劉義遜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의 인물. [[공융]]을 섬겨 [[좌승조]]와 함께 청렴하고 뛰어난 선비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자라 공융이 잃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가 겉으로 칭찬해 자리를 갖췄을 뿐 중용되지 못했다. 하북에 [[원소(삼국지)|원소]], [[공손찬]], 연주에는 [[조조]] 등이 있는 상황에서 좌승조가 강력한 세력와 제휴하라는 진언을 했다가 죽임을 당한 것을 보았으며, 인재를 제대로 중용하지 않고 오히려 죽인 공융에게 실망하면서 그를 포기하고 떠났다. 결국 인재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 공융은 이후에 그 세력이 193년에 황건적의 잔당인 [[관해#s-2]]의 공격을 받아 도창현으로 쫓겨갔다가 [[유비]], [[태사자]] 등의 도움으로 벗어나는 등 세력의 약함만을 보이던 중에 [[원담]]과 여러 차례 싸웠다가 패하면서 영지를 빼앗기고 그 세력은 멸망했다. == 창작물에서 == 소설 패왕 삼국지 : 초갑질 역사물에서는 좌승조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여버린 공융에게 실망해 [[왕수(삼국지)|왕수]]와 함께 [[이몽]]에게 귀순했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39, 무용 29, 지모 49, 정무 51, 인사 62, 외교 62의 능력치로 167년생으로 나온다. [[분류:후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