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유럽연합 관련 문서)] ||<-3> {{{#fff '''{{{+1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br]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 ||<-3> [[파일:ecsc2002.png|width=55%]][* 2002년 해체 당시 기. 기의 별은 각각 공동체의 회원국을 상징한다. 창설 이후 회원국이 계속해서 늘었기에 깃발도 계속 바뀌었던 것. 창설 당시에는 회원국이 6국 뿐이라 아래 기를 사용했다. [[파일:ecsc1958.png]]] || ||<-3> {{{#fff '''창설 당시 지도'''}}}[* [[프랑스령 알제리|알제리]]는 프랑스 본토의 일부로 취급되어 포함되었다.] || ||<-3> [[파일:ecsc.png|width=55%]] || ||<-3> {{{#fff '''1952-2002'''}}} || ||<-2> '''수도''' ||없음[* 본부는 [[룩셈부르크(도시)|룩셈부르크]]에 위치.] || ||<-2> '''회원국''' ||12개국 || ||<-2> '''공용어''' ||11개[* [[덴마크어]], [[네덜란드어]], [[영어]], [[핀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 ||<-2> '''정부 형태''' ||국제 기구 || ||<|4><-2> '''역사''' ||[[파리 조약]] ([[1951년]] 4월 18일) || ||정식 출범 ([[1952년]] 7월 23일) || ||[[브뤼셀 조약]] [[1967년]] 7월 1일 || ||파리 조약 만기 및 [[유럽 공동체]]로 이관 ([[2002년]] 7월 23일) || ||<-3> {{{#fff '''* * * * * *'''}}} || ||<-2> {{{#fff '''설립 이전'''}}} || [[루르 국제 통치령]] || ||<-2> {{{#fff '''통합 이후'''}}} || [[유럽 공동체]] || [목차] [clearfix] == 개요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기관 하에 공업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세워진 국제기구이다. [[1951년]], [[프랑스]], [[이탈리아]], [[서독]],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6개 국가가 [[파리 조약]]을 조인하며 [[1952년]] [[7월 23일]]에 정식으로 창설되었다. 처음으로 국가를 초국가주의(Supranationalism)을 기반으로 한, [[국가연합]]을 목표로 하는 [[국제기구]]였으며 이는 추후 [[유럽 경제 공동체]] 등을 비롯한 [[로마 조약]] 이후 범유럽주의 기관들의 기반이 되며 추후 유럽 석탄 철강 공동체의 후신인 [[유럽 공동체]]는 비로소 [[유럽연합]]이 된다. == 역사 ==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쉬망[*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프랑스의 독일계 지역 [[알자스]] 출신이다. 장 모네와 함께 [[유럽연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에 의해 [[1950년]] [[5월 9일]],[* 이 날은 [[1985년]], 유럽의 날로 지정된다.] '쉬망 선언'으로 처음으로 입안된, 프랑스와 독일간의 전쟁을 막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의 논지는 두 국가간의 경제가 충분히 연담화가 된다면 두 국가간 전쟁은 상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불가능한 것이 된다는 것. 또한, 유럽 국가들을 위한 석탄과 철강의 공동시장이 생긴다면 국가들간의 경쟁도 줄어들고 분쟁도 더 쉽고 평화적이게 해결이 가능하며 경제 개발에도 이바지할 것이었다. 특히 이 당시 [[루르 국제 통치령]]의 철강 및 석탄 자원과 관련해서 경쟁이 어느정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는데 이 기관의 설립을 통해서 이 또한 해결이 가능할 것이었다. 1950년의 쉬망 선언에서 쉬망은 ECSC의 목표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유럽연합|하나된 유럽]]을 향한 첫 발판이 될 것. * 회원국들간의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 *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것 * 유럽을 한발짝식 (분야별로 각각 초국가적 기관들을 설립해나가며) 민주적으로 유럽을 통일해 나갈 것. (이는 [[철의 장막]] 건너편도 해당) * 세계 최초의 초국가적 기관을 세울 것 * 세계 최초의 국제적 반독점 기구가 될 것 * 공동체 전체에서 단일 시장을 만들어 나갈 것 * 석탄과 철강 시장으로 시작해서 다른 공동체들을 통해 유럽 전체의 경제적 부흥에 이바지할 것 * 세계 경제와 개발 도상국들의 발전을 지원할 것 쉬망은 이후 [[서독]]과 [[프랑스]]를 아우르며 정치적 커넥션을 만들어 그의 구상 속 유럽 연합을 현실화 하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움도 매우 많았다. 서독의 [[독일 사민당]]과 [[쿠르트 슈마허]]는 (슈마허의 프랑스에 대한 불신은 차차하고) 쉬망의 유럽 연합의 구상은 독일 사민당의 주요 의제였던 [[독일 통일]]을 어렵게 할 것이고 독일 사민당이 원했던 독일의 석탄-철강 산업 국영화를 불가능하게 해 유럽의 경제를 결국에는 독점 카르텔에 의해 돌아가게 할 것이라 믿었다. 프랑스에서 슈마허의 유럽 연합의 구상은 비-공산계열 정치인들의 환영을 받았는데, 특히 그와 유럽 연합에 대한 구상을 공유한 사람은 [[샤를 드 골]]이었다. 드 골은 [[1945년]]부터 프랑스 주도 하의 유럽 연합을 구상하며 독일의 [[루르]]와 [[자르]]의 자원을 통해 프랑스의 발전, 그리고 독일의 견제를 꿈꿨다. 하지만 드 골은 쉬망의 ECSC는 유럽의 통일을 위해서는 매우 부족하고 주먹구구식인 구상으로 보았던 반면 쉬망은 드골의 프랑스 주도 하 유럽연합에 대해 프랑스는 유럽 연합을 주도할 능력이 부족하다 믿었기에 둘의 죽이 매우 잘 맞았다 보기는 어려웠던 듯. 또한 [[영국]]의 총리 [[클레멘트 애틀리]]는 영국의 석탄 산업을 이리 비민주주의적이고 믿을 수 없는 기관에 넘길 수 없다며 ECSC 가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유럽 연합에 대한 구상을 프랑스와 서독 모두에서 영향을 끼치고 어느정도 지지를 받으며 나아가 [[1951년]] [[파리 조약]]으로 이어져 [[1952년]] 수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리하여 ECSC의 석탄 공동시장은 [[1953년]] [[2월 10일]], 철강 공동시장은 1953년 [[5월 1일]] 출범하게 되고 [[루르 국제 통치령]]은 해산된다. 6년 뒤 ECSC의 초대 맴버들은 [[로마]]에 모여 ECSC를 모델로 한 다른 범유럽 국제기구들 (유럽 경제공동체, 유럽 원자력 협회) 등의 설립에 대한 [[로마 조약]]을 조인, 유럽 연합에 한발짝 더 나아가게 된다. ECSC가 세워진 이후 다른 범유럽 국제기구들이 속속 들어서며 [[2002년]], 50년 전에 조인된 파리 조약의 기간이 만기되자 다른 유럽 기관들과 함께 [[유럽 공동체]]를 출범, [[유럽연합]]의 포석을 깐 ECSC는 막을 내리게 된다. [[분류:1952년 설립]][[분류:유럽연합]][[분류:국제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