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은령총 금제 드리개3.jpg]] [[http://blog.daum.net/oldpavilion/15893416|사진 출처]] [목차]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의 [[은령총]]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금제 드리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내용 == [[파일:은령총 금제 드리개2.png]] 발굴 당시의 모습.[[http://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24358|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 경북경주 은령총 출토 금제수식]] 경주 [[대릉원|노서동 139호 고분]]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황금 드리개로, 당시 139호분에서는 금동관(金銅冠), 금제관드리개(金製冠垂飾), 금제귀걸이, [[곡옥]](曲玉)이 달린 유리구슬목걸이, 은제팔찌와 반지, 은제허리띠, 띠드리개(腰佩), 금동제 신발, 은방울(銀鈴)과 금제 머리용 장신구, 자루부분이 금·은으로 장식된 작은손칼, 쇠투겁창(鐵矛), 쇠도끼, 철제 화살촉, 쇠낫, 안장틀(鞍橋)의 철제복륜(鐵製覆輪), 철제발걸이, 금동장(金銅裝) 멈추개가 붙은 [[재갈]], 금동장 종모양말띠드리개(鍾形杏葉), ‘십(十)’자형 손잡이가 달린 청동합(靑銅盒). 쇠솥, 칠기(漆器), 각종 [[신라토기]] 등 수천여점에 이르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순금 드리개는 당시 은령총에서 함께 발견된 금동관의 화려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위세품의 일종으로 길쭉한 나선 모양의 [[황금]] 장식을 여러개 연결하여 화려하게 꾸민 것이다. 유물의 제작 연대는 5세기이다. [[파일:은령총 금제 드리개4.jpg]]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에 전시된 모습. 우측에서 세번째.[[https://blog.naver.com/luckycmw/60198031781|사진 출처]] [[경주 황남동 금제 드리개]], [[경주 교동 금제 드리개]], [[경주 월성로 금제 드리개]], [[경주 황오동 금제 드리개]], [[금령총 금관 금제드리개]], [[호우총 금제 드리개]] 등 다양한 금관 수식 유물들과 함께 [[신라]]시대 위세 장식품에 대해 연구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 만들어진 [[한국]]의 황금 위세품으로, 오직 신라 고분에서만 발견되는 정교한 황금 세공 기술을 보여주는 유물이며, 신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파일:은령총 금제 드리개1.jpg]]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2817|사진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은령총(銀鈴塚)]] [[분류:신라의 금제유물]] [[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분류:경주시의 문화재]] [[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