]는 [[8월]]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이상 저온]]이 길게 이어져서 결국 역대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낮은 연평균 기온이 나왔다고 한다. * [[부산광역시|부산]] 기준으로[* 해당 블로그에서는 [[부산광역시|부산]] 뿐만 아니라 [[1884년|1884]]~[[1903년]]간의 [[인천광역시|인천]]과 [[원산시|원산]]의 기록도 있으나, [[1885년]]은 결측인 것인지 혹은 데이터가 유실된 것인지 아쉽게도 자료가 없다. 그리고 [[1887년|1887]]~[[1890년]]은 [[서울특별시|서울]]은 비공식 자료가 있지만 다른 지역들은 모두 결측되었다. 또한 해당 블로그의 자료는 실제 측정값보다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어서 적혀있는 기온보다 더 낮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기 바란다.] [[겨울]]에서 [[봄|초봄]]인 [[1월|1]]~[[3월]]은 각각 1.4℃, 1.9℃[* 역대 최저 13위], 6.0℃[* 역대 최저 11위]로 기록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평년보다 상당히 낮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후, [[4월]]의 [[이상 저온]]은 더욱 맹렬해져 [[4월]] 평균 기온 '''10.8℃'''를 기록한다. 이는 최악의 [[4월]] [[이상 저온]]으로 유명한 '''[[1931년]] [[4월]]의 11.2℃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공식 기상 관측 이래 [[1885년]] [[4월]]보다 [[4월]] 평균 기온이 낮았던 해는 [[1936년]] [[4월]](10.5℃)이 유일하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해당 블로그의 월평균 기온이 [[https://data.kma.go.kr/cdps/original/selectOriginalMaritimeList.do?pgmNo=202|해관기상관측자료]]를 통해 본 실제 기온보다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로는 [[1936년]] [[4월]]보다 '''약간 더 낮았을 가능성도 있다.'''] 기온은 [[봄|늦봄]]인 [[5월]]이 되어서도 쉽게 오르지 못해 역대 최저 9위인 월평균 기온 15.6℃에 머물렀다. 결국 [[봄]] 전체([[3월|3]]~[[5월]]) 평균 기온이 10.8℃로 산출되어 [[1917년]] [[봄]]과 함께 '''역대 2번째로 추운 [[봄]][* 1위는 [[1936년]] [[봄]]으로 10.1℃였다. 여담으로 [[21세기]]에서 가장 추운 [[봄]]은 [[2010년]]이다.]'''이 되었다. [[여름]]이 되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화되었는데, [[6월]] 평균 기온도 19.2℃로 평년보다 상당히 낮게 출발한 [[부산광역시|부산]]은 [[7월]]에 [[이상 저온]]이 극에 달하여 월평균 기온이 '''21.7℃'''에 머무는 [[이상 저온]]이 이어진다. 해당 수치는 '''[[이상 저온]]으로 유명한 [[1980년]], [[1993년]], [[2020년]] [[7월]]보다도 낮다!''' 기록으로서는 역대 최저 6위에 해당하는 값이다.[* 이보다 [[7월]] 평균 기온이 낮았던 해는 [[1931년]], [[1941년]], [[1954년]], [[1974년]], [[2003년]] 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8월]]에 들어 평년 기온을 되찾아 25.5℃를 기록했다. [[6월|6]]~[[7월]] 내내 [[이상 저온]]이 심했지만 [[8월]] 덕분에 [[여름]] 전체 평균 기온이 22.1℃로 산출, 기록적으로 낮지는 않았지만 당시 치고도 분명히 낮은 편이었다. [[9월]]과 [[10월]]은 각각 21.3℃, 16.5℃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11월]]이 되자 [[이상 저온]]은 다시 심화되어 월평균 기온 8.8℃를 기록, [[11월]] 평균 기온 역대 최저 8위에 해당하는 추운 [[가을|늦가을]]을 보내게 된다. [[12월]]은 3.8℃로 평년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었다. 이렇게 해서 [[1885년]] [[부산광역시|부산]]의 연평균 기온은 '''12.7℃'''로, 만약 이것이 공식 기록이라면 [[1917년]], [[1936년]], [[1947년]] 다음으로 역대 최저 4위에 해당하는 값이 나오게 된다.[* 게다가 저 블로그에 기재된 평균 기온이 실제보다 다소 높은 것을 감안하면 [[부산광역시|부산]]도 12.7℃가 아니라 12℃대 초반일 수도 있다.][* 여담으로 [[1885년]]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옆 나라 [[일본]]에서도 [[이상 저온]]이 이어진 해였다. [[일본]]은 [[대한민국]]보다도 이른 [[1875년]]부터 공식 기상 관측을 시작해서 이 당시인 [[19세기]]의 기온이 공식 자료로 남아있는데, [[https://www.data.jma.go.jp/obd/stats/etrn/view/monthly_s3.php?prec_no=44&block_no=47662&year=&month=&day=&view=|일본 기상청의 도쿄 1875~2020년 월평균 기온 자료]]를 보면 당시 [[일본]]은 [[한반도]]보다 [[이상 저온]]이 훨씬 심해서 [[1885년]] 연평균 기온이 '''13.1℃'''로 '''역대 최저 2위'''를 기록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역대 최저 1위가 바로 전년도인 [[1884년]]의 '''12.9℃'''이다. 즉 [[일본]]은 '''[[1884년|1884]]~[[1885년]]까지 2년 연속으로 부동의 연평균 기온 역대 최저 1, 2위 기록을 갈아치우는 엄청난 [[이상 저온]]이 계속된 것이다.''' [[서울특별시|서울]]의 경우 연평균 기온 13℃ 정도는 평년보다 높은 것이지만, [[대한민국]]보다 훨씬 온화해서 연평균 기온이 16.3℃인 [[도쿄도|도쿄]] 기준으로는 엄청난 [[이상 저온]]이다. [[도쿄도|도쿄]]에서 [[21세기]]인 현대 기준으로 지난 20년간 가장 낮았던 연평균 기온인 [[2017년]]의 15.8℃와 비교해보면, 이 당시인 [[19세기]]에 얼마나 [[이상 저온]]이 심각했을지 체감이 될 것이다. 이를 [[서울특별시|서울]]로 대입하자면 연평균 기온이 '''12.5℃'''인 [[서울특별시|서울]]이 각각 '''9.1℃'''와 '''9.3℃'''라는 역대급 [[이상 저온]]을 기록한 셈. [[1907년]] [[서울특별시|서울]] 공식 기상 관측 이래 1년 전체가 [[이상 저온]]으로 점철되어 연평균 기온 최저 1위를 기록한 [[1947년]]이 '''9.6℃'''인데 이보다도 더 낮다는 뜻이다. 그런데 비교적 따뜻했다는 다른 지역들도 [[1884년|1884]]~[[1885년]]에 저 정도였다면 [[서울특별시|서울]]은 진짜로 연평균 기온 9.1~9.3℃를 찍었을 것 같다. 만약 더욱 심각하면 '''8℃대 후반'''으로 굴러떨어졌을 수도.] ===== [[1888년]](고종 25년) ===== * [[4월]] 상순, [[5월]] 상순, [[9월]] 상순 - 특이하게도 한 달 내내 매우 낮은 기온이 지속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산발적으로 심각한 [[이상 저온]]이 발생했던 해였다. 우선 [[4월]] 상순의 기록을 보면, [[4월 2일]]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이 '''-1.8℃'''를 기록하고 낮 최고 기온도 '''5.3℃'''에 머무는 등 기록적으로 추웠다. [[5월]] 상순에는 [[인천광역시|인천]] 최저 기온이 [[5월 2일]] 5.8℃, [[5월 3일]] 6.9℃, [[5월 4일]] 6.2℃, [[5월 5일]] '''4.3℃'''까지 떨어지는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한편, [[폭염/사례]] 문서에서 볼 수 있듯 [[1888년]] [[여름]]은 엄청나게 더웠는데 [[9월]] 상순에는 갑작스레 쌀쌀해져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이 [[9월 6일]] 13.9℃, [[9월 8일]] 13.8℃, [[9월 9일]] 14.1℃를 기록하는 등, 공식 기록이라면 [[9월]] 상순 최저 기온 역대 3~4위 안에 드는 쌀쌀한 날씨가 하루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고종실록]]에 의하면 양력 [[9월 24일]] [[서울특별시|서울]]에 [[서리(날씨)|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 [[1890년대]] ==== 일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은 인천, 부산의 해관기상관측자료를, 월 평균기온은 한수당연구원 블로그 자료를 참고했다. 해관자료의 일 최저기온과 최고기온을 통해 추정한 월 평균기온은 한수당연구원에 기록된 월 평균기온보다 0.7℃ 정도 낮다고 생각되며 이를 통해 인천과 부산의 월 평균기온을, 인천과 서울의 기온 차이를 계산해 서울의 일최저기온, 일최고기온, 월평균기온을 추정하였다. 1890년대도 1910년대 처럼 봄철 저온현상이 잦았다. ===== [[1891년]](고종 28년) ===== * [[7월|7]]~[[8월]] - [[https://m.blog.naver.com/hahnsudang/20053429846|이 블로그]]의 글 내용 중, '[[여름|여름철]] 기온에는 민감하지 않다가'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울특별시|서울]] 국립도서관에 있는 책에 의하면 [[1891년]] [[7월|7]]~[[8월]] 모두 월평균 기온이 '''22.8℃'''였다고 한다. 한수당연구원 기준 인천의 7~8월 평균기온은 23.2℃, 23.8℃(실질 22.5℃, 23.1℃)였다. 물론 이 당시는 아직 [[한반도]]에서 공식 기상 관측이 진행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비공식 기록이다. 그리고 미칠듯이 쌀쌀했던 그 해 [[여름|여름철]]이 지나고, [[11월|11]]~[[12월]]이 되자 미칠듯이 추운 날씨가 찾아온다. [[한파/대한민국/19세기]] 문서 참조. * 11월 27일 - 인천 일 최저기온 '''-10.3 ℃''', 서울(비공식) 일 최저기온 '''-13.5℃'''. 이는 공식 기록이었으면 인천은 11월 역대 최저 3위, 서울은 11월 역대 최저 1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 [[1892년]](고종 29년) ===== 3월 이상 저온이 매우 심했던 해이다. 서울과 인천의 3월 평균기온이 0℃ 내외로 1936년, 1957년 3월과 비슷하다. 기온 양상도 1957년 3월과 매우 비슷하다. * '''[[3월|3]]~[[5월]]''' - 이해는 [[겨울]]도 꽤나 춥더니 [[봄]]이 되자 내내 [[이상 저온]]이 이어졌다. 비공식적으로 [[인천광역시|인천]]의 [[3월]] 평균 기온 0.5℃, [[4월]] 평균 기온 9.5℃, [[5월]] 평균 기온 14.9℃를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29238080|기록했다.]][* 다만 저 월평균 기온 기록 자체가 원래의 값보다 높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한파/대한민국]] 문서를 참조하면 알겠지만 [[https://data.kma.go.kr/cdps/original/selectOriginalMaritimeList.do?pgmNo=202|해관기상관측자료]]의 기온 자료를 통해 월평균 기온이 -7℃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1900년]] [[1월]]이 -6.1℃로 표시되어 있는 등의 예시가 있다. 따라서 실제로는 저 블로그에 적힌 수치보다 더 낮아 아마도 [[3월]]은 [[1936년]]이나 [[1970년]] 수준, [[4월]]은 [[1915년]], [[1956년]], [[2013년]] 수준, [[5월]]은 [[1908년]], [[1956년]] 수준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0.1℃, 8.8℃, 14.2℃ 정도로 예측되며, 이를 [[서울특별시|서울]]로 대입할 경우 [[3월]]은 0℃대 초반, [[4월]]은 9℃대 중후반, [[5월]]은 15℃ 전후로 예측된다.] 이는 [[1915년]] [[3월]]과 같으며 역대 최저 5위이다. 이보다 낮은 [[3월]] 평균 기온을 기록했던 해는 [[1916년]](0.2℃), [[1936년]](-0.1℃), [[1957년]](0.0℃), [[1970년]](0.1℃) 뿐이다. [[https://data.kma.go.kr/cdps/original/selectOriginalMaritimeList.do?pgmNo=202|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를 보면 [[인천광역시|인천]]은 [[1892년]] [[3월]] '''한 달 중 25일 동안이나 일 최저 기온이 영하권'''으로 도배되었을 정도로 [[꽃샘추위]]가 심했다. 이는 역대급 [[이상 저온]]을 보였던 [[1916년]] [[3월]], [[1970년]] [[3월]]과 비슷한 수치이다. 특히 [[3월 14일]]에도 '''-9.0℃'''를 기록하는 등 [[3월]] 중순 치고는 기록적인 추위가 찾아온 것도 특징.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29259394|부산의 경우]]도 [[3월]] 추위가 심해서 월평균 기온 5.6℃로 [[1915년]], [[1917년]], [[1933년]] [[3월]]과 함께 역대 최저 6위에 해당하는 [[이상 저온]]을 보였다. [[4월]]이 되어도 쌀쌀한 날씨는 이어져서 [[4월 1일]]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이 '''-0.5℃'''를 기록하고 [[4월 23일]] 전까지 아침 최저 기온이 10℃ 이상으로 오르지 못했다. [[5월]]에 들어서는 오히려 [[이상 저온]]이 심해져서 [[인천광역시|인천]] 기준 최저 기온이 [[5월 2일]]과 [[5월 3일]] '''5.6℃[* 공식 최저 기온이라고 가정하면 [[5월]] 상순 역대 최저 기온 4위에 해당하는 값이다.],''' [[5월 12일]] 8.4℃, [[5월 17일]] 9.5℃, [[5월 20일]] 8.4℃, '''[[5월 21일]] 7.0℃''' 등 지속적으로 낮은 기온을 기록했다. 특히 [[5월 21일]]의 최저 기온 7.0℃는 [[인천광역시|인천]]의 역대 공식 [[5월]] 하순 최저 기온인 [[1908년]] [[5월 21일]]의 '''8.0℃'''를 아득히 밑도는 역대급 기록이다. [[이상 저온]]은 [[6월]]에 들어서면서 다행히 조금씩 사라졌다. ===== [[1893년]](고종 30년) ===== 역대급 라니냐가 발생해서 저온 현상에 영향을 받은 해이다. * 1월 - 인천 월 평균기온 -5.5°C[* 일 최저기온 평균 -8.5°C, 일 최고기온 평균 -1.7°C] 일 최저기온 1월 1일 -14.2°C, 1월 14일 -13.6°C, 1월 15~16일 -13.0°C, 1월 17일 '''-14.5°C''', 1월 23~24일 -12.8°C이며 일 최저기온이 -10°C 이하인 날이 17일에 달했다. 또한 최고기온도 1월 14일 -9.2°C, 1월 16일 -9.3°C였다. 다만 1월 8일~10일에는 이상 고온이 찾아와서 최저 기온이 영상이었다. * 2월 - 인천 월 평균기온 -3.5°C[* 일 최저기온 평균 -8.0°C, 일 최고기온 평균 1.6°C] 특히 2월 중순에 엄청난 한파가 찾아와서 2월 11일 -12.6°C, 2월 12일 '''-15.5°C''', 2월 13일 -13.5°C, 2월 14일 -13.2°C, 2월 17일 -14.5°C를 기록했다. 다만 2월 17일에는 기온이 큰 폭으로 올라 낮에는 5.8°C를 기록해 일교차가 20°C 이상 벌어졌고 1893년 2월 최고기온 극값을 기록했다. * [[5월|5]]~[[6월]] - [[인천광역시|인천]]의 월평균 기온이 [[5월]] 14.7℃, [[6월]] 18.9℃였다. 특히 5월 말부터 한기 남하로 인한 여파로 5월 27일 인천해관에서 최저 '''9.0℃''', 31일 '''8.8℃'''를 관측하였다. 이를 볼때 서울에는 최소 '''6~7℃'''까지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뜬금없이 당시 정식 관측 중이던 서일본 지역이 그 여파가 더 강했는데, 6월 1일 후쿠오카에서 {{{#blue '''4.3℃'''}}}[* 참고로 1890년부터 2023년까지 집계된 6월 1일의 최저평균이 '''15.5℃'''이다. 7월과 9.5℃나 차이난다.]의 기온이 관측되었고, 히로시마에서도 같은날 {{{#blue '''6.6℃'''}}}로 잡혔으며, 나가사키에선 '''10.8℃'''[* 참고로 이때 인천은 최저 13℃였다. 나가사키가 기온이 낮다 하여 서울인천이 무조건 그보다 낮다라는 전제에 의문이 드는 기록. 다만 여름철이면 그럴 수 있다.]로 잡혔다. 번외로 도쿄에선 '''10.3℃'''에 불과했다. ===== [[1895년]](고종 32년) ===== * [[3월]] - [[1894년]] [[여름]]이 더워서 이 영향으로 [[12월]]까지 따뜻했으나[* [[1939년]], [[1994년]]과 비슷했다.] [[한파/대한민국/19세기|1895년 1~2월에 극심한 한파]]가 이어진 영향이 남아있던 것인지 [[봄]]에도 [[이상 저온]]의 형태로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인천광역시|인천]]의 [[3월]] 최저 기온이 한 달 중 무려 21일 동안이나 영하로 도배되어 있다. 이는 최악의 [[3월]] [[이상 저온]]을 보인 [[1936년]] [[3월]]의 26일, [[1916년]] [[3월]]의 25일, [[1970년]] [[3월]]의 25일보다 약간 적은 수치이다. [[4월]]에는 저온은 누그러져서 평년이거나 약간 높았지만(한수당연구원 기준 인천 10.8°C, 실제로는 10도 정도로 보인다.) 뚜렷한 고온은 없다 보니 [[4월 27일]]까지는 하루도 최저 기온이 10℃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인천은 봄철에 기온이 서울보다는 낮음을 감안해야 한다.] 월평균 기온은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29238080|한수당연구원 블로그]] 기준 3.1℃이며 이 자료가 상대적으로 높게 기록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3월]]은 2℃대 중반, [[서울특별시|서울]]로 대입할 시 [[3월]]은 3℃ 된다. 그러나 [[부산광역시|부산]]은 결측되었다. * [[9월]] - [[9월]] 상순에도 뜬금없는 [[이상 저온|초이상 저온]]이 있었다. [[인천광역시|인천]]은 [[1895년]] [[9월 8일|9월 '''8일''']] 최저 기온이 '''12.0℃'''까지 떨어졌다. 이는 [[1904년]]에 시작된 [[인천광역시|인천]]의 공식 기상 관측 사상 [[9월]] 상순 역대 최저 기온인 [[1932년]] [[9월 6일]]의 '''13.1℃'''보다도 무려 '''1℃ 이상이나 낮은 값이다![* 차이점이라면 [[1932년]]은 [[7월|7]]~[[8월]] 상순이 굉장히 더웠지만, [[1895년]] [[여름]]은 더운 시기가 있기는 했지만 심하게 덥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인 [[9월 9일|9월 9]]~[[9월 10일|10일]]에도 각각 14.5℃를 기록하는 등 [[이상 저온]]은 며칠 더 이어졌다. [[인천광역시|인천]]의 [[9월]] 평균 기온 역시 20℃ 언저리에 그쳤다. ===== [[1897년]](고종 34년, 광무 원년) ===== * '''[[4월]]''' - 비공식적으로 [[인천광역시|인천]]의 [[4월]] 평균 기온이 9.3℃, [[부산광역시|부산]]의 [[4월]] 평균 기온이 12.2℃이다.[* 이 자료도 [[https://blog.naver.com/hahnsudang/20029238080|한수당연구원 블로그]]가 출처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해당 블로그는 [[https://data.kma.go.kr/cdps/original/selectOriginalMaritimeList.do?pgmNo=202|기상자료개방포털 해관기상관측자료]]에 기록된 기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게 기록된 경향이 있다. 따라서 [[1897년]] [[4월]] 평균 기온도 실제로는 이보다 낮아서 [[인천광역시|인천]]은 8℃대 중후반, [[부산광역시|부산]]은 11℃대 중반을 나타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맞다면 [[4월]]의 경우 [[서울특별시|서울]]이 [[인천광역시|인천]]보다 1℃ 정도 높으니 [[서울특별시|서울]] 역시 9℃대로 추정되는 상당히 낮은 기록이다. [[1915년]], [[1956년]], [[2010년]]과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인천의 일 최저기온 평균은 5.0°C이다.] 아마도 공식 기록이었으면 [[1931년]]과 [[1936년]], [[2010년]]에 맞먹는, 어쩌면 '''[[1936년]]보다 더 낮을 수도 있는''' 순위권으로 추운 [[4월]]이었을 듯한 '''역대급 [[이상 저온|초이상 저온]]'''을 보였다. [[한파/대한민국/19세기|이해 겨울에도 유난히 심한 혹한이 기승을 부리며 추웠는데]] 아마 연초의 강한 [[한파]]가 [[봄]]까지 [[이상 저온]]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냐면 '''[[인천광역시|인천]]은 [[1897년]] [[4월]] 한 달 내내 단 하루도 최저 기온이 두 자릿수는 커녕 9℃ 이상조차 올라가지 못했다.''' 한 달 중 가장 높은 최저 기온이 [[4월 13일]]의 8.5℃에 불과했다(...). 참고로 [[20세기]]에서 가장 심각한 [[4월]] [[이상 저온]]을 보였던 [[1931년]] [[4월]], [[1936년]] [[4월]]조차 [[1931년]] [[4월 27일]](10.2℃), [[1936년]] [[4월 21일]](10.2℃) 등 10℃를 넘은 날이 하루는 존재한다. [[서울특별시|서울]]의 경우도 [[21세기]] [[이상 저온]]이 심했던 [[2011년]], [[2020년]]조차 한 달 중 하루는 10℃를 넘었다. 게다가 [[1897년]] '''[[4월 21일]]'''에 최저 기온이 '''2.5℃'''까지 하락했는데 이것이 공식 기온에 포함된다면 기존의 공식 [[4월]] 하순 역대 최저 기온인 [[1905년]] [[4월 22일]]의 '''3.0℃'''를 뛰어넘는 [[인천광역시|인천]]의 [[4월]] 하순 역대 최저 기온이 된다. [[인천광역시|인천]]은 '''[[5월 4일]]이 되어서야 아침 최저 기온이 10.0℃를 기록'''하며 최저 기온이 두 자릿수인 날이 드디어 나타났다.[* 다만 이것도 당시에는 기온을 어림해서 0.5℃ 단위로 표기했기 때문에 모르는 일이다. 오차 범위가 9.8~10.2℃ 사이이므로, 정확한 기온은 10.0℃보다 약간 낮을 수도 있다. 오차 범위를 고려해도 확실하게 100% 확률로 10℃를 넘는 날이 처음 등장한 것은 [[5월 6일]] 12.0℃를 기록하면서부터였다.] ===== [[1898년]](고종 35년, 광무 2년) ===== 기온 양상이 1916년과 매우 비슷하게 1~2월(특히 1월)은 고온 현상이 심했으나 3~7월에는 저온 현상이 심했다. 1,3,7,8월은 1916년과 비슷하고 2,5월은 1916년보다 살짝 높고 4,6월은 1916년보다 살짝 낮았으나 전반적으로 대동소이했다. * [[3월]] - [[1898년]] [[1월|1]]~[[2월]]은 현대 기준으로도 [[이상 고온]]에 속할 정도로 따뜻한 [[겨울]]이었으나(자세한 내용은 [[이상 고온/사례]] 문서 참조), [[3월]]에 들어선 이후 완전히 기세가 뒤바뀌어 '''[[봄]]과 [[여름|초여름]] 내내 멈추지 않고 [[이상 저온]]이 심각했다.''' [[3월]]부터 살펴보면, [[인천광역시|인천]]은 [[1898년]] [[3월 2일]] '''-10.0℃'''를 기록했다. [[1월]]과 [[2월]]에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10℃의 날씨가 [[3월]]이 되어서야 뜬금없이 나타난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추위는 계속되어 [[3월 10일]]에도 -7.0℃를 기록하는 등 [[3월]] 내내 전반적으로 매우 추웠다.[* [[https://data.giss.nasa.gov/gistemp/maps/|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1981년|1981]]~[[2010년]] 평균 값으로 [[1898년]] [[3월]]을 확인해보면 [[시베리아]] 부분이 온통 보라색으로 칠해진 것을 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서울]]은 -2~-4℃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진 모양인데, 공식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낮은 [[3월]] 평균을 기록한 [[1936년]] [[3월]]만큼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1890년대]]가 [[1930년대]]보다 평년 기온이 높았는지는 미지수이므로 딱 잘라서 확언하기 어렵다. [[한반도]]가 엄청난 [[이상 저온]]에 시달리며 세계 기준으로도 역대급 [[한파]]가 찾아온 [[1893년]] [[1월]]이 1위이고 [[2월]]은 3위를 차지했다.][* 이를 보아 [[서울특별시|서울]]은 [[1898년]] [[1월|1]]~[[3월]]은 [[1916년]] [[1월|1]]~[[3월]]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다. [[1월]]은 0℃ 전후, [[2월]]은 -0℃대 사이로 평년보다 크게 높았으나(실제로 위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하면 [[1981년|1981]]~[[2010년]] 기준 [[1월]]은 평년보다 높고, [[2월]]은 살짝 낮다), [[3월]]도 평년보다 한참 낮은 0.5~1℃ 내외로 추정된다. 다만 6년 전인 1892년보다는 조금 높다. 어쨌든 [[봄]]이 빨라지는 현대와는 정반대로 [[겨울]]이 길어졌다고 밖에 부를 수 없을 지경.] * [[4월]] - [[4월]]에도 [[1897년|작년]] [[4월]]을 뺨치는 [[이상 저온|초이상 저온]]이 지속되었는데, [[1897년|작년]]과 비슷하게 '''[[인천광역시|인천]]은 한 달 내내 아침 최저 기온이 하루도 10℃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인천의 월 평균기온 9.4°C, 최저기온 평균 4.7°C로 지난해와 비슷했다. * [[5월]] 일부 - [[5월 5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11.0℃를 기록하며 두 자릿수로 오른다. [[5월]]에는 [[이상 저온]]의 강도가 조금 덜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상당히 추웠으며, [[5월 18일]]에 6.5℃를 기록하고 [[5월 23일|5월 23]]~[[5월 28일|28일]]까지 10~11℃ 사이의 다소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 [[6월]] - [[6월]]의 기록이 가장 충격적인데, [[인천광역시|인천]]의 아침 최저 기온이 [[6월 8일]] '''7.5℃'''를 기록하더니 [[6월 9일]]에는 '''7.0℃'''까지 떨어졌다. 심지어 [[6월 9일]]에는 낮 최고 기온조차 '''17.8℃'''에 머물렀다. 이는 [[인천광역시|인천]] 지역의 [[1904년]] 공식 기상 관측 이래 [[6월]] 역대 최저 기온인 [[1921년]] [[6월 2일]]의 8.7℃를 '''가뿐하게 밑도는''' 기록이다. 상순만 그런 것이 아니라 [[6월]] 중하순 내내 쌀쌀한 날씨가 이어져서 [[6월 15일]]에도 '''10.5℃'''를 기록하고 [[6월 26일]]과 [[6월 27일]]에 '''11.0℃'''를 기록한다. 즉 [[6월]]은 '''한 달 내내 기존의 공식 역대 최저 기온 기록을 깨거나[* 공식 기상 관측 이래 [[6월]] 역대 최저 기온을 상순, 중순, 하순별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br][br][[6월]] 상순: [[1921년]] [[6월 2일]] 8.7℃[br][[6월]] 중순: [[1926년]] [[6월 15일]] 10.5℃[br][[6월]] 하순: [[1956년]] [[6월 27일]] 12.4℃[br][br][[1898년]] [[6월]]은 혼자서 상순, 중순, 하순 모두 저 기록들을 가볍게 깨거나 비슷한 날씨가 있었으니, 당시 [[6월]] [[이상 저온]]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비슷한 추운 날씨가 지속된 것'''인데 이 정도면 사실상 '''[[여름]]의 실종'''이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 [[7월]] 일부 - [[7월]]에도 최저 기온이 높은 날들이 있어서 월 전체가 [[이상 저온]]이라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한낮에 시원한 날씨가 이어져 한 달 내내 최고 기온이 '''29.4℃'''에 머무는 등 [[7월]]임에도 한낮 더위가 아예 사라진 날씨를 보였다. [[8월]]도 잦은 강수 기록으로 인해 한 달 전체에서 낮 최고 기온이 고작 33.6℃에 불과했다.[* 게다가 저 33.6℃ 기록도 반짝 더위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기록된 날짜가 [[8월 29일|8월 '''29일''']]이다. [[8월]] 상순도 아니고 더위가 많이 풀릴 하순에 이 정도의 기온을 기록했다는 것은 정반대의 의미로 기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8월]]의 최저 기온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던 관계로 [[인천광역시|인천]]에서 최저 기온 20℃ 이하를 기록한 날은 하루도 없었다. * 가을철 일부 - [[9월]]은 [[9월 13일|9월 13]]~[[9월 14일|14일]]이 최고 20℃/최저 14~15℃ 정도로 조금 낮았지만 나머지는 거의 그맘때 기온이어서 크게 [[이상 저온]]이 아니었다. 하지만 [[10월]]이 되자마자 갑자기 기온이 급강하하는데, [[10월 2일]] [[인천광역시|인천]]의 최저 기온이 '''7.0℃'''를 기록했다. 전날인 [[10월 1일]] 최고 기온도 17.2℃였던 것을 보면 한기가 갑자기 남하한 모양이다. 이후 [[10월]] 상순부터 최저 기온이 점점 한 자릿수를 기록하는 등 [[이상 저온]]이 약하게 이어졌다. [[10월]] 중순에는 그맘때 기온이었지만 하순에도 그 기온을 유지하며 평년보다 높았으나 이후 [[10월 26일]]부터 급락하여 최저 기온 한 자릿수에 꽤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며 약한 [[이상 저온]]을 보였다. 이후 [[11월]]까지 [[이상 저온]]은 딱히 없다가 [[11월 27일|11월 27]]~[[11월 28일|28일]]에 최저 기온이 낮아지며 [[11월 27일]] 최고 기온 0.0℃, [[11월 28일]]에는 최저 기온 -6.0℃를 기록했다. 하지만 [[12월]]에는 날씨가 곧바로 풀려 [[12월 22일|동짓날]] 반짝 [[한파]](-9.0℃)를 제외하고는 따뜻한 편에 속했다. ===== [[1899년]](고종 36년, 광무 3년) ===== * [[10월]] - 한수당연구원 기준 인천 월 평균기온 12.9℃, 특히 일 최저기온 평균은 8.15°C로 역대 최저 4위이다. 10월 16일에 2.0°C까지 떨어지고 낮에도 8.9°C에 불과해 1999년 10월 16일, 2021년 10월 17일과 비슷한 수준의 초이상 저온이 찾아왔다. === [[이상 저온/대한민국/20세기|20세기]][* [[1900년]]은 [[20세기]]가 아니지만, [[19세기]]에 넣으면 [[1900년대]]의 개념에서 벗어나서 더욱 부자연스러우니 [[20세기]] 문서에 정리하였다.]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상 저온/대한민국/20세기)] === [[이상 저온/대한민국/21세기|21세기]]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이상 저온/대한민국/21세기)] [[분류:이상 저온]][[분류:대한민국의 재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