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개요 == 議郞 전근대 [[중국]], [[한국]]의 [[관직]], [[삼국지]] 시대의 의랑이 매우 유명하다. == 역사 == === [[중국사]] === [[황제]]가 [[질문]]을 하면 의랑은 대답을 하는 [[고문(직위)|고문관]]이나 [[자문|자문관]] [[보직]]이었다. 황제의 측근 심복으로써 명예로운 [[청요직]] 겸 엄청난 [[꿀보직]]이긴 했지만 당연히 다른 일반직 [[관리]]들[* [[상국]](전설상의 관직이긴 하나 그래도 [[황제]]의 신하다.), [[승상]], [[태위]], [[사도(관직)|사도]], [[사마(관직)|사마]], [[사공(관직)|사공]] 등의 [[삼사(관직)|삼사]], [[삼공]]]에 비하면 하급직이어서 영 실권은 없고 추가 수당 등을 받지 못해 급여를 많이 받지 못했다. 게다가 [[고대]] 시대였던 이 당시에는 황제가 질문을 했을 때 [[적절한]] 혹은 [[답정너|만족스런 대답을 하지 못하면]] 최소 [[파면]], 최대 [[사형]]이라는 무시무시한 벌을 받기도 했다.(...) 당시 [[서량]]에서 [[자사(관직)|자사]]로 근무한 [[동탁]]이 당시 황제인 [[영제(후한)|영제]]가 동탁에게 친히 의랑 보임을 한 것을 괜히 거절하고 실권직인 서량 자사로 남아 [[이유(삼국지)|이유]]와 [[가후]] 등 부하들의 조언을 받아 때를 보아 기다리다가 [[십상시의 난]]이 터졌을 때, [[낙양]]에 자신의 병력들을 강제 입성시켜 황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권력]]을 잡은 게 아니다. === [[한국사]] === 전근대 [[한국]]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나름대로 괜찮은 [[벼슬]]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육부]](六部)에 둔 정사품 벼슬. [[충렬왕]] 34년(1308)에 현대의 [[차관]]급인 [[시랑]]을 고친 것으로, [[공민왕]] 5년(1356)에 다시 시랑으로 고쳤다가, 21년(1372) 이후 총랑으로 고쳤다. [[조선]] 초기에, [[육조]](六曹)에 둔 정사품 벼슬. [[태조(조선)|태조]] 1년(1392)에 설치했다. == 관련글 == * [[삼국지/관직]] [각주] [[분류:중국의 관직]][[분류:한나라의 관직]][[분류:고려의 관직]][[분류:조선의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