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1 유리 바실로비치 콘드라추크}}}'''[br]Юрий Васильевич Кондратюк[* [[우크라이나어]] 표기는 Юрій Васильович Кондратюк][br]Yuri Vasilyevich Kondratyuk}}}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D0%9A%D0%BE%D0%BD%D0%B4%D1%80%D0%B0%D1%82%D1%8E%D0%BA%2C_%D0%AE%D1%80%D0%B8%D0%B9.jpg|width=100%]]}}} || || '''본명''' ||[[한국어]]: 알렉산드르 이그나티예비치 샤르게이[br][[러시아어]]: Алекса́ндр Игна́тьевич Шарге́й[* 우크라이나어 표기는 Олександр Гнатович Шаргей (올렉산드르 그나토비치 샤르게이)][br][[로마자]]: Aleksandr Ignatyevich Shargei || ||<|2> '''출생''' ||[[1897년]] [[6월 21일]] || ||[[러시아 제국]] [[폴타바주]] [[폴타바]][br](現 [[우크라이나]] 폴타바주 폴타바) || ||<|2> '''사망''' ||[[1942년]] [[2월 25일]] (향년 44세) || ||[[소련]] [[러시아 SFSR]] [[칼루가주]] || || '''직업''' ||[[우주공학|우주공학자]], [[물리학자]], [[수학자]] || ||<-2> '''군사 경력''' || || '''복무''' ||[[러시아 제국군]] ([[1916년|1916]] ~ [[1918년]])[br][[소련 육군]] ([[1941년|1941]] ~ [[1942년]]) || ||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br][[제2차 세계 대전]] || >'''You ever hear of a Russian rocket guy named Yuri Kondratyuk?''' - 톰 돌런(Tom Dolan)[* 아폴로 달 궤도상 도킹의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엔지니어. 처음엔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거절당했으나 NASA의 실무자인 존 허볼트(John Houbolt)가 이 아이디어를 접하고 "[[그럴싸한데]]?"라는 생각에 밀어붙어 NASA가 [[베르너 폰 브라운]]의 지구 궤도상 랑데부 복안을 누르고 채택받았다.], [[지구에서 달까지]] 5화 中. [목차] [clearfix] == 개요 == [[우크라이나]] 출생의 [[우주공학|우주공학자]]이자, [[수학|수학자]]로, 독학으로 익힌 우주공학으로 [[달]]에 우주선을 착륙 시키고 귀환시키기 위한 달궤도 [[랑데부]]를 최초로 고안한 인물이다. 사실상 [[아폴로 계획]]의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유리 콘드라튜크는 본명이 아니며, [[러시아 혁명]] 이후로 도피 생활을 위해 타인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다. 본명은 올렉산드르 그나토비치 샤르게이다[* 그의 모국어인 [[우크라이나어]]로 된 이름이며, [[러시아어]]로는 알렉산드르 이그나티예비치 샤르게이다.]. == 생애 == [[러시아 혁명]] 이후로 [[소련 공산당]]의 탄압과 감시를 피해 달아나야 했으므로, 그의 생애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확실한 것은 1897년 6월 21일에 러시아 제국의 [[폴타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폴타바.]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인 이그나트 베네딕토비치 샤르게이는 [[키이우 공과대학교]]의 [[수학과]] 교수였고, 어머니 류드밀라 르보브나 실리펜바흐는 [[키이우|키예프]]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교사였다. 수학자였던 아버지 덕택에 콘드라추크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물리학]]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고, 이는 그가 [[우주공학]]의 발전의 숨은 공로자가 되는 밑거름이 된다[* [[미국]]의 [[천문학자]]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호스트를 맡은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다큐멘터리)|코스모스]]에서 그의 일생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콘드라추크의 가족들이 낡은 통나무집에서 빈한하게 지내는 것으로 묘사되는 [[고증오류]]가 나온다. 콘드라추크의 아버지는 전술했듯이 대학의 교수였고, 어머니는 [[독일계 러시아인]] 귀족의 후손이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최소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았던 셈인데, 코스모스는 아무래도 과학 다큐멘터리지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라서, 이 정도의 고증오류는 제작진들이 별 신경도 안 쓴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술대학]]에 입학했으나, 1914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러시아가 이에 연합국 소속으로 참전하면서 그는 러시아 제국 육군에 입대했다. 여기서 장교로 임관하는 등으로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러시아가 [[독일 제국]]에게 지속적으로 패배하면서 불리해진 전황과 극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반전 여론이 고조됨에 따라,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3월에 있었던 첫번째 혁명 때는 별 일이 없었지만, 11월에 재차 혁명이 일어나서 러시아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제정 시대의 장교였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아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어머니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 세력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콘드라추크 일가는 반정부 인사로 찍혀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흔히 알려진 본명인 '유리 콘드라추크'도 이때 처음 사용한 이름이다[* 상술한대로 타인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지만, 이게 원래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2021년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과학 다큐멘터리인 [[코스모스(다큐멘터리)|코스모스]]에서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고 추정한 바는 있다.]. 한때는 소련을 탈출해서 폴란드로 가려는 시도도 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만해도 폴란드는 공산국가가 아니었다.], 실패하면서 강제노역에 처해지는 신세가 되었다. 이 시기에 레닌이 급사하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하였는데, 콘드라추크는 이때 [[NKVD]]의 명령으로 곡물 창고에 설치할 곡물 엘리베이터를 설계하는 임무를 맡았고, 여기서 못을 전혀 쓰지않고 설치하는 설계도를 완성하여 당국에 제출하였다. 이후에는 [[풍력 발전기]]의 설치를 감독하는 일도 했다. 그리고 1929년에는 달 탐사를 위한 우주선의 발사와 그 [[랑데부]] 방법을 연구한 논문을 집필하여 책으로 출판했는데, 이 책을 흥미있게 읽은 [[세르게이 코롤료프]][* 소련의 우주개발의 일등공신이었던 그 사람 맞다.]가 당국에 그를 추천하려고 했지만, 과거 반정부인사로 찍혔던 자신의 정체가 소련 당국에게 탄로날 것이 두려워서 이를 거절하기도 했다. 그 이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련 육군]]에 입대해서 [[나치 독일]]의 침략에 맞서서 싸웠다고 전해지는데, 1942년에 [[모스크바 주]]의 [[칼루가]] 인근에서 전사했으리라는 추정만 있을 뿐, 관련 기록이 전무해서 그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 사후 == 비록 모국인 [[우크라이나]]와 [[소련]]에서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스러져간 비운의 과학자였지만, [[영어]]로 번역된 콘드라추크의 책이 [[미국]]에 소개되면서 미국의 우주개발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아폴로 11호]] 계획 당시에 채택된 [[달]] 탐사 계획은 콘드라추크가 제안한 이론을 약간만 손본 것이며, 이렇게 수립된 계획이 멋들어지게 성공하면서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분류: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분류:소련의 물리학자]][[분류:소련의 공학자]][[분류:소련의 수학자]][[분류:러시아의 의문사한 인물]][[분류:1897년 출생]][[분류:1942년 사망]][[분류:실종된 인물]][[분류:소련의 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사망자]][[분류:폴타바주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