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촉한의 인물, rd1=유리(촉한), other2=후한 말 유득의 아들, rd2=유리(후한))] 劉利 (? ~ 179)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말의 황족으로 [[유강]]의 아버지이자 [[영제(후한)|영제]]의 사촌. == 생애 == 174년에 아들 유강이 제남왕에 봉해질 때 유건의 뒤를 이어 하간왕에 봉해졌으며, 152년부터 175년부터 하간왕을 지낸 것으로 보이고 179년 12월에 죽었다. 175년 3월에 [[유건]]이 하간왕에 봉해졌다는 사실을 통해 하간왕에서 다른 봉작으로 옮겨졌다가 죽을 때 하간왕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봐서는 죽기 전인 4년 사이에 하간왕으로 다시 옮겨진 것으로 보이고 그가 죽은 뒤에 하간왕은 누가 임명되었는지 불분명하다. 중산을 떼어내 박릉군을 [[환제(후한)|환제]]가 박릉현을 속현으로 삼아 박릉군을 신설했는데, 공표가 박릉태수를 지내던 때 그를 섬기던 관리들이 세운 공표비의 비문에 적힌 관리들이 적혀있다. 그런데 그 관리들의 출신들은 모두 박릉군에 사는 인물들로 그 옆에는 박릉군의 속현이 적혀있는데, 안평국에 속하는 안평, 남심택, 중산국에 속하는 안국, 하간국에 속하는 고양 등이 보이는 것으로 볼 때 유리가 하간왕에 봉해진 것을 보면 하간군만 폐지하면서 하간왕이라는 작위는 그대로 둔 것으로 보인다.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황족]][[분류:17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