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고려시대 무신정권기의 인물, rd1=이광정(고려))] [include(틀:역대 종법사)] ||<-2> '''[[원불교|{{{#221f20 원불교}}}]] {{{#221f20 11~12대}}} [[종법사|{{{#221f20 종법사}}}]]''' [br] {{{#221f20 {{{+1 '''이광정'''}}}[br]{{{#221f20 '''李廣淨 | Lee Kwangjeong'''}}}}}} || ||<-2>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좌산 이광정.jpg|width=100%]]}}} || ||<|2> {{{#221f20 '''출생'''}}} ||[[1936년]] [[9월 1일]] ([age(1936-09-01)]세) ||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복평리 || || {{{#221f20 '''법호'''}}} ||좌산(左山) || || {{{#221f20 '''종법사 재임'''}}} ||[[1994년]] [[11월 6일]] ~ [[2006년]] [[11월 5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전의 이씨]] || || {{{#221f20 '''속명'''}}} ||이건형(李健衡) ||}}}}}}}}} || [목차] [clearfix] == 개요 == >안으로 안으로 하나(眞我實現) >밖으로 밖으로 하나(大我實現) >영겁 영겁토록 하나(永劫我實現) >하나도 없고 없는 하나(三昧我實現) > >-좌산종사 게송 ||[[파일:external/www.won.or.kr/img_con_010203040000_01.jpg|width=100%]]|| [[원불교]]의 네 번째 [[종법사]]. == 일생 == 집안 어른인 호산 이군일의 안내로 정산 [[송규]] 종법사를 만났고, 그 동안 마음 속으로 혼자 고민하던 인생의 많은 문제에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출가 서원을 세웠다. 스승에 대한 신성과 쉼 없는 정성으로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여 사람들에게 많은 모범을 보였고, 1994년 스스로 퇴임한 대산 종법사의 뒤를 이어 4번째 종법사로 취임했다. 종법사 재임 기간 동안 인재육성, 체제정비, 경제기반확립, 교서번역, 방송국 설립, 국제교화 등 여러 분야에서 원불교의 기틀을 닦으며, 원불교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 여담 == * 대산 종법사 퇴임 후, 58세의 나이로 종법사 선거에 당선되었다. 당시 후보에는 83세의 나이로 많은 교도들에게 존경을 받던 상산 [[박장식]] 종사가 있었는데, 선거 결과가 확정된 후 아들 뻘인 옛 제자 좌산 종사에게 큰 절을 올리며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좌산 종사가 맞절을 올리며 원불교 최대의 파국 위기는 저절로 사라졌다. * 정부의 원불교 군종 승인과 라디오 [[원음방송]]의 개국이 좌산 종법사 재임 시절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원음방송의 소개 멘트에 위 사진 속 글을 인용한 '맑고 밝고 훈훈한' 방송이 들어간다.] * 2005년 노무현 정부의 사립학교법 개정 당시 사립학교재단을 거느리던 기성 종교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종교계 수장으로는 가장 먼저 사학법 찬성의 뜻을 공표하였다. 종교계의 반대로 골머리를 썩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후 기회가 날 때마다 원불교가 사학법에 찬성해준 것을 언급하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 사상의학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 퇴임 후, 원불교 상사원에 머무르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곶감을 말리고 나무가지를 치는 등, 일과로 득력하는 수행자로써 모범을 보이고 있다. [[분류:1936년 출생]][[분류:영광군 출신 인물]][[분류:전의 이씨]][[분류:종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