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Portret_Mazepa.jpg]] ||성명||이반 스테파노비치 마제파 (Іван Степанович Мазепа)[* [[라틴 문자]]: ''Ivan Stepanovych Mazepa'']|| ||출생||[[1644년]]|| ||사망||[[1709년]] [[9월 8일]]|| ||활동||[[우크라이나]]의 [[카자크|코자크]] 반군 지도자|| [목차] == 개요 == 우크라이나의 [[카자크|코자크]] 지도자이다. == 생애 == 1704년부로 코자크 헤트만국을 동서로 통일했다. 1707년 [[루스 차르국]] [[차르]] [[표트르 1세]]가 [[우크라이나]] 우안 지역을 다시 [[폴란드-리투아니아]]로 반환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고, 루츠 차르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웨덴 제국|스웨덴]]과 동맹을 맺고 봉기하였다. [[대북방전쟁]]에 참전해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 국왕]] [[칼 12세]]와 함께 [[러시아 제국군|루스 차르국군]]과 싸웠으나 대패하였다. 이후 칼 12세와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하여 거기서 사망하였고 [[몰다비아 공국]]의 [[갈라치]]에 안장되었다. == 기타 == 우크라이나에서는 독립된 코자크 국가를 세우려했던 독립지도자로 여겨져 영웅시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넉넉하게 후원했던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10[[흐리우냐]] 주화의 도안이기도 하다. 그의 인생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전 유럽 차원에서 명성을 누려 [[조지 고든 바이런]]의 시를 시작으로 19세기 내내 수많은 유럽의 낭만주의 문학가, 미술가, 음악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우크라이나]]에서보다 [[러시아]]에서 훨씬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는데[* 이럴 수 밖에 없는게,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족주의 사관이라 얽혀 민족영웅으로 신성시되거나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이용한 이기주의자 정도로 극과 극으로 나눠 평면적으로 묘사될 수 밖에 없다. 반면 러시아에서는 그 [[표트르 1세]]와 맞섰던 인물이니만큼 당대의 호걸이자 [[조조|난세의 간웅]] 정도로 묘사한다. 당장 파데이 불가린의 '마제파'만 봐도 영웅적이지만 독선적인 표트르 1세와 교만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마제파로 둘 다 나름대로의 명암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들로 묘사된다. 사실 [[레프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트'에서 [[니콜라이 1세]]와 하지 무라트, [[전쟁과 평화]]에서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미하일 쿠투조프]],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대위의 딸]]에서의 [[예카테리나 2세]]와 [[예멜리안 푸가초프]] 등 이러한 선악을 떠나 각자의 명암을 가진 영웅들의 대비는 러시아 고전 문학에서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폴타바', 파데이 불가린의 '마제파'가 있다.[* 푸쉬킨의 작품과 불가린의 작품 모두 한국어로 번역출간되었다.] 2020년 5월 6일 우크라이나 육군 [[제54기계화여단]]의 명예명칭으로 지정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맞서 싸운 지도자로써 평가가 높아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해군]]이 [[튀르키예]]에서 도입하는 [[아다급 초계함]] 1번함의 함명을 '헤트만 이반 마제파'로 명명했다. [[분류:우크라이나의 군인]][[분류:1644년 출생]][[분류:1709년 사망]][[분류:화폐의 인물]][[분류:키이우주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