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10년 출생]][[분류:1970년 사망]][[분류:페락 주 출신 인물]][[분류:싱가포르 대통령]][[분류:화폐의 인물]] [include(틀:역대 싱가포르 대통령)] [[파일:yusofbinishak.jpg]] 양 아맛 브르바하기아 툰 하지 유솝 빈 이샥[* [[아랍어]] 인명 [[이사악|이스하크]](إِسْحَاق /ʾisḥāq)가 어원인 [[말레이어]] 인명 이스학(Ishak / إسحاق)은 s-h를 구분하여 [ishɑk̚\](이스학)으로 발음하지만 '이샥'이라는 표기가 관용적으로 더 많이 쓰인다.](Yang Amat Berbahagia Tun Haji Yusof bin Ishak, [[1910년]] [[8월 12일]] ~ [[1970년]] [[11월 23일]])은 [[싱가포르]]의 초대 [[싱가포르 대통령|대통령]]이다. [[말레이인|말레이계]] 유명 언론인 출신으로, 싱가포르 독립 전에도 영화 항소 위원회 위원 겸 천연 자원 및 말레이 위원회 위원(1948~1950)으로 활동했고 1959년에는 정부 인사위원회([[인사혁신처]] 격)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59년에 영국은 싱가포르에 완전한 자치권을 부여하였고, 이에 따라 싱가포르 총선이 치러져 자치정부를 구성했다. 자치정부의 총리는 그 전부터 유력 정치인이었던 [[리콴유]]가 되었고 총독에 해당되는 자리인 지역 수장(Yang di-Pertuan Negara)에 유솝 빈 이샥이 지명되었다. 이샥은 리콴유와 함께 말레이시아 연방 가입 문제에 나서 1963년에 싱가포르는 자치정부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영국 식민지에서 [[싱가포르(주)|말레이시아의 주]]가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연방정부 뿐 아니라 각 주에서도 영국식 내각제를 실시하였는데, 유솝 빈 이샥은 싱가포르 주의 실권 없는 상징적 주 대표 역할인 싱가포르 주 지역 수장(Yang di-Pertuan Negara)에 유임되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중국계와 말레이계의 민족갈등으로 여러 번의 폭동이 일어나는 등 국가 통합의 부작용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1965년 8월 9일 말레이시아는 국가 안정을 위해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쫓아낸다. 이에 싱가포르는 자치정부를 독립정부로 개편했고 이에 따라 유솝 빈 이샥은 초대 싱가포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리콴유]]는 [[총리]]로 취임했다. 영국식 내각제도를 채택한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가 사실상의 실권을 가지고 있었고, 유솝 빈 이샥은 [[상징적 국가원수]]에 가까웠으나 싱가포르의 민족 통합에 헌신하며 3선되었다. 향년 60세의 나이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현재 [[싱가포르 달러]]의 4번째 시리즈(현행권)에 그의 얼굴이 나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화폐 도안의 인물로 꼽히는 인물은 국가원수가 대부분이다. [[파일:Singapore Dollar.jpg]] (4기 현행권 100싱가포르달러 지폐에 나온 유솝 빈 이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