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오서)] [목차] == 개요 == 劉基 (184~232)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 [[유요#s-1|유요]]의 장남으로 자는 경여(敬輿). 청주 동래군 모평현 사람. == 생애 == 197년에 14살의 나이로 부친의 상을 치루면서 곤경과 고초를 겪어 숨어 살아 도리를 살폈지만 슬픔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여러 동생과 함께 살면서 항상 밤에 자고 일찍 일어나 처첩들도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드물었으며, 여러 동생들이 존경해 그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함부로 교류하지 않아 문중에 잡다한 빈객이 없었다고 하며, 모습이 아름다워 [[손권]]이 그를 아끼고 공경해 손권이 표기장군이 되자 동조연으로 부름받았다가 보의교위, 건충중랑장이 되었다. 220년에 손권이 오왕이 되자 대사농이 되었으며, 한 번은 손권이 연회를 베풀 때 [[우번]]이 술에 취한 척해 땅에 엎어져 손권이 주는 술을 받지 않다가 손권이 떠날 때 쯤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이에 화가 난 손권이 칼을 뽑아 그를 죽이려고 하자[* 손권은 술 취했을 때 망나니가 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오직 유기만이 손권을 끌어안고 손권에게 간언해서 죽음을 면하게 했으며, 손권 또한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이 술취해서 한 행위를 반성하게 된다. 이때 한 말을 대강 요약하자면 손권이 ''조조도 [[공융]]이 맘에 안 들어서 죽였는데 난 왜 이놈을 죽이면 안 된단 말인가?'' 라고 하자, 유기가 ''주군께선 평소에 옛 성현들을 본받겠다고 하셨으면서 왜 조조가 저지른 짓을 답습하려 하십니까?''라고 대답한다. 또한 손권이 배에서 연회를 베풀 때 배의 누각 위로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자 손권은 오로지 자신과 유기에게만 덮개를 덮으라고 명령할 정도로 손권에게 총애받았으며, 낭중령으로 옮겼다가 손권이 황제가 되자 광록훈이 되어 상서의 업무를 나눠 맡다가 향년 49세로 사망했다. 후에 손권이 아들 손패를 유기의 딸에게 장가보내면서 좋은 집 한 채를 하사해 사시사철로 은혜를 내렸다고 하며, 그의 동생인 유삭, 유상은 기도위가 되었다고 한다. == 미디어 믹스 == || [[파일:유기(경여).jpg|width=400]] || || [[삼국지 14]] 일러스트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력 33, 무력 35, 지력 60, 정치력 69, 매력 79이며 일러스트는 오른손을 올리면서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다. 개성은 명성, 교화, 소욕, 주의는 왕도, 정책은 세출개선 Lv 3, 진형은 방원, 투석, 전법은 구축, 친애무장은 손권, 장온, 혐오무장은 없다. 생년은 184년, 몰년은 232년까지 되어있다. [[토탈 워: 삼국]]에서는 그랜드 캠페인에서 유요 휘하의 미성년으로 설정되어 203년부터 임관한다. 유형은 선봉장, 칭호는 전사, 특성은 영리함, 야심참, 차분함, 능력치는 최대 200을 기준으로 전문성 37, 결의 50, 책략 36, 본능 80, 권위 58. [[분류:동오의 인물]][[분류:184년 출생]][[분류:231년 사망]]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유기(삼국지), version=160, paragraph=2)]